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입금 4시간 후의 비극, 내겐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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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기자]
오전 10시,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짧은 진동. 올 것이 왔다. 은행 앱 알림 팝업에 뜬 네 글자 '급여 입금'.
한 달 동안 상사의 핀잔을 견디고, 야근 식대로 때운 뱃살을 얻어가며, 아침마다 천근만근인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대가다. 숫자를 확인한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려는 찰나, 스마트폰이 발작하듯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카드 대금 출금", "전세 대출 이자 출금", "통신비 자동이체", "관리비 납부".
조금 과장하면 하이패스도 이보다는 느릴 것이다. 내 월급은 내 통장을 '정거장' 쯤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다. 잠시 머무르지도 않고, 빛의 속도로 카드사와 은행으로 흩어진다. 오후 2시, 다시 열어본 은행 앱에는 처참한 잔고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이것을 돈이라 부르지 않는다. 내가 만져보지도 못한, 그저 화면 속 숫자 데이터. 그래, 이것은 '사이버 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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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ck photo of the Business Man with a credit card by rupixen |
| ⓒ rupixen on Unsplash |
'매매가 12억 원.'
순간 뇌 기능이 정지한다.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통장에 남은 쥐꼬리만 한 잔고 말고, 내가 숨만 쉬고 한 푼도 안 쓰고 월급을 고스란히 모은다고 가정해보자. 1년에 3천만 원을 모은다고 쳐도 10년이면 3억, 40년이면 12억이다. 내가 칠순 잔치를 할 때쯤이면 저 집 현관문 열쇠를 쥘 수 있을까. 아, 물가 상승률을 깜빡했다. 40년 뒤 저 집은 아마 30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내 월급으로 저 집을 사는 건, 이번 생에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이 명백한 숫자 앞에서 많은 청년 직장인들은 '자책'이라는 늪에 빠진다.
'내가 더 노오력을 안 해서 그래', '남들 코인 할 때 나는 뭐 했나', '월급쟁이로 사는 내가 바보지'.
하지만 나는 오늘 이 글을 통해 감히 말하고 싶다. 나의 텅 빈 통장은 실패가 아니라고. 뼈 빠지게 일해서 버는 '노동 소득'의 속도가, 자고 나면 오르는 '자산 소득'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건 나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시스템의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라고.
그런데도 나를 비롯한 우리는 그 책임을 온전히 자신에게로 돌리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12억짜리 아파트가 없다고 해서,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만원 지하철에 오르는 성실함마저 헐값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어떤 동료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다가 금리 폭탄을 맞아 허덕이고, 어떤 동료는 집 사기를 포기하고 외제차를 샀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전세 대출 이자가 오르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겁쟁이 세입자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잘못' 산 사람은 없다. 각자의 방식대로 이 거친 파도를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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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앱을 껐다. |
| ⓒ 오마이뉴스 |
10억짜리 아파트는 못 사더라도, 내 힘으로 번 돈으로 오늘 저녁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자유. 은퇴 후의 안락한 삶은 보장 못 하더라도, 당장 내 삶을 지탱하는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내 몫으로 감당해 내는 책임감. 이것은 비루한 정신 승리가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하게 내 삶을 책임지려는 숭고한 투쟁이다.
부동산 앱을 종료했다. 12억이라는 숫자가 주는 절망감에 짓눌리기엔, 오후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고, 퇴근 후 나를 기다리는 맥주 한 잔이 너무 소중하다.
비록 내 통장은 하이패스 차로처럼 뻥 뚫려버렸지만, 그 대가로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고 하루를 살아냈다. '택도 없는' 월급이라 욕하면서도,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좀비처럼 일어나 출근할 나 자신을 응원한다. 집은 없어도, 성실하게 오늘을 채워간 하루는 그 어떤 아파트보다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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