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라면 한 그릇”…교회가 열고 주민들이 채운 공간
누구나 찾는 무료 라면집
은평구 역촌동 ‘우리가 함께라면’

21일 서울 은평구 역말로 한 공간 앞. 입구 옆에는 “누구나 한강라면이 공짜”라는 문구가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 위로 ‘우리가 함께라면’이라는 이름의 전광판이 공간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4월 서울 우리가교회(박상현 목사)가 세운 무료 무인 라면카페다. 교회 이름은 손바닥만 한 나무판에 음각으로 새겨져 외벽에 걸려 있었다. 일주일 중 주일예배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누구든 와서 라면을 먹을 수 있다. 66㎡(약 20평) 남짓의 공간에는 깨끗한 나무 책상과 주방 한편에 마련된 세 구의 라면 조리기계가 놓였다.
주일에 교회로 사용한다지만 흔한 피아노나 십자가가 그려진 강대상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박상현(51) 목사는 “교회라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요소로 문턱을 낮추니 다양한 이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개척을 준비하던 박 목사는 “목회를 잘하고 있는 좋은 교회들이 많은데 다른 교회가 하지 않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두 달간 매주 다른 교회를 탐방 다녔다. 그는 “교회 밖 이웃과 연결되고 우리가 교회가 되는 공동체를 세우자”는 결론을 마주하고 라면 사역을 시작했다. 매일 10명 가까운 이용객이 사용하는 이 곳에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뿐 아니라 청소년과 청년들도 편하게 드나든다.
저녁 시간이 되자 권용준(14)군은 세 살 어린 남동생과 이곳을 방문했다. 권군은 일주일 한 두 번 얼굴을 비추는 단골손님이다. “평소에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자주 먹었는데 오늘은 없네요”라던 권군은 줄 지어 세워진 6~7개의 라면 앞에서 몇 초 고민하다 “새로 들어왔다”는 라면에 손을 뻗었다. 익숙한 듯 싱크대에 놓여진 냄비 하나를 기계 위에 올린 권군은 “학원이 끝나고 운동 가기 전 갈 곳이 없을 때 이곳으로 온다”며 “저녁을 때우고 편하게 숙제도 하면서 쉬다가 가요”라고 했다.
박 목사가 라면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한국인이 라면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는 “사역의 지속성이 있으려면 후원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부담 없는 메뉴여야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근사한 식사보단 한 끼를 편하게 때우고 싶은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싶었고 근처 식당과 경쟁하는 곳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가교회는 출석 교인 4명의 작은 교회다. 이런 교회가 이 공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주변 교회, 노회뿐 아니라 이름 모를 이들의 도움이 컸다. 이곳에 설치된 라면 기계는 각각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은평동지방회 청장년선교연합회, 여선교회연합회, 남선교회연합회가 구매해 기증한 물품이다.
익명의 기부자가 한 달에 1~2회 감사헌금 봉투에 소정의 금액을 넣어 문틈에 밀어 넣고 가기도 한다. 주민들은 “마트 다녀온 김에” “반찬 만든 김에” “오늘 들어온 과일이 좋아서”라며 까치밥 남기듯 라면 가게에 반찬과 간식을 두고 간다. 라면 가게의 반찬이 무생채 배추김치 단무지 등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도 그 이유다.
1인 가구 이호용(53)씨도 이곳을 사랑방처럼 들르며 간식을 두고 간다. 이씨는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지나가다 목사님이 보이면 이야기를 나누다 간다”며 “선한 취지로 운영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심심할 때나 출출할 때 발길이 간다”며 웃었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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