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는 세상을 피하는가?
[김기창 기자]
최근 들어 <논어>를 새롭게 번역하거나 해설한 저서들이 여럿 출간되었다. <논어>가 여전히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음을 반증하는 듯하다. 법학자인 나도 그동안 동양과 서양의 법과 사상을 가르치면서 늘 <논어>를 곁에 두어 왔다. 최근에는 <금서의 귀환, 논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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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 중국 당나라 화가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공자의 초상 |
| ⓒ 저작권 없음 |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피한다. 그 다음은 장소를 피한다. 그 다음은 안색을 피한다. 그 다음은 말을 피한다."
하지만, 나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태가 험악하게 되면 재빨리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공자가 가르쳤을까?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고, 마음에 안 맞는 장소나 안색이나 말을 피하여 안온하게 지내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연대감도 없고,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사명감도 없고, 험악한 정부 하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도 없는 발상이 아닐까?
공동체의 존재 이유를 깡그리 부정하는 염세적 입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시종 일관 피하라면서 굳이 순서를 따지는 것도 좀 이상하다. 세상이건, 장소건, 안색이건, 피하면 그만이지 굳이 세상에서부터 먼저 피하고, '그 다음' 은 장소, '그 다음' 은 안색, '그 다음'은 말에서 피해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게다가 세상에서 피하고 나면 더 이상 어디로 피할 것이며, '그 다음'에 피할 무엇이 남겠는가?
오래된 이 구절의 번역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구절에서 공자가 한 말은 "賢者辟世 其次辟地 其次辟色 其次辟言"인데, 여기 나오는 '辟'이라는 글자는 피한다는 뜻도 있지만(이때는 '피'라고 읽는다) 개벽하고, 개척하고, 열어내고, 발달시킨다는 뜻도 있다(이때는 '벽'이라고 읽는다). 후자로 해석할 경우 이 구절은 "뛰어난 자는 세상을 개벽하고, 그 다음은 영토를 개척하고, 그 다음은 제도의 구색을 갖추고, 그 다음은 이론과 설명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뜻이 된다.
'세상을 개벽한다(辟世)'는 말은 정복 전쟁이나 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왕조, 새로운 세상이 열리도록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의 과제는 토지를 개간하는 등 물질적 기반을 개척하는 것이고(辟地), 물질적 기반이 마련되고 나면 그 다음 단계로서 제도적 구색이 갖춰질 수 있고(辟色), 이론과 설명을 가다듬고 개발하는 것(辟言)은 가장 나중에 이루어지는 것이 순서라는 뜻이다.
<논어>의 다른 곳에서 공자는 "위험한 나라에는 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머물지 말라, 도리가 지켜지는 세상에서는 드러나야 하고, 무도한 세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고 했는데(8.13), 이 말이 학자들에게는 유독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머물지 말라(不居)'는 말은 높은 자리에 머물며 위세를 부리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고,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隱)'는 말도 피한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바로 같은 구절에서 공자는 "올바른 도리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피하라는 가르침이 전혀 아니다.
나라가 험악하게 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관한 공자의 말은 사실 여럿 있다. 도리가 지켜지는 나라에서는 말도 당차게, 행동도 당차게 해야 하지만, 도리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행동은 당차게 하되 말은 공손해야(危行言孫) 한다는 구절도 있다. '당차게 행동한다(危行)'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행동한다는 뜻이지, 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말은 공손해야 한다. 즉, 말조심은 해야 한다는 것도 험악한 나라에서 도피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조언이다.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는지 나라 꼴이 엉망이 되는지 아랑곳 않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여 잘 먹고사는 궁리나 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라는 것이 공자의 입장이다(14.1). 나라의 존립이 위협받는 험악한 위기가 닥칠 경우, 공자는 목숨을 기꺼이 바치라(見危授命), 올바른 도리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라(守死善道), 목숨을 부지하려고 인(仁)을 손상하지 말고 차라리 목숨을 바쳐 인(仁)을 완성하라(殺身成仁)고 가르쳤다. 사태가 험악하게 될 기미가 보이면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투의 기존 번역은 오역이라고 생각한다.
도피로 일관한다고 번역되어 온 이 구절이 과연 공자의 말일까 의심하는 견해도 물론 있다. 텍스트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누군가 함부로 추가한 것일 수 있다는 짐작을 해보는 것이다. 사후 변작을 상상해 보는 이런 태도는 로마법 연구에서도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해석을 포기하고 자기 입장이 유지될 수 있는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사후 변작이건 아니건, 이 구절은 그동안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세상이 험악해질 조짐이 보이면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발상은 공자와 논어의 권위에 기대어 마치 버젓한 입장인듯 내세워졌다. 하지만 지난 해 겨울, 아닌 밤중에 헬리콥터가 뜨고 중무장한 군대가 국회로 들이닥치는 험악한 상황이 전개될 때 피하기는 커녕 여의도로 달려간 많은 시민들이 있다. 논어를 공부하는 학자들은 이들 시민들이 '현자(賢者)는 아니다'라고 판단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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