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베토벤의 아델라이데

1815년 1월 29일, 베토벤(사진)은 피아니스트로서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된 청력 때문이었다. 이때 그가 연주한 곡은 젊은 날,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피아노 소나타가 아니라 소박한 가곡이었다. 그러나 그 가곡 또한 더없이 베토벤다웠다.
“비치는 물결의 거울 속에, 알프스의 잔설 속에/ 내리 깔리는 하루, 금빛 적운의 무리 속에/ 별들의 그 광야 속에, 그대의 모습 빛을 발하는구나!/ 아델라이데!”(2연).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연인을 떠올리는 시 한 편, 베토벤은 거기 불멸의 선율을 붙였었다. 스물일곱 즈음인 1795~96년에 작곡하여 1802년, 가곡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단독 작품번호(op.46)를 달고 출판될 만큼 많은 인기를 누렸던 그 곡, ‘아델라이데’였다.

베토벤은 시인 마티손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부디 제 작품이 당신의 천상의 시 ‘아델라이데’를 오해한 게 아니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감동을 받으셨다면 제 뜨거운 소망은 이미 충족된 셈입니다.” 마티손 역시 이렇게 적었다. “빈의 천재 음악가 베토벤만큼 내 시어를 선율의 깊은 그늘 안에 들여놓았던 음악가는 없었다.”
‘아델라이데’는 느리고 명상적인 첫 부분과 마지막의 피날레로 나뉜다. 첫 부분은 먼 알프스의 다채로운 정경을 한 번은 완만하게 다음에는 큰 폭의 도약으로 그린다. 반면 피날레는 역동적이고 아리아를 연상시킬 만큼 화려하다. 온화한 그리움에서 출발해 사랑의 의지로 나아가는 시정을 하나의 음악적 발전 과정으로 표현했다. 한 폭의 서정시에서도 변화의 의지를 담아내다니, 참으로 베토벤다운 가곡이 아닌가.
베토벤은 그런 사람이었다. 인생의 중간 지점. 연주자로서의 커리어가 끝나는 지점에서 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변화의 의지를 다시금 생각했을 것이다. 비록 그의 곁에 ‘아델라이데’ 같은 연인은 없었지만 말이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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