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맨체스터와 황리단길, 콘텐츠의 힘

지난해 7월 영국 맨체스터에는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현지 관광업계에선 “전례 없는 성수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비가 자주 내리는 궂은 날씨 탓에 할 일이라곤 집에서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는 일뿐이라는 곳에서 때아닌 관광 특수가 나타난 것이다.
비 대신 관광객을 보내준 건 영국의 록 밴드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가 재결합해 자신들의 고향 맨체스터에서 해체 16년 만에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전 세계 팬들이 맨체스터로 달려갔다. 공연 기간 내내 맨체스터 시내에는 오아시스 멤버와 로고를 새긴 티셔츠, 모자를 파는 임시 판매점 앞에 긴 행렬이 이어졌다. 호텔 방은 평소보다 2~3배 비싼 값으로 예약이 이뤄졌다. 레스토랑에는 밴드 멤버 모습을 담은 입간판이 세워졌다.
지난해 맨체스터 관광의 힘은 오아시스였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7500만장 웃도는 음반 판매고를 올린 록 밴드의 티켓 파워 말이다. 오아시스는 리엄과 노엘 갤러거 형제가 1991년 맨체스터에서 결성한 밴드다. 오아시스뿐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향력도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팀의 홈그라운드 ‘올드 트래퍼드’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올 시즌 부진한 성적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이 영국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처진 탓 아니냐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우리는 세계적 팬덤이 있는 BTS와 블랙핑크 등 K팝 아이돌을 보유하고 있다. 아쉬운 대목은 BTS 팬들의 방문지는 아직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 같은 파편적인 장소에 그친다는 점이다. 오아시스 팬이 맨체스터를 사고뭉치 형제 밴드가 성장한 장소로 체험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영국 리버풀이 비틀스의 도시로, 미국 시애틀이 ‘그런지 록’의 성지로 불리는 것과 같은 사례들이 국내에서 더 나타나기를 바란다.
국내에서는 경북 경주시 황남동 포석로에 있는 황리단길이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관광 명소의 성공 사례로 남기를 기대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불리게 한 것처럼 첨성대와 왕릉이 근처에 있는 황리단길도 충분한 명소의 자격이 있다고 본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황리단길과 인근 대릉원 일대를 찾은 방문객은 872만3000여명으로 전년보다 95만명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은 138만5000여명으로 전년보다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리단길이 이처럼 주목받을 거라고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래된 낡은 건물에 속속 들어선 카페와 책방 등이 입소문을 타면서 황리단길은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황리단길 가까이에 있는 문화유산이 되레 단점으로 작용하는 모습이었다. 문화재로 인해 이 일대 개발이 제한된 탓이었는데 이제는 그 덕분에 매력적인 명소로 자리 잡게 됐다.
이곳 만이 아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거리도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건물이 철거되는 대신 박물관이나 갤러리, 카페 등이 들어서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여기에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한때 재개발 대상지였던 전주 한옥마을은 한옥이라는 한국 고유의 콘텐츠로 살아남아 현재는 연간 100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낡은 한옥을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전통공예 체험 행사 등을 마련한 게 성공의 열쇠였다.
역사와 문화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누가 아는가. 정석원·장호일 형제가 이끈 그룹 ‘015B’ 콘서트가 대구에서 열리고 전 세계 팬들이 그곳으로 몰려가는 날이 올지.
김경택 사회2부장 ptyx@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용 장남 이지호 소위, 해군 5전단 통역장교 배치
- 김여정 “명백한 건 韓무인기 영공 침범…설명 있어야”
- 이준석, 장동혁·조국에 “與 돈공천·통일교 특검 추진…연석회담 제안”
- “희망 초봉 4300만원”…채용 한파에 취준생 눈높이 낮춰
- 머스크 “X 알고리즘 7일 이내에 전면 공개하겠다”
- 트럼프 “미국, 이란 자유 도울 준비 돼”…이란 정부 시위 유혈 진압에 개입 시사
- 12시간째 재판하다 추가기일 지정… “다음엔 무조건 끝내겠다”
- “10년 출동 종료합니다” 갈 곳 잃은 영웅견들, 5마리 모두 품었다 [개st하우스]
- 경찰, 산책하던 여성 주변에 화살 쏜 20대 2명 입건
- 구독자 395만명 보유 35세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