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백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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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큰조카가 출산했다. 예전엔 백설기를 심심한 떡이라 여겼다.
지난달, 사직동의 작은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를 보고 나왔다. 3, 2, 1. 짧은 박수가 터졌고, 출구 앞에서 백설기를 나눠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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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큰조카가 출산했다. 큰언니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나는 또래보다 이른 ‘이모할머니’가 되었다. 예전엔 백설기를 심심한 떡이라 여겼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수수한 떡. 그런데 그 비어 있음 때문에 사람들은 가장 간절한 마음을 거기에 얹는다. 깨끗하고 티 없이 자라라. 탈 없이 살아가라.
지난달, 사직동의 작은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를 보고 나왔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고, 스크린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 2, 1. 짧은 박수가 터졌고, 출구 앞에서 백설기를 나눠 주었다. 붉게 쌍희(囍) 문양이 찍혀 있었다. 하나의 기쁨 위에 또 하나의 기쁨을 포개는 일. 달착지근하고 말랑한 떡을 조금씩 떼어 먹으니, 덩달아 다른 기억도 따라왔다. 언젠가 엄마는 멥쌀을 빻아 오라며 심부름을 시켰다. 분주한 방앗간에서 폭설처럼 쏟아지던 하얀 가루. 주인아저씨가 막대로 툭툭 쳐 쌀가루를 털어내던 소리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별다를 것 없는 이 떡이 유난히 정답게 느껴진다.
이제 백일을 넘긴 아기는 목을 가눈다. 씨름선수가 한판 뒤집기를 하듯, 얼굴이 벌게지도록 몸을 뒤집으려 힘을 쓴다. 청포도 알만한 발가락, 투명한 손톱, 부드럽게 말린 속눈썹. 아기는 누운 채 두 손을 들어 자기 손을 바라본다. 몸에서 뻗어 나온 열 개의 길을. 그 손은 아직 아무것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 손이 컵을 잡고, 책장을 넘기고, 누군가의 손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잡는 법을 배우는 만큼 놓는 법도 배우게 되겠지.
폭설이 내린 밤, 지붕마다 커다란 백설기가 얹힌 것만 같다. 세상의 길이 잠깐 흰빛으로 환해진다. 이런 밤은 어디에선가 한 생명을 위해 조용히 초를 켜고 기도하는 이가 있을 것만 같다. 지붕 위의 눈은 설탕처럼 반짝이고, 아기는 순한 잠을 잘 것이다. 그러니 오늘 밤은 모두 백설기처럼 달콤하고 깨끗한 꿈 꾸시라.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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