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이 '초록점'을 응시해 보세요
지난해 겨울 딸과 15박 16일간 뉴욕 미술관을 여행했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따뜻한 온기와 소박한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제 작은 기록이 여러분의 일상에 기분 좋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기자말>
[문현호 기자]
(이전 기사 : 15박 16일 뉴욕 여행, 아빠가 두 달 내내 준비한 것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여행에서 딸에게 재미있는 말을 하나 배웠습니다. 이름하여 '미국 차원 달라병'입니다. 미국의 음식이나 생필품들이 우리가 알던 기준을 훌쩍 넘어서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압도감을 준다는 뜻이라네요. 실제로 이번 뉴욕 여행에서 차원이 다름을 실감한 순간이 딱 두 번 있었습니다.
하나는 뉴욕의 피자였습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이 새어 나왔습니다. 이래서 닌자 거북이들이 그렇게 피자에 진심이었구나 싶어,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하고도 솔직한 맛은, 묘하게도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에너지와 닮아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미술관에서 찾아왔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거장들의 원화를 실물로 마주했을 때의 그 거대한 울림입니다. 특히 뉴욕 현대 미술관(MoMA) 5층에서 만난 고흐의 작품들은, 그것이 평면적인 그림이 아니라 화가의 생생한 고통과 희망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입체적인 기록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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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 Gallery 501) |
| ⓒ 문현호 |
캔버스 가까이 다가가 그림의 옆면을 슬쩍 들여다보면, 물감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솟아올라 있습니다. 물감을 튜브에서 직접 짜내어 짓이기듯 칠한 임파스토 기법의 흔적들은 고흐가 그 밤에 쏟아부었을 고독의 깊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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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리브 나무 (The Olive Trees - Gallery 501) |
| ⓒ 문현호 |
캔버스 위의 소용돌이치는 필치를 보고 있으면, 자연은 우리에게 정답을 주지는 않지만 늘 묵묵히 곁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꺾이지 않고 뒤틀림 그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바꾼 그의 붓질을 보며, 곁에서 그림에 몰입해 있는 딸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삶의 굽이치는 길목에 서게 될 때, 그 굴곡들이 모여 결국 너만의 단단하고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건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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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 - Gallery 502) |
| ⓒ 문현호 |
500년 넘게 서구 미술을 지배해온 원근법과 단일 시점이라는 규칙을 피카소는 단칼에 베어버렸습니다. 아프리카 가면의 강렬한 생명력을 캔버스에 이식하고, 여러 각도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구겨 넣은 이 다시점의 혁명은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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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 단장하는 여인 (Woman Dressing Her Hair - Gallery 514) |
| ⓒ 문현호 |
사실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얼마나 많은 포장지로 싸여 있나요. 피카소는 그 포장지를 다 찢어버리고 남은 날 것의 진실, 때로는 마주하기 두려운 인간의 내면적 심연을 마주하게 합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을 부수고 그 자리에 들어선 뒤틀린 진실. 작품은 익숙한 편안함을 버릴 때 비로소 진짜 나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어쩌면 피카소가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진짜 선물은, 보기 좋은 가짜보다 조금 투박하고 괴롭더라도 정직한 진짜를 마주하는 용기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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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와 마을 (I and the Village - Gallery 503) |
| ⓒ 문현호 |
두 존재의 눈을 연결하는 저 가느다란 하얀 점선은, 우리 존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영적인 연결 고리 같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 정신적으로 연결된 대상이 있다는 것, 그 기억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샤갈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초록색으로 우리를 다독이며, 마음속에 간직한 소중한 기억이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속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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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 II (Hope II - 5층 복도) |
| ⓒ 문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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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원 (The Park - 5층 복도) |
| ⓒ 문현호 |
보석처럼 박힌 무수한 초록점들은 마치 우리네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거대한 숲을 이루는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복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이 작품 속 무수한 점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힐링'의 순간을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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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 (Dance I - Gallery 506) |
| ⓒ 문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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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 즈보로우스카 (Anna Zborowska - Gallery 513) |
| ⓒ 문현호 |
'불필요한 것을 덜어냈을 때 무엇이 남는가?'라는 그의 질문은, 뉴욕의 화려함에 취해있던 우리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몬드리안의 캔버스는 복잡한 감정의 파도를 걷어내고 남은 삶의 가장 단단한 뼈대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장 단순한 진리인 정직하게 살고, 사랑하고,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기록을 빌려 나만의 일기를 쓰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흐의 소용돌이에서 나의 불안을 다독이고, 피카소의 해체에서 가식의 껍데기를 벗겨내며, 몬드리안의 직선에서 삶의 군더더기를 깎아내는 그 찰나의 순간들 말입니다. 거장들이 평생을 바쳐 부수고 해체하며 찾아낸 그 본질은, 결국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지탱하는 아주 작고 단단한 마음의 뼈대였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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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 (Composition with Red, Black, Blue, Yellow, and Gray - Gallery 512) |
| ⓒ 문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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