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말해도 불이익 없는 교실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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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나는 한국 교육이 개인의 노력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짚었다(관련기사 : 아이들의 꿈이 '하루 쉬는 것'이라면, 이 교육은 정상인가 https://omn.kr/2gpi8). 아이와 청년을 끊임없이 줄 세우는 경쟁 중심 교육이 어떻게 불평등을 확대하고, 포기와 좌절을 너무 이른 시기부터 경험하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했다.
문제는 지금의 교육 구조가 이러한 기본교육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교육 경쟁은 지나치게 강도가 높고, 너무 이른 시기에 아이들을 갈라놓는다. 교육 경쟁의 강도를 낮추는 구조적 전환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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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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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사진 |
| ⓒ tomhermans on Unsplash |
얼마 전 한 중학교 교사가 들려준 이야기다. 수학 수업 시간,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 한 아이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르겠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교실의 시간은 멈춘다. 진도는 기다려주지 않고, 아이는 결국 사교육을 받지 않는 '부족한 학생'으로 분류된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질문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하는 순간 자신이 낙오자임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교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경쟁의 규칙을 먼저 가르친다.
기본교육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기본교육은 '기본사회'를 떠받치는 핵심 축이다. 기본사회가 소득·주거·의료 등 삶의 기본적인 물적 조건을 보장하는 무대라면, 기본교육은 그 위에서 개인이 어떤 삶을 선택하고 어떤 시민으로 살아갈지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다. 태어날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누구나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기본 능력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교육, 그것이 기본교육이다.
삶의 안전망이 약한 사회에서 교육은 변별과 서열의 도구가 된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앞서는지를 가르는 장치가 된다. 그러나 기본사회에서의 교육은 다르다. 기본교육은 남을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능력,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의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다. 교육의 목적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기본교육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교육 구조
문제는 지금의 교육 구조가 이러한 기본교육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교육 경쟁은 지나치게 강도가 높고, 너무 이른 시기에 아이들을 갈라놓는다. 한 번 뒤처지면 "이미 늦었다"는 말이 따라붙고, 이후의 경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회복의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본교육은 선언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교육 경쟁의 강도를 낮추는 구조적 전환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 핵심에는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 구조가 있다. 이 구조는 입시 경쟁을 끝없이 증폭시키는 엔진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권역별 연합대학' 등의 논의가 등장하고 있다. 대학을 몇 곳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 경쟁이 작동해 온 전제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대학입학시험 역시 이와 맞물려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기본교육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학교는 경쟁의 현장이 아니라 이해·회복·참여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먼저 '이해의 공간'이다. 지금의 학교는 정해진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이해의 공간이란 예습과 사교육을 전제로 하지 않는 수업, "모르겠다"고 말해도 불이익이 없는 교실이다. 이해는 학생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다.
다음은 '회복의 공간'이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한 번의 실패가 낙인이 된다. 회복의 공간이란 성적 하락이나 실패를 끝으로 보지 않고, 다시 따라갈 수 있는 시간과 경로를 학교가 책임지는 구조다. 교육에서 회복이 사라지는 순간, 아이들은 배움보다 포기부터 먼저 배우게 된다.
마지막은 '참여의 공간'이다. 정답을 아는 소수만 말하는 교실이 아니라, 질문하고 토론하며 함께 배움을 만들어가는 학교다. 아이를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주체로 대하는 공간이다. 이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다. 점수보다 중요한 것은 창의적 사고, 공감과 연대, 소통과 협력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기본교육이 지향하는 가치
기본교육은 단순히 학교 수업을 바꾸는 정책이 아니다. 이는 교육을 통해 사회의 구조와 미래를 함께 바꾸려는 제안이다. 기본교육이 지향하는 가치는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경쟁과 고립 속에서 약화된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 무상교육을 통해 출발선의 차이가 결과의 격차로 굳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 교육과 돌봄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어 저출산과 인구 절벽에 대응하는 일,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을 완화해 지역인재가 지역에 정착하도록 하는 일, 그리고 지역의 특성과 산업을 교육과정에 반영해 국토 균형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해외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북유럽 국가들은 교육을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로 인식하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국가가 책임진다. 그 결과 높은 사회적 이동성과 사회적 신뢰를 동시에 확보했다. 반면 교육을 개인의 투자에 맡긴 모델은 학자금 부채와 계층 고착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한국이 겪는 극단적 교육 경쟁과 저출산은 이 연장선에 있다.
기본교육은 이미 국제 규범과 헌법, 교육기본법에 의해 충분한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명분이 아니라 실천이다. 기본교육을 국가의 명확한 책무로 규정하고, 제도와 재정을 통해 뒷받침하는 일이다.
기본교육은 비용이 아니다. 사회가 미래를 위해 감당해야 할 가장 확실한 투자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교육을 경쟁에 맡길 것인가, 존엄과 회복에 맡길 것인가. 이제 한국 사회는 분명한 답을 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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