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너무 가벼운 해킹 대응

지난 6일 KT로부터 ‘고객 보답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문자를 받았다. 왜 고객 보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5가지 ‘혜택’에 대한 설명이 길게 쓰여 있었다. KT가 준다는 혜택에는 데이터 100기가를 6개월 동안 매월 제공하고, OTT 이용권과 프랜차이즈 커피 무료쿠폰을 준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는 지난해 7월 SK텔레콤이 발표한 ‘고객 감사 패키지’와 유사하다. 지난해 4월 해킹 피해가 발생한 SK텔레콤은 한 달 통신요금 50% 할인, 매월 데이터 50기가 추가 제공, 멤버십 할인 등을 혜택으로 제공했다. SK텔레콤은 고객 감사 패키지에 드는 비용이 5000억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쿠팡의 보상안은 오히려 소비자를 우롱한다는 반발로 이어졌다. 쿠팡과 쿠팡이츠에서 5000원씩, 여행 상품을 파는 쿠팡트래블과 고가품 전용관 알럭스에서 2만원씩의 이용권을 제공하는 ‘5만원 보상안’을 내놓으면서다. 쿠팡 대표는 “보상안은 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이 내놓은 보상안은 본인들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쓰기 어렵다. 해킹을 당해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용자들이 탈퇴를 꺼리게끔 만든 꼼수나 다름없다. 매월 청구되는 통신비, 새벽 배송을 위한 멤버십 이용료는 그대로 받겠다는 속내가 드러난다. 기업들은 소비자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당근책을 내놓지만 배상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는 SK텔레콤에 1인당 30만원 배상을 권고했으나 SK텔레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제시한 1인당 10만원의 조정안 역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 1348억원에 대해서도 행정소송을 예고한 상태다.
해킹을 온전히 기업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무리 견고한 방어막을 치더라도 이를 뚫고 들어오는 칼날을 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정보를 다루는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SK텔레콤은 공격자가 2021년 설치한 악성코드의 존재를 4년여 동안 알지 못했다. SK텔레콤이 서버의 계정 비밀번호를 오랫동안 바꾸지 않은 탓에 공격자는 여러 서버에 악성코드를 설치할 수 있었다. 서버 로그인 ID와 비밀번호를 그대로 다른 서버에 저장해 계정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KT는 초소형 기지국(펨토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법 펨토셀이 KT 망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비정상 IP를 차단하는 방어막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ARS, 문자 등 인증정보를 탈취할 수 있었다. 일상적인 보안 점검도 부실해 악성코드뿐 아니라 쉽게 탐지가 가능한 웹셸(악성 스크립트)도 발견하지 못했다.
해킹 피해를 입은 기업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려면 기본적인 방어막을 제대로 갖춰놨어야 했다. 빠져나간 개인정보가 다크웹 등에 유출된 정황이 없다는 것을 해킹 여파를 축소하는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고객의 개인정보와 통신 기록이 오가는 서버를 면밀하게 관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업은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우리만 해킹당한 것이 아니다’ ‘여러 혜택으로 해킹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식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 해킹을 틈타 이용자를 뺏어 오려는 공포 마케팅이나 할인권 제공 같은 이벤트는 해킹에 대한 책임을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려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기업들이 이제라도 해킹을 부른 관리 부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주기 바란다.
심희정 테크이슈팀장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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