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베를린은 끝났어" 탄식
[고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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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려진 성탄나무 버려진 성탄나무. 1월 6일부터 수거하는데 동네마다 수거일이 지정되어 있지만 뒤늦게 내다버린 나무들이 애처롭게 뒹굴고 있다. |
| ⓒ 고정희 |
넘쳐나는 거리의 쓰레기통이 처음 눈에 띈 것은 2011년. 평화로운 슈프레 강변 산책로에서였다. 유난히 청명했던 날 산책길에 마주한 넘쳐흐르는 쓰레기통은 내가 체험한 도시 질서의 첫 균열이었다. 그 이듬해 한국에서 온 동료들과 장벽 공원을 산책할 때 마주친 쓰레기들은 민망함을 넘어 당혹스러웠다.
지성의 전당에서 본 기묘한 '퍼포먼스'
가장 충격적인 기억은 2012년 모교 베를린 공대 교정에서였다. 학생 식당 앞, 기업에서 나와 학생들에게 기념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었다. 더 놀라웠던 건 선물을 받겠다고 학생들이 줄을 섰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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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 공대 식당 앞 광장 휴지통 베를린 공대 식당 앞 광장 휴지통 앞에 봉투째 버려진 기념품. 과소비사회에 대한 학생들 나름의 저항 퍼포먼스. |
| ⓒ 고정희 |
분절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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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장없는 슈퍼마켓 포장없는 슈퍼마켓. 젊은 여성들이 꾸려나가고 있는데 나이든 세대들의 이용률이 높다. |
| ⓒ 고정희 |
자원봉사도 열심히 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어 신고하는 저널리스트가 있다. 그는 최근 이런 글을 발표했다. "나의 악몽은 어느 날 거리를 가다가 인도를 달리는 자전거에 치여 나폴리 피자 포장과 라떼 웅덩이에 엎어지는 것"이라고. 이게 과연 베를린의 일상일까?
왜곡된 쿨함과 자유? 그래도 희망은 있다
쓰레기가 널려 있는 상황을 "자유의 도시" 베를린의 쿨한 모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구역 간에 누가 더 더러운지를 경쟁한 적도 있다! 노이쾰른 같은 지역은 오염도가 높은 것을 오히려 그 지역의 특징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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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원에 버려진 가구 보란 듯이 공원 한 복판에 버려진 가구. 대체 무엇에 대한 저항이고 시위일까? |
| ⓒ 고정희 |
'코너링'이라는 것이 유행한 지 한 십 년쯤 된다. 젊은이들이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지 않고 거리의 코너에서 만나 편의점 앞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우리 동네 파울루스 교회 앞 녹지가 좋은 예다. 저녁마다 수많은 젊은이가 교회 계단에 앉거나 날이 좋으면 잔디밭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기도 한다. 맞은편 상점들은 활기를 띠지만, 신기하게도 이들이 떠난 자리엔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
결국 쓰레기 투척은 인식과 심리의 문제라는 증거다. 이들을 내쫓지 않고, 들어와 예배보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 대신 꽃밭을 만들어 주고 음악회 등 행사를 열어 포용하는 여성 목사님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이들의 자발적인 시민 의식을 끌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규정을 많이 만들고 벌금을 높일수록 저항하고 싶어진다. 거리에 CCTV가 없는 도시이기 때문에 자율에 맡기는데 그 자율이 어려운가 보다. 통제를 원하나? 한 번은 장벽 공원에서 또다시 넘치는 쓰레기통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빈 햄버거 포장과 플라스틱 컵을 쓰레기 더미 위에 던졌다.
저항할 '건더기'가 없는 세대의 문제
몇 년 전에 목격한, 소위 말하는 68세대 어머니와 딸의 대화가 떠 오른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대화였다. 사회 혁신 세대의 일원 임을 자부하는 어머니의 핀잔에 딸은 대답했다.
"너희들은 투쟁도 안 하니?"
"엄마 세대가 부족함 없는 세상을 만들어 줬는데, 대체 뭐에 저항해서 투쟁하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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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 시 청소차 베를린 시 분리수거차. 옆에 쓰인 문구는 "이별이 언제나 아픈 것은 아녜요." 베를린 시 청소과는 유머러스한 홍보 문구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무단 쓰레기 투척 현상을 막지는 못한다. |
| ⓒ 고정희 |
베를린의 쓰레기 문제는 단순히 행정의 실패라고 볼 수 없다. 자기 쓰레기를 자기가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개인의 도리이지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묻는 철학적인 질문일 수 있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는 복지 사회에서의 삶이 정말 완벽한 걸까? 환경 보호를 외치며 다른 한편으론 쓰레기를 투척하는 '분절된 의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만은 많지만 뭐가 불만인지,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다. 답답하다. 그래서 만만한 쓰레기가 내던짐을 당한다.
성숙한 사회란, 쓰레기를 버려서라도 저항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가는 기초 상식 위에서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사회다. 파울루스 교회 광장에서 보여준 희망이 베를린 전역으로 퍼져나가길 바란다. 이제 베를린은 그 '힙한 가면' 뒤에 숨겨진 악취를 인정하고, 쓰레기를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 깨끗한 거리에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성숙한 저항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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