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세상이 온다…게임 체인저 ‘피지컬 AI’ [AI 딥다이브]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6. 1. 2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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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화면 뚫고 세상 밖으로 ‘성큼’
‘훈련의 시대’서 ‘실행의 시대’로

화면 속 소프트웨어에 머물던 인공지능(AI)이 로봇 등 물리적 실체를 갖춘 ‘피지컬 AI(Physical AI)’로 확장되면서 일상과 제조 현장 전반으로 침투하고 있다. 대만 폭스콘이 AI와 디지털 트윈으로 공정 배치 시간을 단축하고 오류율을 낮춘 사례처럼 실질적 성과도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AI가 텍스트 중심 대규모 언어모델(LLM)에서 행동의 결과를 미리 계산하는 ‘월드 모델(World Model)’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특허와 기업 수에서는 중국·미국에 뒤처졌다. 하지만, 조선·자동차·반도체 등 중후장대 산업에 축적된 공정 데이터와 자동화 경험, 그리고 AI 추론에 필수적인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갖춘 점은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피지컬 AI 시대 승부는 AI를 저비용·고효율로 물리적 세계에 이식해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인공지능(AI)이 ‘피지컬 AI’로 진화하면서 일상과 제조 현장 풍경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AI 글로벌 패권 전쟁도 올해부턴 가치사슬 전 영역으로 파고든다. AI 수용성을 높이려는 기업·국가 차원 노력이 잇따르는 가운데, 불균형 성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매경이코노미는 올해 ‘AI 딥다이브’ 연중 기획을 시작한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AI 신기술을 시작으로 AI의 ‘두 얼굴’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화면 속에 갇혀 있던 인공지능(AI)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최근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26’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챗GPT 등 소프트웨어 AI 시대를 넘어 로봇 등 물리적 실체를 갖춘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AI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 전쟁도 올해부턴 일상과 산업 현장 등 가치사슬 전 영역으로 파고든다. 제조업 강국 한국에서는 기회와 위기 요인이 동시에 도사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은 분업과 효율성을 중심에 둔 제조업 기반 성장 전략으로 고도 성장을 일궜다. ‘정답이 정해진 시장’에서 범용 제품을 찍어내던 시절에는 효율성을 좇는 성장 공식이 잘 들어맞았다. 지금은 경영 환경이 180도 달라졌다. AI 확산으로 산업 질서가 재편되는 국면에서는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역량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제조업식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AI 혁신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AI, 실물 산업 전방위 침투

LLM에서 ‘월드 모델’로 고도화

2026년 AI 패권 경쟁이 새 서막을 열었다는 진단이다. 지난해까지는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들었는지’ 겨루는 1막이었다면, 올해부턴 ‘AI를 일상과 산업 현장에 안착시켜 성과로 증명하느냐’를 가리는 2막에 들어섰다. AI는 개인 수준에서는 일상화됐지만, 책임과 규제가 따르는 영역인 산업과 조직 수준에서는 서로 다른 수용 단계에 놓여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미국 사회학자 에버릿 로저스의 ‘기술 수용 주기 모형(Technology Adoption Lifecycle)’에 비춰보면, 지난해까지는 혁신가·초기 수용자를 중심으로 개인 수준에서 AI 확산이 이뤄졌다. 올해는 실물 산업을 대상으로 AI의 전방위 침투가 이뤄지며 ‘초기 다수’ 단계를 돌파하는 변곡점으로 분석된다. 이 단계부턴 AI가 조직의 실질적 자산으로 편입되면서 AI 패권 경쟁 기준도 바뀔 전망이다. 성능 등 양적 일변도 경쟁에서 벗어나 오류와 손실에 대한 책임 소재, 비용 구조, 제도 정합성 등이 시험대에 오른다. AI를 표준화해 확산시킬 수 있는 산업·제도 역량을 갖춘 국가가 유리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변화는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실질적 성과를 엿볼 수 있다. 대만 폭스콘은 AI와 ‘디지털 트윈’ 기술로 나사 조임과 케이블 삽입을 자동화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와 똑같은 물리 법칙 등이 적용되는 가상공간 ‘쌍둥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 조건을 찾아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 폭스콘은 AI와 디지털 트윈 기술로 새 공장을 위한 시스템 배치 시간을 40% 줄이고 오류율을 25% 감소시켰다. 가정에도 로봇이 들어온다. 이번 CES에서 선보인 LG전자 홈로봇 클로이드(CLOiD)는 두 개의 관절형 팔과 5개 손가락을 가진 손으로 섬세한 가사 작업을 처리하도록 설계됐다.

전문가들은 AI가 텍스트 기반 LLM에서 ‘월드 모델(World Model)’로 확장되는 경로를 밟고 있다고 진단한다. 언어 모델이 텍스트로만 세상을 이해했다면, 월드 모델은 행동의 결과를 미리 계산하는 AI다. 월드 모델 기반 로봇은 목표를 설정한 뒤 여러 경로를 내부에서 시뮬레이션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한다.

월드 모델은 독일 출신 컴퓨터 과학자 위르겐 슈미트후버가 주창한 개념이다. AI가 외부 세계 작동 원리를 내부 모델로 학습해 예측·계획을 수행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그가 2018년 ‘World Models’라는 논문에서 개념을 현대적으로 정립해 조명받았다. 최근 ‘AI 대부’로 불리는 얀 르쿤 뉴욕대 쿠란트 수학연구소 교수(전 메타 수석 AI 과학자)가 이 개념을 전면에 끌어올린 뒤 LLM 이후 차세대 AI 패러다임으로 각광받는다.

한종목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AI 기술이 LLM이라는 두뇌를 만드는 ‘훈련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그 두뇌를 저비용·고효율로 추론하고 물리적 실체에 이식하는 ‘실행의 시대’로 진입했다”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국가가 향후 부를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인공지능(AI)이 ‘피지컬 AI’로 진화하면서 일상과 제조 현장 풍경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1월 5일(현지 시간) 엔비디아 CES 2026 라이브 기조연설에서 자율주행 AI 모델 ‘알파마요’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지컬 AI 기반 기술 각광

갈 길 먼 대한민국

한국을 먹여 살릴 10대 AI 신기술을 꼽아달라는 매경이코노미 설문에 응한 각계 전문가들도 피지컬 AI 기반 기술을 꼽은 경우가 많았다.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는 ▲VLA(비전-언어-행동) 기반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 ▲뉴로모픽(Neuromorphic) 컴퓨팅 ▲감각-운동 통합 제어(Sensorimotor Integration) 기술 ▲맥락적 추론(Contextual Inference) 알고리즘▲월드 모델(World Model) 기반 차세대 학습 알고리즘(자기지도학습 및 인과 추론) 등이 꼽혔다. 이 같은 소프트웨어 환경 구현을 위한 물리적 토대가 될 칩 기반 기술로는 ▲HBF(High Bandwidth Flash) ▲PIM(Processor-In-Memory) ▲첨단 패키징 및 3D 적층 기술 등이 지목됐다.

변곡점을 맞은 AI 산업에서 한국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높다. 피지컬 AI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아직 모호하다. 2020~2024년 휴머노이드 로봇 특허 출원 건수를 보면 중국이 5688건, 미국이 1483건인 반면, 한국은 368건에 불과하다(모건스탠리 ‘휴머노이드 100’). 키움증권에 따르면, CES 2026에서도 전체 34개 휴머노이드 기업 가운데 중국이 20곳(59%)으로 압도적이다. 미국과 한국이 각 5개로 뒤를 이었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월드 모델의 국산화 시도는 극히 초입”이라며 “제조, 방산 분야 그리고 자동차, 로봇, 스마트홈과 결합하는 도전도 이제 시작 단계”라고 진단한다.

그렇다고 비관할 상황도 아니다. 한국은 제조·조선·자동차·반도체 등 중후장대 산업 전반에 걸쳐 공정 데이터와 물리적 운영 경험이 축적돼 있다. 가령, 국내 조선 업계는 단순 자동화를 넘어 로봇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피지컬 AI’ 단계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용접 공정 완전 자동화와 도장·케이블 부설 등 고난도 공정으로 로봇 침투가 빠른 속도로 이뤄진다. 한화오션은 2030년까지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 내 패널 공정 용접 작업을 완전 자동화한다. 현재 67% 수준인 자동화 비율을 10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HD현대삼호는 국내 조선 업계 가운데 로봇 활용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된다. 전남 영암 조선소에 로봇 90여대를 도입했다.

AI 관련 서비스와 수익 창출이 이뤄지는 ‘추론’ 단계가 핵심으로 부상한 것도 한국에 구조적으로 유리하다는 진단이다. AI 추론을 위해서는 서버 D램, 고용량 DDR5, 모바일 LPDDR 등이 필수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전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과 양산 역량을 동시에 갖췄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한국이 제조업에 강점이 있지만, AI와 디지털 트윈 기반 기술이 앞서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누가 더 강력한 AGI 모델을 만들어 이를 잘 활용하고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있느냐에 AI 패권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4호 (2026.01.21~01.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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