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있는데 '보건' 표시 과목은 안 되고, '간호' 표시 과목은 된다고?
[김지학 기자]
페르낭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를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시장의 합리성과 법적 공정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시장 위에 서서 최상층부를 독점하고 규칙을 비틀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질서를 재단한다는 것이다. 브로델이 특히 경계한 것은, 겉으로는 투명해 보이지만 실상은 불투명한 이러한 자본주의적 행보가 적절히 규율되지 않을 경우, 일상의 모든 영역을 침습하며 독주 체제로 굳어져 현장을 훼파한다는 점이다.
최근 교육부가 입법 예고한 '특성화고 간호 표시과목 분리 부여' 정책은 엉뚱하게도 이러한 브로델의 통찰을 교육 행정에 그대로 투영한다. 법률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교육부가 법률 위에 서서 제도와 정책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며 보건교육 현장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교사는 오랫동안 초·중·고등학교에서 보건교육을 담당해 왔다. 성, 비만, 자살, 우울증 등 사회적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보건교사에 의해 땜질식으로 이루어지던 보건교육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거쳐 제17대 국회 여야 합의로 2007년 학교보건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했다.
이에 따라 2009년 3월 1일부터 초등학교 5·6학년, 중·고등학교에서는 1개 학년 이상 연간 17시간 이상의 보건교육이 의무화되었고, 교육부장관이 도서와 시수를 정하도록 하면서 교육과정 고시에 따라 시수가 약간 조정되기도 했지만,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입법을 통해 중·고등학교에 '보건' 과목도 설치되었다.
이러한 법적 근거에 따라 보건교사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는 직업교육의 일환으로 '간호'를,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건강과 보건의료계열 진로·진학을 위해 '보건'과 '간호'를 함께 가르쳐 왔다.
문제는 학교보건법 개정으로 과목이 설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교원자격검정령을 개정해 보통 과목으로 '보건' 표시과목을 명시해야 할 법적 의무를 20여 년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일부 학교에서는 법률에 따라 보건 수업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법정 의무 수업인 보건교육을 시행하지 않거나, 수업을 하지 않고도 시수를 채운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등 보건교육이 표류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다. 이는 단순한 정책 미흡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면서 거짓을 자행하도록 하는 명백한 교육 행정의 부작위다.
표시과목은 교사의 전공 전문성을 드러내는 명칭일 뿐만 아니라 국가 교육과정에서 해당 교과가 교과로 편성·운영되기 위한 핵심적 장치다. 표시과목이 명시되어야 교과서 개발, 시수 배정, 성취기준 설정, 교원 양성과 연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반대로 표시과목의 부재는 해당 교육을 임시적이고 부수적인 영역으로 전락시키며 , 교육과정의 안정성과 학생의 학습권을 구조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이러한 부작위에 대한 성찰이나 시정 없이, 특성화고의 '간호'만을 표시과목으로 부여하겠다는 입법예고를 내놓았다. 그 이유로 교원 양성과 연수 체계의 부족을 들고 있으나, 이는 본질을 비켜간 설명이다. 체계의 부족이 문제라면, 먼저 '보건' 표시과목을 명시하고 보건교사의 양성·연수 체계를 정비했어야 한다. 법적 근거가 이미 존재함에도 이를 방치해 온 주체가, 그 부족을 이유로 특정 영역만을 분리해서 특화하겠다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지 않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부가 이 과정에서 "표시과목이 있는 교사는 수업만 담당한다"는, 법령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 표시과목을 부여하면 보건교사는 보건 수업만 해야 하므로 보건실 처치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인데, 이는 현행 교육법 체계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보통 교사의 직무는 수업에 한정되지 않으며, 담임, 생활지도, 학생 안전과 보호 등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더구나 보건교사의 법적 직무는 보건교육과 학생 건강 관리이며, 보건교육과 보건실 운영, 응급처치는 분리될 수 없는 전문 영역이다. 표시과목을 이유로 보건실 처치는 배제된다는 발상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교사의 법적 직무를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고집스런 재량권 남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보건교사가 표시 과목을 가진 교사와 동일한 양성, 임용 과정을 거치는 데도, 20여년간 표시 과목을 부여하지 않아 헌법 제11조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의 소지마저 있다.
교육부는 보건교육의 특수성 또한 간과하고 있다. '보건'과 '간호'는 건강 관리 및 임상 실무가 긴밀히 연계된 교과로, 의료인 출신 보건교사가 담당해 왔으며 의료인은 실제 처치를 하는 것을 전제로 매년 보수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의 주장대로 '간호' 표시 과목 교사가 수업만 하고 보건실 처치를 담당하지 않게 되면, 의료인 보수교육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고, 이는 간호조무사 등 의료 보조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직업교육의 목표인 임상적 전문성과 현장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교육부는 '보건'을 보통교과 표시과목으로 부여할 경우, '보건'과 '간호'를 함께 가르칠 수 있다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건교사는 현장의 필요에 따라 두 교과를 통합적으로 교육해 왔으며, 2015 교육과정 이후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필요 시 '보건' 과목 뿐만 아니라 전문교과인 '간호' 과목을 개설해 보건의료계열 진로·진학 교육과정을 운영해 왔다. 교육부의 정책대로라면, 이제는 학교에 보건교사가 있음에도 별도의 비용을 들여 강사를 초빙해야 하거나, 과목 개설 자체를 축소할 수 밖에 없다.
결국 '특성화고 간호 표시과목 분리 부여' 정책은 이미 충분히 작동하던 보건교사에 의한 보건·간호 공교육 체계를 인위적으로 해체하고, 불필요한 비용과 혼란만 초래한다.
이는 합리와 법치를 가장한 교육부의 선택적 행정이라는 점에서 브로델이 지적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과 닮아 있다. 언뜻 보면 법에 따른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건' 표시과목을 끝까지 회피하며 학교 보건 현장과 학생의 권리를 후순위로 미루는 행보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타당하지 않는 이유를 대면서 구별하는 특화가 아니라, 보통 교과로서 '보건' 표시과목을 부여해 보건교육의 법적 지위를 정당하게 회복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할 일은 법과 현장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치의 정신에 따라, 교사의 전문성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돕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학교보건법에 따른 보건 표시 과목 부여는 20여년 째 방기하면서 방학 중 기습적으로 특성화고등학교 간호 표시 과목을 부여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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