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실패한 혁명들

결국 비극적 실패로 마무리
4·19 역시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광주 거쳐 87년 승리의 밑거름 돼
거리에서 피 흘리는 이란 시민들
봄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이란 대규모 시위 뉴스를 읽으면 2010년대 신문 지면을 뒤덮었던 ‘아랍의 봄’ 사태에 빗대어 보게 된다.
나는 아랍의 봄을 생각할 때마다 허무감을 느낀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젊은 세대가 소셜미디어로 연결되면서 독재 정권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는 기적 같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독재가 무너진 자리에 이슬람 근본주의 신정체제가 등장했고, 오랜 내전의 결과 무장 집단이 테러리스트로 변모해 더 큰 고통을 겪게 된 곳도 적지 않다. 가장 가슴 아픈 곳은 시리아였다. 아사드 정권의 심복들이 국민의 뜻을 좇아 내전을 벌였지만, 다마스쿠스 진격 작전은 끝내 실패했다.
그때 국제부 기자였던 나는 매일 아침 현지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확인하면서 경악했다. 아랍의 봄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나라에서 혁명의 열기가 시들자, 알카에다 잔당이 사막 도시들을 점령해 갔다. 마치 비 온 뒤 죽순이 자라고 곰팡이가 피는 것 같았다. 독재는 무너져야 하고, 시민의 혁명은 성공해야 한다고 응원하며 열심히 기사를 썼던 나는 그 결과에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만 내 마음에 남았다. 거리로 나왔던 청년들, 카메라에 웃음 짓던 아이들, 독재자를 조롱했던 여성들, 합리적인 통치를 요구했던 성직자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아랍의 봄은 왜 그렇게 비극으로 끝났나.
지금 다시 테헤란발 외신 사진에서 광장에 모인 군중을 본다. 응원과 지지를 호소하는 소셜미디어 영상을 본다. 나는 쉽사리 민주주의의 열망에 들뜨지 않는다. 아랍의 봄과 같은 실패와 비극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앞선다.
“실패한 혁명들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았을까?”
답을 구하려니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1960년 4월, 서울의 첫 번째 봄도 그러했다. 부정선거에 항거한 학생들의 피, 시민의 땀과 눈물은 정권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 그때도 기쁨은 짧았다. 이듬해 5월, 탱크를 앞세운 군부 쿠데타에 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화 이후의 혼란보다는 유능한 청년 군인들의 카리스마를 더 기대했다. 군인들의 지배는 1987년, 어쩌면 1992년까지도 이어졌다고 볼 수 있으니, 4·19는 30년 가까이 미완의 혁명이자 실패한 혁명이었다.
지금 우리는 안다. 5·16의 좌절은 4·19의 환희를 지우지 못했다. 4·19의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깊숙이 각인되었다. 경찰이 상주하는 대학 캠퍼스에서도 학생운동은 이어졌고, 짧은 민주주의의 시기에 등장한 야당 지도자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실패의 기억은 1979년 부마항쟁의 불씨가 됐고, 1980년 광주의 함성으로 분출했고, 1987년 6월 항쟁에 밑거름이 되었다. 혁명은 단절되지 않았다. 실패의 시간을 견딜 힘이었다.
10년이 훌쩍 넘은 아랍의 봄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엔 좌절로 보였지만, 한번 자유의 공기를 마신 세대는 새장 속에 잠잠히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실패의 교훈을 매일 곱씹었다. 더 정교하게 조직하며, 끈질기게 다시 일어서겠다고 벼르고 별렀다. 마침내 시리아에서는 2024년 12월 8일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아사드 독재 정권을 끝장냈다. 알제리에서, 수단에서, 이라크에서 이어진 ‘아랍의 봄 2.0’은 10년 전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지금 테헤란과 이스파한의 거리에서 피 흘리는 이란의 시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당신들의 싸움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나는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더 복잡해지고 더 꼬이면서 엉뚱한 결론으로 치달을 것만 같다. 그래서 여러분들 앞에는 어쩌면 더 큰 혼란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봄은 짧게 지나가고 살인 같은 여름과 겨울이 곧 닥치기 마련이니까. 그때 세계의 냉소적인 평론가들이 “또 하나의 실패한 혁명”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시선을 돌릴지 모른다. 그런 당신들에게 끝까지 싸우라고, 꼭 승리하리라고 응원하진 못하겠다. 내가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서. 그러나 이 말은 할 수 있다. 봄은 반드시 다시 온다. 그때까지 나는 여기서 노래를 불러주겠다.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BTS ‘봄날’)
김지방 종교국 부국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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