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음’ 장기화…먼저 겪은 일본은 어땠나 [스페셜리포트]
스펙 인플레이션 체감 92%
인턴 경험·자격증 부담 1·2위
‘스펙 인플레이션’ 현상이 뚜렷하다는 반응도 상당수였다.‘과거에 비해 취업 준비에 요구되는 조건은 어떻게 변했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60%가 ‘훨씬 높아졌다’고 답했다. ‘다소 높아졌다’는 응답도 32%였다. 취업 조건이 까다로워졌다고 답한 이가 92%에 달했다. 높아진 취업 문턱 역시 ‘쉬었음’ 청년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가장 부담되는 요소(복수응답)로는 ‘인턴·현장 경험’이 56%로 1위를 차지했다. 기업이 신입사원에게도 실무 경험을 요구하면서 인턴십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문제는 좋은 인턴 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도 높은 스펙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인턴 경쟁률이 정규직 못지않게 치열해지면서 청년들은 이중 삼중의 부담을 안게 됐다.
‘자격증·스펙’도 41%가 부담 요소로 꼽았다. 토익은 기본이고 토플, 토익스피킹, 오픽 등 각종 영어 성적뿐 아니라 제2외국어, 컴퓨터 활용 능력, 전공 관련 자격증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각종 스펙을 준비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청년 취준생의 어깨를 짓누른다.
서울에서 수학을 전공했다는 대학생 서영일 씨(27) 사례가 그렇다. 서 씨는 1년간 졸업을 유예했다. 취업 준비 과악된다. 현재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에게 ‘현재 상태는 무엇이냐’고 묻고,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쉬었음’이다.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왜 쉬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정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다음 취업을 앞두고 재충전을 위해 쉬는 인원과, 노동 시장에서 반복된 좌절로 비자발적으로 쉬는 집단을 구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쉬었음’을 선택한 사유를 묻는 문항을 신설해 자발적·비자발적 쉬었음을 구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자발적 쉬었음은 재취업 가능성이 큰 집단이다. 이들보다 구직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비자발적 쉬었음 인구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진단 이후에는 교육 수준별 맞춤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교육 수준에 따라 희망 직무와 취업 실패 사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졸 미만 청년은 취업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초역량 강화와 취업 연계형 일자리 지원이 효과적이다. 고졸 청년에게는 현장 학습형 프로그램과 직무·기술 재교육 지원 정책이 대안으로 꼽힌다. 이미 기본 직무 역량을 갖춘 집단이라는 점을 고려한 접근이다. 마지막으로 대졸 이상 쉬었음 청년을 대상으로는 국가 전략산업과 공공부문 일자리 사업 확대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단기 근무 형태를 활용해 업무 경험을 쌓고, 취업 전 소득 공백을 완충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단계는 심리적·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다. 쉬었음 청년 다수는 사회적 안전망 부족에서 비롯된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1년 이상 ‘쉬었음’ 경험이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쉬었음 상태가 불안하다’는 응답이 77.2%에 달했다. 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인식은 줄고, ‘힘든 시간’ ‘구직 의욕을 꺾은 시간’이라는 인식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면 구직 의욕을 잃은 ‘장기 쉬었음’ 상태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좌절을 겪는 청년에게 심리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미숙 창원대 교수는 ‘쉬었음 청년 증가에 따른 정책 방안’ 보고서에서 “무기력 극복 프로그램, 청년 회복형 근로장학 제도 등 심리 회복과 경제활동 복귀를 동시에 지원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리 회복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 마련도 필수다. 이정민 부연구위원은 “(쉬었음 문제는) 청년 빈곤, 주거 문제, 정신건강 문제 등과 연계하여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취업 알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 문제다. 다양한 학문적 접근, 부처 간 협력을 통한 거버넌스 구축이 미래 정책 연구에서 강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로스제네’ ‘사토리세대’ 사회 문제로 심화
일본은 이른바 ‘버블경제’ 호황기가 붕괴한 뒤 장기간 경기 침체를 겪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제1차(1993~2005년·거품경제 붕괴), 제2차(2008~2013년·글로벌 금융위기) 취업 빙하기가 이어졌다. 이 시기 일본 노동 관련 지표는 전반적으로 악화했다. 청년층 고용 상황이 특히 최악으로 치달았다.
청년 고용 시장 악화는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로 직결됐다. 당시 등장한 ‘쉬었음’ 인구 일부는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NEET)으로 고착됐다. 세대 구성원 다수가 경제활동에서 이탈한 여파는, 노동 시장이 회복된 2020년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제1차 취업 빙하기 기간, 고용 시장 악화로 청년 니트족이 약 20만명 증가했다(25~34세 기준, 1996년 대비). 경기 회복이 시작된 2013년 이후 청년 실업률은 하락했지만, 니트족 상당수는 노동 시장으로 재진입하지 못했다. 이들이 노년층에 진입하는 2030년대에는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는 게 현지 전망이다.
일본은 ‘쉬었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 대응에 나서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직업 자립 지원 프로그램이 대표 사례다. 지역 청년 서포트스테이션(비영리단체)과 협력해 니트족 같은 장기 실업자·구직 단념자에게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과거에는 지원 나이를 15~34세로 제한했지만, 니트족의 장기화·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지원 대상을 49세까지 확대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2호 (2026.01.07~01.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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