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탐정영화의 기둥, 부디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김성호 평론가
'후더닛 Whodunnit'이라고들 한다. '후 더 잇 Who did it?'을 소리 나는 대로 받아쓴 단어로, 직역해 '누가 했어?'하는 물음이다. 이 말은 그대로 추리물이나 탐정물을 뜻하는 장르의 이름이 됐다. 만화 마니아는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면 좋겠다. 이들의 원전이 된 아서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군도 무시할 수 없겠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중반을 풍미한 탐정물의 전성시대는 장르문학과 영화의 한 축을 이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셜록 홈즈, 포와로, 필립 말로, 샘 스페이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탐정들이 떠난 지 한 세기, 적어도 반세기가 지난 오늘이다. 최첨단 과학수사와 CCTV를 통한 일상적 감시, 유전자 식별 기술까지 고전적 탐정이 설 자리는 이미 사라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 십 수년 간 자리를 비웠던 탐정들이 돌아오고 있으니, 바로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동안은 대장주인 셜록 홈즈였다. 무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앞세워 영국의 세련된 연출가 가이 리치가 두 편의 작품을 찍었다. 과연 명성대로였던 2009년 작 <셜록 홈즈>의 성공은 2011년 속편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으로 이어졌다. 할리우드에 영국 대표 캐릭터를 뺏길세라 BBC가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앞세워 제작한 <셜록> 시리즈도 공전의 히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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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컷 |
| ⓒ 넷플릭스 |
그러나 21세기 탐정물의 부활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단 하나의 시리즈가 있다면 바로 이 영화일 테다. 바로 <나이브스 아웃>. 선댄스영화제의 주목을 받았던 <브릭>으로 시작해, <루퍼>로 재능을 확인하고,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로 규모 있는 연출까지 감당할 수 있음을 확인케 한 라이언 존슨이 제 독자적 프로젝트로 돌입한 것이 바로 이 시리즈가 되겠다.
<나이브스 아웃>은 앞선 탐정물과 달리 앞선 작품 없는 창작 시나리오란 점에서 특징적이다. 직접 쓴 각본으로 찍어낸 이 영화는 탐정물의 고전들을 예우하면서도 제가 그와 견주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이 시대의 적통임을 자인한다. 나는 일찍이 이 작품에 대해 21세기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 추리, 또 탐정영화라 극찬했는데, 그건 오로지 나 혼자만의 평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가 장기 프로젝트로 전환된 건 자연스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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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컷 |
| ⓒ 넷플릭스 |
전작이 고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추리물의 한 전형을 활용했다면, 속편은 차별화를 시도한다. 살인이 벌어지는 곳이 전작과 같이 전통적 추리물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현대적 장소인 것이다. 섬에 위치한 건축물이란 점은 기존과 얼마 다르지 않은 설정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현시되는 방식은 다분히 이색적이다.
주인공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명망 높은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분)이다. 영화는 특별한 초청장을 받아 섬을 찾은 여러 인물들과 함께 불청객인 브누아 블랑이 함께 섬에 들어가는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초청자는 현대적 기업 '알파'를 창업한 실업가 마일스 브론(에드워드 노튼 분)이다. 그의 초청을 받은 이들은 코네티컷 주지사 클레어 디벨라(캐서린 한 분), 과학자 라이오넬 투생(레슬리 오덤 주니어 분), 모델 버디 제이(케이트 허드슨 분), 인플루언서 듀크 코디(데이브 바티스타 분)다. 버디와 듀크는 각기 매니저 페그(제시카 헨윅 분)와 애인 위스키(매들린 클라인 분)와 동행한다. 여기에 더해 알파 공동창립자인 카산드라 브랜드(자넬 모네 분)가 청을 수락해 섬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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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스틸컷 |
| ⓒ 넷플릭스 |
전작이 탐정 스스로가 용의자가 되는 상황으로부터 이를 뒤집는 기발한 전개로 승부했다면, <글래스 어니언>은 명확한 반전과 후반부에 몰아닥치는 액션에 기댄다. 결국 더 커진 규모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공간을 저택으로 제한해 제작비를 아낀 전작이 크리스 에반스를 비롯해 크리스토퍼 플러머, 제이미 리 커티스, 아나 데 아르마스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눈길을 끌었던 것과 대비된다. 2편은 마일스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을 제외하면 바티스타, 그리고 케이트 허드슨 정도만이 이름값이 있다. 이로 인해 마일스가 받는 상대적으로 커진 압력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해 전편에 비해 인물들이 서로 받는 의혹이 적절히 분배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비중과 들쭉날쭉한 연기력이 이 같은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글래스 어니언>은 의미 있는 작품이다. 독자적 탐정 추리영화가 흔치 않은 현실 가운데서 어찌됐든 시리즈를 이어간 때문이다. 짜임새 있는 극본에 블랙코미디적 매력까지 터져 나왔던 전편만큼의 걸작은 되지 못했으나 관객을 두 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잡아둘 수 있는 흡인력 있는 작품임을 확인케 했다. 브누아 블랑은 셜록이나 포와로처럼 유명세만이 정답이 아님을 알도록 한다. 중요한 건 매력이지 유명세가 아니기에 얼마든지 독자적인 창작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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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포스터 |
| ⓒ 넷플릭스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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