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한국까지 흐른 찬송의 여정

2026. 1. 22.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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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송구영신이나 신년, 생일 등 삶의 중요한 마디마다 빠짐없이 부르는 영감 넘치는 찬송이다. 이 노래는 서구의 복음주의 신앙에서 탄생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뿌리내리고 다시 한국인의 독창적인 선율로 재탄생된 토착적 찬송가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1983년 통일찬송가에는 박재훈 목사의 곡과 함께 네틀톤 곡조도 실려 있었지만 토종곡인 박 목사의 곡조가 더 많이 불리면서 서양 곡조가 자취를 감추고 한국적 정서가 깊게 밴 선율이 완전히 정착됐다.

서양 찬송에만 의존했던 한국교회가 이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이 녹아든 우리의 찬송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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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모 목사의 찬송가 이야기] <4> ‘지금까지 지내온 것’
1919년 발행된 찬송가 신증복음가 46장 악보와 가사. 아래는 사사오 데쓰사부로, 이장하, 박재훈 목사 모습(왼쪽 사진부터). 문성모 목사 제공, 위키미디어커먼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송구영신이나 신년, 생일 등 삶의 중요한 마디마다 빠짐없이 부르는 영감 넘치는 찬송이다. 이 찬송의 역사적 경로는 아주 독특하다. 이 노래는 서구의 복음주의 신앙에서 탄생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뿌리내리고 다시 한국인의 독창적인 선율로 재탄생된 토착적 찬송가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찬송의 가사를 쓴 사람은 일본 성결 운동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사사오 데쓰사부로 목사다. 그의 신앙적 뿌리는 철저한 복음주의였다. 사사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유학 시절 바클레이 F 벅스톤(1860~1946)의 지도를 받았는데 그는 미국 부흥사 D L 무디의 집회에서 은혜받고 헌신을 결심한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선교사였다.

벅스톤은 일본에서 사사오 목사와 함께 활동하며 마츠에 등지에서 복음 전도에 힘썼고 이들의 신앙 노선은 이후 도쿄성서학원 등을 통해 수많은 제자에게 전수됐다. 복음주의적 신앙의 맥은 사사오의 제자인 한국 성결교회의 초기 지도자 이장하(1886~?) 목사에게로 이어진다. 무디로부터 시작된 뜨거운 부흥의 불길이 벅스톤과 사사오를 거쳐 한국 땅에까지 전달된 것이다.

사사오는 1897년 발행된 찬송집 ‘구원의 노래’에 “今日まで守られ(지금까지 지내 온 것)”을 처음 수록했다. 그의 시는 주님의 강력한 통치와 보호를 확신하는 고백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그가 직접 선교 현장에서 체험한 불굴의 신앙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이장하 목사는 100여년 전 스승이 남긴 일본어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해 1919년 성결교단 찬송가인 신증복음가 46장에 소개했다.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던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번역 시는 큰 위로가 됐다.

이 목사가 처음 번역한 가사는 지금과는 약간 달랐는데 1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혤세/사랑으로 보호하심 어찌 의심하리요/언제든지 나의 주는 사랑하는 은혜로/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서 주시네.”

초기 가사 속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서 주시네”라는 대목은 현재의 고난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선하게 종결될 것임을 선포하는 종말론적 신앙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를 잘 보여준다. 즉 이 목사의 번역은 스승으로부터 이어져 온 복음의 맥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이식한 영적 작업이었다.

음악적으로 이 찬송은 흥미로운 변천사를 겪었다. 초기 신증복음가 시절에는 지금의 곡조가 아닌 네틀톤(NETTLETON)이라는 서양 곡조가 붙어있었다. 네틀톤은 현재 우리가 찬송가 ‘복의 근원 강림하사’(28장)를 부를 때 사용하는 선율이다. 해방 후인 1949년에 발행된 (합동)찬송가에는 이 네틀톤 곡조에 세 개의 각각 다른 가사가 붙어서 불렸다. 즉 ‘복의 근원 강림하사’, ‘지금까지 지내온 것’, ‘눈을 들어 산을 보니’가 모두 하나의 가락으로 불린 것이다. 나이가 많은 성도들은 교회에서 같은 곡조로 세 가지 다른 가사의 찬송을 부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1967년에 발행된 (개편)찬송가에서는 “한 곡조에 한 가사”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네틀톤 곡조는 ‘복의 근원 강림하사’의 가사만을 위해 사용됐고, ‘눈을 들어 산을 보니’는 비슷한 가사의 다른 찬송가가 있기에 탈락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가사가 좋고 애창하는 곡이라 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작곡을 공모하게 됐고 여기서 당선된 것이 바로 한국 교회음악의 거장 박재훈 목사의 곡이다.

그는 한국인이 가진 특유의 정서를 선율에 녹여냈고 이 곡은 서양 곡조를 밀어내고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찬송으로 자리 잡았다. 1983년 통일찬송가에는 박재훈 목사의 곡과 함께 네틀톤 곡조도 실려 있었지만 토종곡인 박 목사의 곡조가 더 많이 불리면서 서양 곡조가 자취를 감추고 한국적 정서가 깊게 밴 선율이 완전히 정착됐다.

이 찬송은 과거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은혜를 동력 삼아 미래로 전진하는 현재 진행형의 신앙을 강조한다. 이는 새해를 맞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 차원의 신앙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첫째는 긍정의 신앙이다. 사사오와 이 목사가 공유했던 것처럼 내게 주어진 어떠한 상황도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는 과정으로 읽어내는 영적 안목이 필요하다. 둘째는 한국적인 신앙고백이다. 서양 찬송에만 의존했던 한국교회가 이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이 녹아든 우리의 찬송을 갖게 된 것이다. 셋째는 종말론적 믿음이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는 소망을 품고 전진하는 삶의 자세를 말한다.

이 찬송은 감사의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헌신을 향한 출발 신호다. 10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의 맥을 이어준 선구자들의 신앙이 이 찬송에 담겨 우리에게 전해졌듯이 이제는 우리가 새해의 삶을 통해 또 하나의 찬송 가사를 써 내려가야 할 차례다.

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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