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이 갈고 만들었다, 지브리의 시작 알린 이 영화
[김상목 기자]
승객을 태운 거대한 비행선을 노리고 하늘의 해적, '도라' 일당이 급습한다. 감시 아래 있던 소녀 '시타'는 비행선에서 추락하지만, 착용하던 '비행석'의 힘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광산촌에서 혼자 살던 소년 '파즈'는 우연히 소녀를 구조한다. 하지만 해적과 정부 요원 모두 시타를 찾는다. 둘은 추격을 피해 도주하며 친해지지만, 시타는 요원 '무스카' 손에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파즈는 다시 만난 해적단과 합세해 그녀를 구출하려 한다. 한편 무스카는 시타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비밀에 대해 소상히 파악한 상태다. 비행석을 손에 넣은 그는 파즈의 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해 사진을 찍었던 공중도시 '라퓨타'로 공중전함을 발진한다. 과연 파즈는 시타를 구하고 무스카의 음모를 저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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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 |
| ⓒ 대원미디어㈜ |
이들은 새로운 스튜디오의 비전과 가치를 구현하며 지속 가능성을 위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기념비적 데뷔작을 기획한다. 그 고심과 노력의 결실이 1986년,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로 탄생한다.
이 작품은 연출을 맡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범위를 넓히면 감독의 텔레비전 시리즈 <미래소년 코난>에서 연결되는 세계관과 주제의식을 명확히 지향한다. 현대 물질 만능, 과학기술 맹신, 개발지상주의 비판과 함께 무정부주의, 공동체 의식, 자연 친화성 지향을 분명히 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극적 재미와 완성도를 초월하는 교훈과 성찰로 연결되는 이미지를 확립한 작업인 것. 그러면서도 모험 활극으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는, 말 그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드문 사례다.
지브리의 중심 구성원들은 아동용으로 제작되던 세계명작동화 시리즈 작업을 1970년대에 오래 수행했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독서가로도 유명하다. 그런 기반 아래 한국이나 일본이나 청소년기에 한 번쯤 접했을 '걸리버 여행기'에서 1호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1826년에 영국 정치가이자 소설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집필한 소설은 아동문학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당대 영국 현실 정치를 풍자하기 위한 SF/Fantasy 장르로 창작된 작품이다. 대개 영상화 소재로 쓰던 1부 '소인국', 2부 '거인국'이 아니라 생소한 편인 3부를 가져온 결정은, 풍자 소설 성격이 진한 특징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소년만화풍 모험물로 변환하기 좋다는 의도도 더한다. 그렇게 주도면밀한 고려 아래 역사적 작업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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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 |
| ⓒ 대원미디어㈜ |
여기에서 특이점도 발견된다. 소설을 읽을 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반항적인 속국에는 무력으로 위협하며 억압하는 제국주의 행태도 드러낸다. 그러나 끝내 진압에 실패하고 자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등장한다. 마치 시민혁명 혹은 독립투쟁을 연상케 하는 이런 대목은 저자인 스위프트가 당시 영국의 내부 식민지로 수탈을 당하던 아일랜드 출신에서 기인한다.
그런 원작의 정치적 입장과 함께, 당시 고도성장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번성하던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초 고대 문명설'의 대중적 관심도 이야기에 한몫 단단히 끼어든다. 아틀란티스나 무대륙 같은 신비주의 가설이 지적 여흥으로 폭넓게 유통되던 사회 상황이 반영된 것. 프라모델과 SF 장르 열풍도 더해, <천공의 성 라퓨타> 속 고대 비행문명 설정과 대체역사로 재구성된 19세기 말~20세기 초 증기엔진과 비행선, 철도가 보급된 '스팀펑크' 묘사가 결합해 매력 넘치는 디자인과 콘셉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국내엔 덜 알려진,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밀덕(밀리터리 덕후)' 성향도 한몫한다.
물론 이야기를 가로지르는 핵심은 인간의 물욕을 극대화하는 산업 문명에 대한 근심과 대안으로 제기된 생태적 공동체 희구다.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내에서 전 국민이 슈퍼히어로 급 힘을 숨긴 국가, '와칸다'의 국력과 기술력 원천인 '비브라늄'을 떠올리게 하는 '비행석'은 오래전 초월적 비행문명을 일궜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700년 전 라퓨타를 제외한 부유도시는 모두 멸망하고, 잔존 라퓨타 인은 지상으로 내려와 살게 된다. 이후 인류가 다시 하늘을 날게 되면서 봉인된 고대 기술력을 탐내게 된 것이다. 역사는 그릇된 방향으로 반복될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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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 |
| ⓒ 대원미디어㈜ |
물론 분열과 갈등은 옛 종족의 후예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파즈와 광산마을 사람들은 선량하고 근면하게 땅의 혜택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이다. 도라 해적단 역시 보물을 탐하긴 해도 낭만과 인정을 간직한 존재다. 반면에 고대 문명의 보화와 기술력을 탐내고 독차지하려는 정부와 군대는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파헤치는 탐욕으로 가득하다. 과거나 현재나 인간의 욕망과 집착은 변함이 없다.
그런 갈등이 신비의 공중도시 라퓨타를 둘러싼 항쟁 가운데 격렬하게 충돌하며 이야기는 극점으로 향한다. 왜 초월적 기술력을 보유한 공중도시가 멸망을 막지 못했는지는 알 길 없으나 고대인들이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것만은 분명하다. 시타의 선조는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을 택했다. 그 결론은 자신들이 열등하다 여겼던 지상 인간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하지만 무스카의 가문처럼 지배와 정복욕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시 발전도상에 오른 현실 국가 배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는 문명과 국가가 쇠퇴와 재건을 반복하는 가운데 끝없이 이어질 숙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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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 |
| ⓒ 대원미디어㈜ |
제작진은 그들이 삶에서 경험한 것들을 상상 세계의 이미지로 구현한다. 하지만 문명과 기술을 몽땅 부정한 채 중세로 회귀하는 게 아니다. 필요한 만큼, 과도하지 않게 활용하자는 것이다. 오무로 장군과 군대의 무력으로 표상하는 근대 거대 산업국가와 제국주의 행태 대신에, 근면히 일하며 서로 돕는 상호부조 공동체가 이상향으로 제시된다.
초반, 해적에 맞서 파즈와 시타를 돕는 마을 주민들의 집 안에는 노동자 권리를 옹호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들은 군대의 포격에도 주눅 들지 않고 최선을 다해 주인공들을 돕는다. 폭압적 공권력에 당당히 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열망은 산업혁명 이후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정치적으로 각성한 노동 계급 묘사로 이어진다. 19세기 말 유럽을 모델로 한 작품 배경을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 감독의 의도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런 심모원려가 액션 모험물과 어긋나지 않게, 다시 봐도 경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원화와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천공의 성 라퓨타>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달성한다. 40년 전에 공개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영화 속 부활한 라퓨타처럼 오늘날 다시금 발굴될 풍부한 가치를 지닌다. 전 지구적 기후재난 앞에서도 오로지 성장과 소비에만 몰두하는 이들, 권력을 악용해 이익에 광분하는 자들의 얼굴이 영화 속 악당들과 겹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에 맞선 선한 이들의 민주주의와 편견 없는 연대가 더욱 절실한 시대에 라퓨타가 돌아왔다.
<작품정보>
천공의 성 라퓨타
天てん空くうの城しろラピュタ
Laputa : Castle in the Sky
1986|일본|애니메이션, 어드벤처, 판타지, SF
2026.01.21. (재)개봉|124분|전체관람가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목소리 출연 타나카 마유미, 요코자와 케이코, 하츠이 코토에,
투명 테라다 미노리, 도키타 후지오, 나가이 이치로 外
음악 히사이시 조
엔딩 주제가 이노우에 아즈미, <너를 태우고>(君をのせて)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수입 대원미디어㈜
배급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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