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나를 애태우던 아이, 복도에 서 있던 이유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주에 종업식을 했다.
이렇게 여자 아이들과 안녕을 하고, 교실 뒤를 바라보니, 뒤에 서너 명만 뒷모습이 보이고, 나머지 남학생은 교실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나는 아이를 안았다.
그러던 아이가 종업식날, 나를 한 번 더 보겠다고 추운 복도에서 기다린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지영 기자]
|
|
| ▲ 눈이 와서 신난 날 오랜만에 함박눈이 왔다. 초등2학년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가 '눈꽃맞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 ⓒ 강지영 |
|
|
| ▲ 우리 모두는 달라요 "선생님! 발 모양과 크기가 다르듯이, 양말 색깔이 다르듯이, 우리 모두는 달라요. 공부하는 속도도 능력도 다르고요, 노는 방식도 다른 것이 많아요. 우리의 말에 귀기울여 주세요"라고 외치는 듯하다. |
| ⓒ 강지영 |
내가 저경력일 때는 통지표에 잘못하는 것을 지적하여 쓴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하여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경우를 못 보았다. 예전에, 등교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다. 통지표에 '학교에서 정한 규칙을 잘 지키면 좀 더 원만한 학교생활이 될 거'라고 평어를 썼는데도 고쳐지질 않았다. 그래서 고쳐야 할 일은 학부모에게 전화로 알리고, 통지표에는 좋은 말, 잘하는 점을 쓴다.
그리고 종업식날, 마지막 수업이라서 '우아하게' 마치려고 마음먹었다. 통지표 나눠 주고, 몇 가지 안내하고, 책가방 싸고, 옷 입고 가방 메고 귀가할 준비를 하였다. 여자 아이들은 교실 앞에 한 줄로 서라고 하였고, 남자아이들은 교실 뒤에 한 줄로 서라고 하였다. 남학생은 줄 서는 데 시간이 걸릴 듯했다. 먼저 여학생을 보내기로 했다.
여자 아이들을 한 사람씩 안아주며 간단한 인사말을 했다.
"OO야, 새해에는 건강하게 잘 지내. 그동안 너로 인해 기쁨이 넘쳤어."
"OO야, 3학년이 되면 발표할 때 목소리를 좀 더 크게 해서 발표하렴. 자신 있게 말이야. 알았지?"
"OO아, 새해에는 반찬을 골고루 먹어. 그래야 몸도 튼튼해지지."
"OO아, 3학년이 되면 학교에 장난감을 가져오지 않을 거지?"
"OO야, 수업 시간에 짝이랑 얘기하는 버릇을 고칠 거지? 난 너를 믿는다."
"OO아, 방학 동안에 줄넘기 연습을 많이 할 거지?"
등등의 덕담을 가장한 지도 조언을 했다. 이렇게 여자 아이들과 안녕을 하고, 교실 뒤를 바라보니, 뒤에 서너 명만 뒷모습이 보이고, 나머지 남학생은 교실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교실문을 열고 복도를 보니, 졸업식장에 가는 6학년 학생과 학부모들이 복도를 가득 매운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우리 반 남학생이 끼어 있으니 우리 반을 따로 부를 수도 없었다. 남학생과 악수하면서 인사말을 하려던 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다 귀가하고, 교실 뒷정리를 하였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직원들은 졸업식장 의자 정리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점심시간 가까이가 되었다. 조용해진 학교. 그런데, 복도에 한 아이가 서 있다. 누군가 하고 나가보니, 우리 반 여학생이었다. 추운데 집에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가고 싶어서 기다렸다는 거였다. 나는 아이를 안았다. 패딩 점퍼를 입었음에도 가녀린 상체가 느껴졌다.
|
|
| ▲ 종업식 전 날 학교 급식 자장밥, 오이부추무침, 간지치킨, 배추김치, 요거트토핑으로 꾸려진 학교급식이다. 학생과 교사 모두 즐거운 점심시간이었다. 맛도 영양도 최고의 식단이다. (인천 OO초등학교) |
| ⓒ 강지영 |
"OO야, 배가 고파도 기분이 나쁠 수 있어.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할걸? 그러니 어서 먹자!" 하고 꾀어도 묵묵부답, 미동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식판에 밥과 반찬, 그리고 자장을 떠다가 OO의 책상 위에 놓아주면서, "OO야, 지금 안 먹으면 이따가는 더 배가 고플 거야. 어서 먹자.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숟가락을 받아 든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뭐가 잘못된 걸까. 이것이 나쁜 버릇을 들이게 하는 것인지, 교사가 아이들을 나쁜 길로 몰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해진 점심시간에 학생도 나도 밥을 먹어야 하기에 그렇게 해결했다. 그러던 아이가 종업식날, 나를 한 번 더 보겠다고 추운 복도에서 기다린다. 겨울 방학 동안, 잘 지내고 새 학년을 맞이해야 할 텐데... 한 나무에서도 꽃이 피고 지는 순서가 다르듯이 OO는 조금 천천히 꽃을 피울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브런치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책임 안 느끼나? 명태균 대답은...
- 시민사회, 검찰개혁안 폐기 요구..."검찰의 새로운 식민지 설계"
- 이혜훈 청문회에서 봐야 할 단 한 가지
- 왜 전두환보다 엄한 형벌 내려야 할까... '윤석열 사형 구형'의 핵심
- 한동훈 "당 지킨 나를 제명? 이건 또 다른 계엄 선포"
- 기부는 어렵다? 축제 같은 기부 알려드립니다
- 요즘 유행하는 '경찰과 도둑', 내가 결코 안 하는 이유
- 336일 만에 내려와 곧장 교섭장으로... 홀로 싸우던 노동자, 땅 위 동지들 곁으로
- K-영화로 관심받는 한국영상자료원... 영화계, 원장 공모 주시
- 격렬한 이란 반정부 시위, 정권에 충성했던 상인들은 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