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진실보다 믿기 쉬운 말을 선택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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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게 살해된 시신들이 연이어 발견된다. 피해자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각기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하나같이 설명되지 않은 질문을 남긴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지만, 그 진실이 말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언제나 피해자의 몫으로 남는다.
살인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말해지지 않은 피해와 쉽게 통과된 설명들이 어떻게 하나의 '사실'처럼 굳어지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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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기자]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들이 연이어 발견된다. 피해자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각기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하나같이 설명되지 않은 질문을 남긴다. 누군가는 40번 칼에 찔린 채, 손톱에 '위선자'라는 단어가 새겨진 상태로 발견된다. 누군가는 아무 설명 없이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다. 이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그의 이야기 & 그녀의 이야기〉는 이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곧 살인의 동기 너머로 시선을 옮긴다. 이 시리즈가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은 범죄의 순간이 아니라, 그 살인이 가능해지기까지 오랫동안 반복돼온 말들과 침묵의 축적이다.
사건의 본질보다 소문이 먼저 퍼지고, 책임은 늘 침묵 속에 남겨지는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도 익숙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살인 사건을 다루는 범죄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끝내 무엇이 진실이었는가 보다 어떤 말이 믿어져 왔는지를 묻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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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이야기 & 그녀의 이야기 공식 예고편 |
| ⓒ 넷플릭스 |
뉴스 앵커였던 기자 애나(테사 톰슨)는 1년간 자취를 감춘 뒤 방송국에 복귀한다. 메인 뉴스 자리를 되찾는 대신, 고향 조지아주 달로네가에 벌어진 살인 사건을 취재하겠다고 나선다. 그곳에서 애나는 사건 담당 형사이자 아직 법적으로는 남편인 잭(존 번탈)과 재회한다. 애나와 잭은 과거 자녀를 잃은 트라우마로 관계가 파탄 났다.
애나는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뭔가를 숨기고 있다. 잭은 정의로운 형사처럼 보이지만, 피해자와 은밀한 관계였다는 의혹을 받는다. 서로에게 등을 돌린 부부, 기자 애나와 형사 잭은 같은 사건을 마주하지만 전혀 다른 해석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는 더 이상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의심해야 할 타인이 된다. 그 순간부터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관계가 무너진 두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구성한 서사가 된다.
〈그의 이야기 & 그녀의 이야기〉는 사건을 빠르게 해명하는 대신,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과 그 말 사이의 온도를 먼저 보여준다. 관객은 계속 의심하게 된다. 화면에 보이는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 사이의 간극. 말하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의 불일치. 관객은 정보를 쌓기보다 관계의 균열을 읽으며 이야기에 들어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판단 역시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애나의 내레이션은 이 구조를 미리 암시한다. 이 말은 공정함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전제를 심는다. 진실은 늘 복수의 시선 속에 있으며, 우리는 그중 하나를 선택해 믿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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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이야기 & 그녀의 이야기 공식 예고편 |
| ⓒ 넷플릭스 |
애나는 이렇게 말하지만, 이 작품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은 누가 거짓말을 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말이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는가에 가깝다.
잭의 설명, 애나의 태도, 마을 사람들의 증언은 각자 충분히 그럴듯하다. 관객은 이 그럴듯함 속에서 점점 '합리적인 추론'을 쌓아 올린다. 그 과정에서 어떤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어떤 시선은 끝내 질문조차 받지 않는다.
애나가 과거에 겪은 성폭력은 그 대표적인 예다. 애나는 16살 생일 파티에서 친구 캐서린이 성폭행당하려는 걸 막아주려다 애나 자신이 피해자가 됐다. 레이철과 헬렌, 조이는 그 장면을 지켜만 봤다. 그 일은 오랫동안 '사건'이 되지 못했고, '이야기'로도 채 기록되지 못했다. 말해지지 않았던 고통은 존재하지 않았던 일처럼 취급된다. 그리고 침묵은 결국 또 다른 비극의 토양이 된다.
이 작품에서 성폭력은 자극적인 장면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채, 인물들의 태도와 기억의 균열 속에 남아 있다. 어떤 사건은 이미 오래전에 벌어졌고, 어떤 진술은 끝내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서사는 분명히 말한다. 폭력 그 자체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그 이후에 이어진 침묵과 외면이라는 사실을.
〈그의 이야기 & 그녀의 이야기〉의 흥미로운 지점은, 사건의 핵심에 가까이 갈수록 더 이상 질문받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는 보호의 대상이며, 의심의 바깥에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진실은 멈춰 선다. 이 작품은 기억과 증언이 불완전해질수록, 책임 또한 흐려지는 사회의 방식을 정확히 포착한다.
이 시리즈의 후반 대반전이 강렬한 이유는 새로운 사실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관객이 이미 충분히 납득해온 이야기들이 얼마나 매끄럽게 하나의 방향으로 굳어졌는지를 뒤늦게 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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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이야기 & 그녀의 이야기 공식 예고편 |
| ⓒ 넷플릭스 |
또한 〈그의 이야기 & 그녀의 이야기〉는 진실을 감추지 않는다. 다만 사회가 어떤 진실을 외면해왔는지를 그대로 노출시킬 뿐이다. 살인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말해지지 않은 피해와 쉽게 통과된 설명들이 어떻게 하나의 '사실'처럼 굳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불편한 공백은, 애나를 직접 성폭력했던 남자들이 끝내 이야기 속에서 지워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공백은 설정의 허점이라기보다, 폭력을 가능하게 한 구조와 침묵에 더 집요하게 시선을 고정하려는 선택에 가깝다. 그래서 살해당한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공통된 지점에 닿게 된다. 누군가는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보았으며,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해 남성들이 처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미완이 아니라, 현실과 닮은 흔적이다.
이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도 수많은 사건이 사실의 무게보다 말의 태도로 평가되어 왔다. 차분하게 말하면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고, 감정이 흔들리면 의심의 대상이 된다. 피해의 내용보다 '피해자답게 말하고 있는가'가 먼저 검증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쉽게 신빙성을 잃는다. 그렇게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묻기보다, 어떤 말이 더 믿기 쉬웠는지를 먼저 선택해왔다.
관객은 끝내 진실에 도달한다. 동시에 그 진실을 알기 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익숙한 말과 안전한 추론에 기대어 이야기를 따라왔는지도 함께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이 남기는 불편함은 반전 그 자체보다, 그 반전이 드러나기 전까지 너무도 매끄럽게 작동했던 설명들에 있다. 진실이 사라지는 이유는 거짓이 교묘해서가 아니라, 의심이 멈추는 지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쉽게 믿어왔던 말들의 얼굴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ezmind921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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