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 안 풀리고 무기력하면 염증과 호르몬을 보라

2026. 1. 2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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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박사의 첨단재생의학 <40>


흔히들 피곤하고 기운이 빠지면 ‘나이가 들어서 그렇겠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겠지’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대한민국 성인의 고민인 ‘이유 없는 피로’는 대개 그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 이유를 너무 늦게 발견한다는 데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는 초기엔 혈액검사 결과도 거의 정상으로 나온다. 그렇다고 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몸의 깊은 곳에선 이미 작은 불씨가 피어났을 수 있다. 그 불씨의 정체가 바로 만성 염증과 호르몬 균형의 미세한 흔들림이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염증이다. 염증이라고 하면 대부분 감기나 열, 붓기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더 흔한 것은 이런 뜨거운 염증이 아니라 조용한 염증이다. hs-CRP 같은 염증 지표나 요산, 호모시스테인 같은 대사 스트레스 지표가 조금씩 올라가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거의 없다. 한데 이 미세한 염증은 혈관을 서서히 손상시키고 근육을 약하게 만든다. 피로와 무기력을 키우고, 체중 조절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단순히 숫자 하나가 아니라, 이 조용한 염증이 얼마나 쌓여 있는가에 달린 경우가 적잖다.

염증이 몸에 오래 머물면 그다음 단계로 흔들리는 게 호르몬 균형이다. 사람들은 호르몬이라고 하면 갱년기나 성 기능 정도만 떠올리나 실제로는 몸의 리듬 전체를 관장한다. 아침에 눈 뜨는 시간이나 배고파지는 신호, 집중력이 올라가는 순간과 스트레스에서 회복되는 속도, 밤에 잠이 찾아오는 리듬까지 모두 호르몬 조율에 달려 있다. 여기서 조금만 어긋나도 몸은 즉각적인 경고를 보낸다. “왜 이렇게 피곤하고 잠이 안 오지” “왜 예전 같은 의욕이 없지” “왜 살이 갑자기 붙는 걸까….” 이런 변화들은 호르몬의 작은 균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꽤 된다.

특히 갑상선 호르몬은 몸의 에너지 공장 같은 존재다. 갑상선 기능이 미묘하게만 떨어져도 체력은 저하되고 몸이 둔해지며 감정도 쉽게 가라앉는다. 하지만 기본 혈액검사로는 이 변화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갑상선 자극호르몬(TSH)과 T3, T4를 함께 봐야 한다. 수치가 정상 범위 안에 있어도 개인의 평소 리듬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읽어야 한다. 또한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은 너무 높아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낮아져도 큰 문제다. 늘 피곤하고 의욕이 떨어지고, 아침에 몸이 잘 깨어나지 않는 경우엔 오히려 코르티솔이 고갈된 상태인 경우도 많다.

진료실에서 만난 한 30대 여성 환자가 떠오른다. 겉보기엔 멀쩡하고 기본 혈액검사도 전부 정상이었다. 그런데 늘 피곤하고 살이 잘 빠지지 않으며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염증 지표와 갑상선 패널을 정밀하게 보니 경계선상 이상이 있었다. 염증을 낮추고 갑상선 기능을 바로잡자 체력과 기분, 수면이 모두 달라졌다.

이와 반대인 50대 남성도 있었다. 직장생활 스트레스가 많았던 분인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의욕이 떨어지고 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다음날 회복이 안 된다고도 호소했다. 혈액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지만, 코르티솔 리듬이 완전히 깨져 있었다. 몸이 이미 오래전부터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우리는 피곤을 습관처럼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피로는 몸이 내는 가장 정직한 경고음이다. 몸이 지치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다시 몸이 더 지친다. 이 악순환이 한 번 시작되면 생활습관이 무너지고 대사가 흔들린다. 결국은 큰 병으로 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염증과 호르몬 검사는 건강의 방향성을 읽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단순히 병을 찾기 위한 검사가 아니라 “내 몸이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몸은 늘 이렇게 말한다. “너무 바쁘다고 나를 잊지 마라,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내 말을 들어달라.” 이 신호를 알아듣는 게 바로 건강을 돌보는 첫걸음이다. 내 몸을 귀히 돌보는 일은 결국 하나님이 맡긴 생명을 책임 있게 대하는 순종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선한목자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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