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전쟁을 치르는 우리 모두에게… [김소연 칼럼]
“이게 뭐야?” (그레타)
“말차.”
...
“사무라이들이 전쟁 나갈 때 이걸 마셨대.” (데이브)
“자기는 송라이터지 사무라이가 아니야.” (그레타)
“그것도 일종의 사무라이거든.” (데이브)
<영화 비긴 어게인 中>
숱한 화제를 뿌리며 막을 내린 ‘흑백요리사2’를 보며 영화 ‘비긴 어게인’이 떠올랐습니다.
흑백요리사2 마지막 대결의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였습니다. 우승자가 된 최강록 셰프는 “나를 위한 음식은 라면밖에 해본 적이 없다”며 깨두부를 넣은 국물 요리와 소주를 내놓았죠. “깨두부는 게을러지지 말라고 알려준 음식이었다”고 덧붙이면서요. 실제 전분이 있는 깨두부는 강불에서 만들면 일부가 빨리 굳어버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약불로 해놓고 그 앞을 지키며 쉼 없이 저어줘야 하는 음식입니다.
최 셰프는 조림 요리로 요리 서바이벌에서 우승한 후 ‘조림 인간’ ‘연쇄 조림마’ ‘조림핑’ 등의 별명을 얻었죠. 당연히 조림을 할 거라 예상했던 그가 조림을 버리고 일견 평범해 보이는 국물과 소주를 내놓았을 때 다들 의아해했습니다.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저한테 위로를 주고 싶었다. 매일 너무 다그치기만 했는데, 저를 위한 요리는 90초도 써 본 적이 없다. 이 가상 공간의 세계에서 해보고 싶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성실함의 아이콘 최 셰프의 ‘매일 다그쳤던 나를 위한 요리’는 전 세대에 큰 울림을 줬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한 2030에게는 ‘노력하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래 버티는 게 의미가 있겠구나’ ‘성실함이 조롱받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등의 화두를 던져줬죠. 빠르지 않아도, 튀지 않아도,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할까요. 그런가 하면 “평생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휙휙 바뀌는 세상 앞에서 어느덧 꼰대가 된 나는 잘 살아온 건가.” 늘 불안한 4050에게는 ‘내가 지켜온 방식이 전부 맹탕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위안을 줬습니다.
그뿐인가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 제목에 빗대면 ‘돈은 없지만 맛있는 음식은 먹고 싶어’처럼 어쩌면 음식의 역사는 싸구려 재료를 가지고 맛을 내기 위한 무한한 도전의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재료가 좋으면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죠. 그렇다고 누구나 트러플을 치즈처럼 갈아대고, 10만원이 넘는 명품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할 수는 없을 테죠. 엄청난 식재료가 아닌 소박한 닭 뼈와 파로 육수를 우려내고 호박잎 등을 곁들인 깨두부 국물 요리에 심사위원도 시청자도 울컥한 이유입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보죠. 영화 ‘비긴 어게인’을 뜬금없이 소환한 건,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앞두고 말차를 마시는 데이브가 최 셰프와 겹쳐 보여서입니다. 사무라이들은 전쟁 나갈 때 왜 말차를 마셨을까요. 내일 치를 전투에서 과연 내 머리가 내 목에 붙어 있을까. 긴장감이 극도로 휘몰아치는 와중에, 경건하게 말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은 그들에게 곧 구원의 시간이었지 않을까요. 사무라이와 데이브와 최강록 셰프만일까요. 매일 나만의 전쟁터로 나가, 매일 나만의 전쟁을 치르는, 우리 모두에게 따끈한 위로의 국물 한 사발 대접하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4호 (2026.01.21~01.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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