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막힌 소년의 꿈이 자라도록 사랑의 끈을 잇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는 높은 빌딩을 세우며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를 꿈꾸고 있지만, 서부 룻지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해발 2000m의 가파른 언덕, 붉은 흙길 위로 하교하는 룻지로 아이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보고 신기한 듯 달려오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11살 소년 파브리스는 그 무리에 섞이지 못했다.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 파브리스는 어두운 흙방에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파브리스는 “의사가 되고 싶다. 아픈 사람들을 돈 걱정 없이 고쳐주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에 가지 못한 지 오래돼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만 멀리서 지켜본다. 교복 비용 1만 프랑(약 1만원)과 매달 급식비 1000 프랑(약 1000원)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소년의 꿈은 1평 남짓한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최근 국민일보·월드비전(회장 조명환)·두란노교회(이상문 목사)가 함께한 ‘밀알의 기적’ 캠페인으로 이곳을 찾아온 이상문 목사와 구성남 사모는 파브리스의 두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파브리스의 집은 대낮인데도 암흑이었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낡은 매트리스 하나가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 임마클레(31)씨와 파브리스, 그리고 동생 애니엘(8) 올리버(5) 두 살배기 글로리아까지 다섯 식구가 밤마다 이 침대 하나에 엉겨 붙어 잠을 청한다. 부엌에 걸린 빨랫줄 하나가 이 가족이 가진 옷장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찌그러진 냄비 하나가 방바닥에 놓였다. 다섯 식구는 냄비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다섯 개의 손으로 음식을 떠먹는다. 어머니 임마클레씨가 젖먹이 막내를 업고 남의 농장에서 일해 버는 돈은 일주일에 단 5000 프랑(약 5000원). 파브리스에게 연필 한 자루 사주기도 빠듯한 것이 현실이다.

옆 마을에 사는 12살 다마신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머니 벨로니카(42)씨는 홀로 세 아들을 키우기 위해 매일 새벽 차밭으로 나간다. 온종일 허리를 굽혀 찻잎을 따고 받는 돈은 고작 1600 프랑(약 1600원). 다마신은 “농업가가 돼 엄마가 저렇게 힘들게 일하지 않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룻지로 산간 마을엔 넉넉한 집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1000명씩 다니는 초등학교 교실은 비가 오면 물이 샐 정도로 열악했다. 그 낡은 교실마저도 학생 수보다 부족한 곳이 대다수라고 한다. 아이들 급식으로는 카사바 가루로 만든 떡과 묽은 채소 수프가 조금 나올 뿐이었다. 아이들은 좁은 운동장에서 허름한 신발이나 맨발로 낡은 축구공을 찼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더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고 있었다. 월드비전이 후원 대상 어린이를 찾기 위해 마을 주민 회의를 열었을 때 마을 대표들은 “내 자녀보다 다른 아이들을 먼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가난한 공동체가 더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꺼이 순서를 양보한 것이다.
파브리스와 다마신을 찾은 이 목사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 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챙겨 온 학용품과 가방 등 선물을 아이들의 손에 건네고 돌아오는 길, 이 목사는 청년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청년 시절 방황하며 하나님을 떠나 있었던 그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담배 한 갑이면 아프리카 아이들의 실명을 막을 수 있다’는 선교사의 호소를 듣고 무릎을 꿇었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 반항하던 시절이었다. 그 길로 하루 세 갑 피우던 담배를 끊고 그 돈을 선교비로 보내며 다시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고 회상했다. 이어 “가난한 신학생 시절, 난생처음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볼 기회였던 졸업여행비 8만원마저 한 선교사의 항공비로 보탰다”며 “당시 느꼈던 그 기쁨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50년 전 충남 서천 미군 부대 옆에서 초콜릿을 따라가던 가난한 소년, 그리고 담배 연기 속에 숨어 방황하던 청년이 바로 나였다”며 “그때 내가 받은 사랑, 그리고 내가 포기함으로써 얻었던 기쁨을 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이 목사 부부는 이날 현장에서 파브리스와 다마신 가정, 그리고 또 다른 한 아동까지 총 세 가정을 직접 결연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에서 한 가정에 보내는 월 4만원의 후원금 중 80%인 약 3만2000 프랑(약 3만2000원)이 온전히 지원된다. 현금성 지원을 넘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축을 구하고 저축을 장려하는 등 자립을 위한 길을 찾아주는 방식이다. 하루 1000 프랑(약 1000원)을 벌기 위해 온종일 농사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겐 큰 빛줄기다.
이 목사는 “서천의 가난한 소년을 목회자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오늘 이 르완다 흙바닥의 아이들을 통해서는 어떤 일을 행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다”며 “140년 전 조선 땅에 뿌려졌던 그 사랑의 빚을 이제 우리가 르완다에 갚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브리스와 다마신이라는 작은 밀알이 훗날 르완다를 푸르게 덮는 기적의 숲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룻지로(르완다)=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더 미션에 접속하세요! 어제보다 좋은 오늘이 열립니다 [더미션 바로가기]
- [미션 톡!] 성도가 신앙 잊으면… 신학이 말하는 치매와 구원은
- [단독] 이만희 경호원 출신 A씨 “신천지, 총선 전 국민의힘 당원 가입”
- “당국, 시위 청년들 감옥서 고문… 이란 위해 기도를”
- 신애라 父 신영교씨, 기독교문화체험관 건립 위해 아파트 기부
- 디지털 주보·다회용품·새활용… “쓰레기 제로” 깃발 든 교회
- 다시 일어선 아들, 사명 세운 아버지… 고난은 부르심 됐다
- ‘핏빛 박해’ 시리아 12계단 급등… 북 23년째 1위
- “예수 그립지만 교회는 두려운 청년 위해… 장벽 허물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