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23)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1월 초하룻날이 밝을라치면 집 앞 안산(鞍山)에 오른다. 목멱산(木覓山, 南山)으로 신호를 전달하던 안산 봉수대까지 희부연 산길을 올라간다. 새로운 시간을 마주하는 여명 바라기로 흐트러진 삶의 매무새를 다듬곤 한다.
올 첫해는 매운 추위 탓도 있지만, 달콤한 잠에 빠져 놓치고 말았다. '그래, 내일 뜨는 해라고 다를까'하는 느긋한 핑계를 대며 이불속으로 다시 파고든다. 무의식의 해맞이인가, 일출봉의 햇살이 빗살처럼 퍼지며 반쯤 뜬 눈이 부시도록 비쳐 든다.
일출봉(日出峯)'. 늠름한 위용 때문인지, 해 오름의 장엄함에서 오는 건지 이름을 가만히 뇌면 벅찬 느낌이 차오른다. '기다리는 마음'도 따라 나온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중략)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삼십 대에 요절한 김민부 시인의 시로 지은 가곡이다. 부산 다대포를 거닐며 시상을 다듬었다는데 시인은 무엇을 그리 기다렸을까. 간절하게 보고 싶은 연인이었을까, 막막한 현실에서 희구하던 어떤 새 희망이었을까. 시는 아름다운 선율을 만나 생명을 얻었고, 이제는 모두의 기다림이 되어 저마다의 가슴에 스며든다.

일출봉은 남다른 외모만큼이나 희귀한 지질학적 사례로 꼽힌다. 모양새도, 지질 측면에서도 하와이의 다이아몬드헤드산(Diamond head)과 비슷하지만, 오름과는 다른 것이 있단다.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닷속에서 솟아올라 형성된 수성 화산이어서다. 생성 당시에는 제주 본토와 1km쯤 떨어진 화산섬이었다. 그러던 것이 침식작용을 통해 바닷가로 밀려온 화산재 등이 퇴적되었고, 얇고 완만한 경사 층을 만들면서 사주가 발달했던 것. 간조 때마다 본토와 이어지는 육계사주(육지와 섬, 섬과 다른 섬이나 암초 사이에 모래나 자갈 등이 쌓여 연결된 퇴적 지형)가 만들어졌고, 1940년대 도로를 개설한 덕에 육지와 이어지며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섬 속의 섬인데다 길도 없었던 일출봉을 오르는 일은 오래전 사람들에겐 꽤 고행이었음이 짐작된다.

일출봉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데 꼭대기는 넓고 평평해서 마치 성과 같아 '성산(城山)'이라 불렸다. 후에 해돋이 명소가 되었고 제주의 영주 10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 일출봉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이곳 역시 일제강점기의 수난을 비켜가지 못했다. 일본군이 이곳의 요새화를 위해 해안절벽에 이십여 개의 굴을 파고 폭탄과 어뢰를 실어놓은 쾌속정을 감춰둔 채 전쟁에 대비했지만, 다행히 사용해 보지 못하고 패전했다. 이 굴들은 이후 해녀들의 탈의장으로 사용되었고, 송악산, 알뜨르 비행장 등과 함께 '다크투어리즘', 그 아프고 서글픈 답사 현장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일출봉의 순정한 아름다움과 지질학적 특출난 가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의 당당함이 그 상처를 보듬어 어루만져주는 건 아닌지….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았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이생진의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 중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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