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한일령보다 가혹한 한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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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문제삼아 '한일령'을 발동했다.
중국은 그때마다 일본에 제재를 가하고 반일 시위를 전개했지만 사드 사태에 비해 강도가 약하고 기간도 짧았다. 이번 한일령 발동 전만 해도 중국에선 해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개봉됐고 대중 가수의 공연도 허용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7일 한국 대통령으로선 9년 만에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한한령 해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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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문제삼아 ‘한일령’을 발동했다. 한일령은 중국이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사태 때 한국에 취한 ‘한한령’(한류제한령)에 빗댄 표현이다. 일본여행 자제 권고로 시작해 일본 대중가수 공연 중단, 일본 영화 개봉 보류를 거쳐 일본행 항공편 대거 축소와 이중 용도 물자 수출 통제로 강도를 높였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국가 핵심 이익이자 넘어선 안 되는 ‘레드라인’으로 간주한다.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이고 ‘하나의 중국’만 존재하기에 대만의 분리·독립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외부 세력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면 스스로 지른 불에 타 죽을 것’이라는 살벌한 경고도 주저하지 않는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대만을 할양받고 50년간 식민지배했다. 중국 입장에선 대만을 앗아간 일본이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침략 역사를 부인한 것과 같다. 중국 외교관이 ‘참수’ 운운하며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철회를 요구하고 한일령을 발동한 배경이다. 중국은 지난해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기념해 사상 최대 규모 열병식을 개최했다. 난징대학살과 731부대의 만행을 폭로하는 영화도 잇따라 개봉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레드라인을 넘었으니 중국 내에서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일본산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났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유니클로 등 일본 브랜드 매장엔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하마로 등 중국에 진출한 일본의 인기 프랜차이즈 식당엔 30분 이상 대기줄이 늘어선다. 짱구와 도라에몽, 슬램덩크 등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도 여전히 인기다.
중국이 2016년 사드 사태 때 한한령을 발동하면서 취했던 보복 조치와 비교하면 체감 온도가 확연히 다르다. 당시 중국 곳곳에선 반한 시위와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됐다. 현대차·기아와 롯데 등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은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해야 했다. 한국 아이돌의 중국 내 공연은 전면 금지됐고 한국 영화는 2021년 ‘오! 문희’를 제외하곤 한 편도 개봉하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은 불법 채널이 아니면 접할 수 없게 됐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 역사는 한국보다 훨씬 오래됐다. 2000년대 이후만 봐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 교과서 수정을 통한 침략 역사 부인,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 등을 놓고 충돌했다. 중국은 그때마다 일본에 제재를 가하고 반일 시위를 전개했지만 사드 사태에 비해 강도가 약하고 기간도 짧았다. 이번 한일령 발동 전만 해도 중국에선 해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개봉됐고 대중 가수의 공연도 허용됐다. 사드 사태 한 번으로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10년 가까이 철저히 차단된 것과 비교하면 중국이 일본보다 한국에 우호적일 것이라는 한국인의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7일 한국 대통령으로선 9년 만에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한한령 해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한·중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은 뗐지만 갈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한한령 해제에 대해 “봄도 갑자기 오지 않는다.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질서있게 유익하게 건강하게 잘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는 지난해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 대통령 특사단의 방중 때도 문화 교류 확대에 공감을 표해 한한령 해제 기대감을 높였지만 모두 빈말에 그쳤다. ‘질서있는 해결’이 한한령 해제를 미루는 또다른 핑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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