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으로 읽는 고려 시대 몽골 침략기
[최다혜 기자]
러너가 됐다. 예전에는 10m만 뛰어도 숨이 차 헐떡거렸는데 이젠 10km 마라톤 대회도 도전할 수 있다. 조상님들 덕분이다. 이번 역사 여행 주제는 '고려시대: 몽골 침략기'다. 얼핏 생뚱맞아 보일지 모르지만, 근육이야말로 몽골 침략기의 고려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1231년, 몽골은 고려를 침략한다. 전쟁이 시작됐다. 역사상 가장 넓은 육상 제국을 건설했던 세력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다. 고려 조정에서는 백성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린다.
"어서 산이나 섬으로 도망치라!"
몽골 군대는 말(馬)을 타고 이동하는 기마병이 중심이었다. 말이 닿기 어려운 곳으로 가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고려 조정 또한 수도를 섬인 강화도로 옮기며 장기전을 준비했다.
그렇다면 섬이 없는 강원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하나다. 산이다. 고려시대 강원도의 백성들은 몽골의 기마군을 피해 산을 오르고 계곡을 건넜다. 전쟁은 칼과 창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이어진 체력 전쟁이었다. 우리 가족도 몽골 침략기 유적지를 찾아 걷다 보니, 온 가족의 허벅지가 자연스레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다.
소와 말의 피를 마시며 버텨라, 춘천 봉의산성
"그럼 산에 가면 다 안전했어?"
아이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답은 그렇지 않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찾은 곳이 춘천의 봉의산이다.
봉의산은 높이 301미터의 야트막한 산으로, 춘천의 기름지고 평평한 땅 한가운데 섬처럼 솟아 있다. 이곳에는 몽골 침략기, 춘천의 병사들과 백성들이 몽골군에 맞서 싸웠던 봉의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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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천시 봉의산 춘천의 넓은 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봉의산. |
| ⓒ 최다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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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의산 뒤로 소양강이 흐른다. |
| ⓒ 최다혜 |
그러나 1253년, 몽골의 네 번째 침입 때 상황은 달랐다. 몽골군이 춘천으로 들이닥쳤을 때, 백성들은 불을 지를 여유조차 없었다. 관군과 백성들은 급히 봉의산성으로 들어가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하필 그 무렵은 음력 9월, 소양강이 만든 넓은 평야에 곡식이 풍성하게 익어 있던 때였다. 그 곡식들은 결국 몽골군의 전투 식량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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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의산성. |
| ⓒ 최다혜 |
"강릉도 요즘 가뭄 때문에 제대로 못 씻잖아."
"그래도 우린 마실 물은 있지."
"그런데 봉의산성에 갇힌 사람들은 물도 없었대."
"그럼 어떻게 살아?"
"소와 말의 피를 마시며 버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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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의산 순의비. 몽골군과 죽음을 각오하고 항전했던 춘천 병사들과 백성들의 넋을 기리는 비. |
| ⓒ 최다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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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의산 순의비에 새겨진 춘천 병사들과 백성들의 항전 모습. |
| ⓒ 최다혜 |
봉의산성에서 내려와 봉의산 순의비 앞에 섰다. 비석에는 몽골군에 맞서 싸우는 병사들과 백성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쓰러진 사람들, 흩어진 살림살이, 그리고 끝까지 창과 활을 들고 나아가는 이들.
아이들은 사람들이 두렵고 슬퍼 보인다고 말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두 손을 모아 조용히 기도한다. 하늘나라에서는 소와 말의 피 대신 맑은 물을 마음껏 마시고, 전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란다고.
봉의산을 내려오며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투덜거렸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숨이 찼다. 고려시대 강원도 백성들은 이 길을 하루가 아니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오르내렸다. 도망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 단단한 허벅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왜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켜야 할 삶이 있었고, 떠날 수 없는 터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과 계곡을 넘던 고려의 백성들은 단순히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몸으로 남았다.
이제 나는 달리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고려시대 강원도 백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 길을 넘었다. 같은 산길이지만, 남겨진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오늘 우리가 달리고 걷는 이 산길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길이었다는 사실을 아이와 함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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