“생존의 문제”… 희화화에 자라나는 탈모산업

구정하 2026. 1. 2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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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숨기고 싶은 탈모
게티이미지뱅크


“뚱뚱하다는 말보다 머리숱 없다는 말이 더 무서워요.”

직장인 김모(32)씨의 말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탈모는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며 치료약의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지시했을 정도다. 영국의 BBC는 당시 이 대통령의 말을 전하면서 “한국에서 대머리는 젊은이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사회적 낙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탈모가 소외감이나 트라우마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 되면서 국내 탈모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치료제는 물론이고 탈모 예방을 위한 두피 관리 제품과 이와 관련된 전문 서비스를 향한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는 분위기다.

2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4년 탈모 치료를 받은 환자는 24만1217명으로 2020년(23만4780명)보다 약 2.7% 증가했고, 관련 진료비는 같은 기간 약 322억8000만원에서 389억5000만원으로 20.7%나 늘었다. 가장 비중이 높은 연령대는 40대(5만2724명)였지만 30대(5만1619명)나 20대(3만9079명) 비중도 작지 않았다.

과거 탈모는 주로 중년 남성만이 감당하는 은밀한 고충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아닌 셈이다. 통계가 말해주듯 20대나 30대들도 이 문제를 예방하거나 극복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머머리’(대머리)처럼 ‘탈모인’을 비하하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이 문제를 희화화하는 분위기가 탈모에 대한 관심을 풀무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 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이모(36)씨는 “탈모 검사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머리숱이 많은 사람도 ‘탈모인 것 같다’며 병원을 찾아온다”면서 “탈모는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일찍부터 진료 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남성만 풍성한 머리숱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도 탈모 문제엔 과거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30대 여성 직장인 박모씨는 최근 단골 미용실 디자이너로부터 “머리숱이 적어졌다”는 말을 들은 뒤 ‘탈모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두피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머리카락에 좋다는 오메가3와 비오틴을 챙겨 먹고, 안 바르던 두피 세럼까지 구입했다고 한다. 박씨는 “머리는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신체 부위라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다”며 “한번 머리숱이 줄었다는 생각을 하니 거울을 볼 때마다 가르마 부위가 넓어지진 않았는지, 머리를 감고 나면 몇 가닥이 빠졌는지 과민할 정도로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탈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회 5만~10만원을 내면 전문 카메라로 두피 상태를 측정하고 결과에 따라 스케일링·마사지 등을 해주는 서비스도 각광받고 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두피 관리 서비스 이용 건수는 전년 대비 27.7%나 증가했다. 남성이 54%로 여성(46%)보다 높은 비율을 보였지만 건당 결제 금액은 여성이 15.1% 더 많았다.

탈모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두피나 모발 관리와 관련된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특수 카메라로 고객의 두피 상태를 살피고 있는 전문가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전문 관리점을 찾지 않고 집에서 두피를 관리할 수 있는 ‘홈케어 디바이스’도 속속 나오고 있다. 마사지기 브랜드 클럭은 지난해 1월 빗 형태의 마사지기로 두피를 빗으면 미세전류자극(MES)을 느낄 수 있는 두피 마사지기를 선보였는데 소비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출시 이후 약 1년간 10만여개가 판매될 정도였는데 20, 30대 소비자가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했다고 한다.

모발 관리에 애쓰는 사람이 늘면서 이제는 ‘두피도 얼굴의 연장’이라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CJ올리브영의 기능성 두피 앰플·세럼 매출은 전년 대비 52%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일반 샴푸 매출이 12%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이 같은 관심을 반영해 올리브영은 피부 진단 서비스 ‘스킨스캔’을 두피까지 확대해 제공하고 있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두피 관리가 단순한 노화 방지 차원을 넘어 스킨케어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다”며 “두피를 얼굴 피부와 동일하게 관리하는 ‘스키니피케이션(Skinification)’이 트렌드가 됐다”고 전했다.

탈모 치료제를 뿌리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탈모 시장은 갈수록 성장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국제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한국의 모발 및 두피 관리 시장이 2024년 약 5조4700억원에서 2030년엔 8조8700억원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기관은 한국을 가리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도 이 같은 분위기를 잘 아는 듯하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두피 관리점은 새로운 관광 코스로 떠올랐다. 관광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의 두피케어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19%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탈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탈모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탈모는 단순히 탈모라는 증상 그 자체만으로 인식되지 않고 남성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며 “탈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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