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위로 올리는 '한 끼'를 책임진 사람들, 이렇게 많습니다

김군욱 2026. 1. 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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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 고공농성 328일, 밥으로 이어진 교회 공동체의 연대를 기록하다

[김군욱 기자]

2026년 1월 6일 오후 7시, 서울 향린교회에서는 '하늘과 땅을 잇는 진수성찬'이라는 제목의 자리가 열렸다. 이 자리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고진수 지부장의 고공농성을 지지하며, 매주 도시락 연대를 이어온 교회 공동체들을 초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도시락 연대의 의미를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 '하늘과 땅을 잇는 진수성찬'의 고공농성 도시락 연대자들 고공농성중인 도시락연대 교회 교인들의 연대 발언자리
ⓒ 김군욱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고진수 지부장은 2025년 2월 13일,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에 올랐다. 2026년 1월 6일 기준, 그의 고공농성은 328일째를 맞았다. 그 시간 동안 지상에서는 매주 빠짐없이 도시락이 준비돼 고공 위로 올려졌다. 이 도시락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실제적인 힘이자 각자의 삶의 조건 속에서 선택된 연대의 방식이었다.

도시락 연대는 거창한 계획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몇몇 목회자와 교회 관계자들이 응답했고, 자연스럽게 요일별로 역할이 나뉘었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한 끼가 고공 위로 올라갔다.

각자의 방식으로 준비한 식사, 중요한 건 '한 끼를 올린다'
▲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동지를 위한 아침 도시락 새민족교회의 교인들이 준비한 도시락
ⓒ 김수정
월요일, 성문밖교회 김희룡 목사는 대부분의 도시락을 사서 올렸다. 불고기, 야채죽, 여름에는 육회비빔밥, 요즘은 전복죽까지 계절에 따라 달랐다. 그는 "죽집이 없었다면 이 연대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연대가 반드시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만은 아님을 보여줬다.
화요일, 광야에서 이화실 교인은 강남역 현장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도시락 연대에 참여했다. 그는 도시락을 "의무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일"로 받아들였다. 처음 현장에서 천막도 없이 밤을 보내던 노동자들을 보고 흰죽과 삶은 계란, 장아찌를 올렸고, "한 숟가락이라도 드시면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동지를 위한 아침 도시락 새민족교회의 교인들이 준비한 도시락
ⓒ 김다혜
수요일, 향린교회 임재옥 교인은 먹는 것만큼은 타협하지 않았다. 들녘에서 나온 쌀과 콩으로 밥을 짓고, 월요일부터 장을 본다. 그는 과거 유성기업 노동자 연대에 사용했던 보온통을 다시 꺼내며 "그때 승리를 맛본 그릇으로 이번에도 승리를 바란다"고 말했다.
목요일, 영등포산업선교회 손은정 목사는 도시락을 계기로 아이와 함께 요리를 시작했다. 메뉴는 아이가 정했고, 그는 자신을 '요리사'가 아닌 '전달자'라고 불렀다. 도시락을 올린 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현장 상황을 글로 정리해 공유했고, 그 글을 통해 모인 후원은 다시 노조 계좌로 전달됐다. 이 과정은 가족에게도 변화를 가져와, 이제 가족의 기도 제목은 "고진수 지부장이 내려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해달라"는 것이 됐다.
▲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동지를 위한 아침 도시락 새민족교회의 교인들이 준비한 도시락
ⓒ 김진희
금요일, 새민족교회 김진희 교우와 교회 공동체가 도시락을 맡았다. 고공농성 이전부터 현장에서 기도회를 이어오던 교회는 고진수 지부장이 고공에 올랐다는 소식에 걱정 속에서 참여를 결정했다. 처음에는 몇몇 베테랑 주부들로 시작했지만, 점차 청년과 새 교우들까지 참여 의사를 밝히며 현재는 약 11명이 정기적으로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교회는 도시락을 올리고 회수하는 과정을 체계화했고, 이 연대는 교우들 사이에서 "기다려지는 귀한 기회"가 됐다.

토요일은 '고난과함께'가 참여하고 있다.

일요일, 젊은 1인 가구가 많은 섬돌향린교회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연대가 이어졌다. "죽을 사서 올려도 된다"는 원칙 아래 부담을 낮췄고, 음식 사진 대신 엑셀과 구글 시트로만 참여를 기록했다. 그 결과 남성 참여자들도 자연스럽게 합류했고, 직접 만든 죽을 올리기 시작하며 연대는 또 다른 형태로 확장됐다.
▲ 고공농성중인 고진수 동지의 편지 고공농성중인 고진수 동지의 아침도시락 연대자에게 보낸 편지
ⓒ 고진수
도시락 연대는 이렇게 각자의 형편과 방식으로 이어졌다. 잘 차려진 한 상이 아니어도, 맛이 매번 달라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한 끼를 올린다'는 선택, 그리고 함께 버티는 시간이었다.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이자 농성 현장을 지키고 있는 김란희 동지는 도시락 연대를 "현실적인 생존을 가능하게 한 연대"라고 말했다. 고공농성 초기, 명동 인근에는 마트도, 쌀을 살 곳도 없어 끼니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개신교 대책위의 요일별 식사 연대 제안은 "정말 나를 살려준 선택"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도시락 연대는 예상보다 길어져 328일 동안 이어졌다. 간단한 음식부터 주문 음식, 때로는 정성껏 차린 밥상까지 형태는 달랐지만, 그는 "모두 감사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유기농 쌀과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나누는 연대자들을 보며 "마음이 참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도시락은 고공 위 노동자의 몸뿐 아니라, 지상의 삶도 지탱했다. 남겨진 반찬 하나까지도 소중히 이어졌고, 그는 "그 음식에 담긴 수고를 알기에 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란희 동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바람을 전했다.

"도시락에 담긴 마음의 힘으로, 고진수 지부장이 하루빨리 내려와 함께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란희 동지는 매일 농성장에 나와 도시락을 올리고, 연대하는 이들에게 현장 상황을 전하며 기도회와 문화제에 함께하고 있다. 2025년 2월 13일 시작된 고공농성은, 복직되는 그날까지, 고공 아래에서의 연대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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