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벼락 꿈꾼 이의 목숨 앗아간 조선백자 명품 항아리
[임영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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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좌)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우) |
| ⓒ 국가유산청 |
조선의 혼이 담긴 새로운 도자기의 탄생
서기 1392년. 한 시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새 나라 조선(朝鮮)이 밝았다. 그로부터 1년 후 조선 건국의 설계자이며 개국 공신인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 1342~ 1398)은 태조 이성계에게 "한 시대가 일어나면 반드시 한 시대의 제작이 있습니다(故曰一代之興 必有一代之制作)"라고 아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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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 눈처럼 순결한 국보 백자 유개 항아리.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순백자 항아리로 조선 선비들의 맑은 정신을 닮았다.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소장 |
| ⓒ 국가유산청 |
한편 고려의 멸망과 함께 전국으로 흩어졌던 도공들은 시대가 바뀌든 말든 옛 방식 그대로 도자기를 구웠으나 영롱한 비취색이 나오지 않았다. 도자기 주원료인 흙과 물과 땔나무가 바뀌었고 국가에서 통제하던 품질관리 방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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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백자 병형 주전자. 15세기 조선 초기 경기도 광주의 관요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 소장 |
| ⓒ 국가유산청 |
조선백자는 시대에 따라 도자기 겉면에 어떤 색깔의 물감을 써서 무늬를 그렸는가에 따라 순(純)백자, 청화(靑畫)백자, 철화(鐵畫)백자, 동화(銅畵)백자로 나뉘게 된다.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순백의 백자는 도자기 표면에 아무런 무늬도 그리지 않은 것으로 백자 고유의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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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좌)와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우). 15세기 조선 초기 작품이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 ⓒ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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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백자 달항아리. 조선 17세기 후기~18세기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순백의 미와 균형감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백자의 독특하고 대표적인 형식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 ⓒ 국가유산청 |
전쟁이 끝나고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인 영·정조 시대. 정치와 경제는 안정되고 백성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조선백자 황금시대가 열린다. 이때 순백의 미와 균형감으로 그 모습이 마치 밤하늘의 둥근달을 연상시키는 일명 '달항아리'가 탄생한다.
흰 눈처럼 고결한 조선 선비를 닮은 청화백자에서 순백의 달항아리까지. 조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백자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서 한 시대의 정신과 미의식이 담긴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현재 우리는 370여 건의 국보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조선 백자가 18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최고의 미감을 자랑하는 국보 중의 국보 2점을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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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한 작품 안에 청화, 철화, 동화기법 등 조선백자의 모든 장식기법이 총망라되어 있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
| ⓒ 국가유산청 |
"유적이나 유물이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을 때 훨씬 더 친근해지고 잊히지 않는다. 또한 그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진다."
이재명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이다. 공감한다. 명품이란 탄생할 때부터 명품이지만 여기에 이야기가 더해지면 작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조선 백자 중에도 그런 명품들이 있다.
학처럼 하얗고 긴 목. 달항아리처럼 풍만한 몸체와 낮은 굽. 우윳빛이 나는 유백색 몸통. 비스듬히 그려진 국화꽃과 가늘게 뻗어 나가는 세 줄기 푸른 난초 잎이 선명하다. 양각 기법으로 처리한 국화 줄기와 잎은 짙은 갈색의 철화로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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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늬는 양각 기법으로 처리하였으며 난초는 청화, 국화 줄기와 잎은 짙은 갈색의 철화로 벌과 나비는 철화 또는 동화로 채색하였다 |
| ⓒ 국가유산청 |
조선 백자의 황금기인 18세기 전반에 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름다운 백자가 우리 곁에 오기까지 극적인 사연이 있다. 때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팔당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면서 봄나물과 참기름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노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나물을 캐던 중 흰색 병을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할머니가 백자를 발견한 곳은 조선시대 왕실용 백자를 굽던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 가마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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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
| ⓒ 국가유산청 |
우리의 소중한 보물을 일본에 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일본뿐만 아니라 홍콩, 미국에도 지부를 둔 세계적 골동품회사 야마나카 상회(山中商會)였다. 500원에 시작된 경매가는 순식간에 7천 원으로 뛰어올랐다. "9천 원!" "1만 원!" 피 말리는 경쟁 끝에 최종 낙찰가는 1만 4580원이었다.
당시 서울의 기와집 15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으로 최후의 승자는 간송 전형필이었다. 경성미술 구락부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이 백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국보로 승격되어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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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조선 백자의 황금시대인 18세기 영조 때 금사리 가마에서 빚어낸 것으로 추정한다. 이화여대 박물관 소장 |
| ⓒ 국가유산청 |
유백색의 커다란 항아리를 캔버스 삼아 짙은 갈색의 철화(鐵畫)로 포도나무를 그린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다. 조선 백자의 황금시대인 18세기 영조 때 금사리 가마에서 빚어낸 이 백자는 우선 그 크기가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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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화포도문 항아리의 아가리 부분 |
| ⓒ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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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백색의 커다란 항아리를 캔버스 삼아 짙은 갈색의 철화로 포도나무를 그렸다. 도화서의 화원이 가마터에 와서 도자기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 |
| ⓒ 국가유산청 |
난감해진 시미즈 고지는 평소 집안일을 봐주던 김씨에게 "나중에 반드시 찾으러 올 테니 잘 보관해 주시오"라는 부탁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일이 터졌다. 김씨에게는 망나니 같은 노름꾼 아들이 있었다. 노름 밑천이 떨어진 아들은 아버지 몰래 백자 항아리를 인사동의 골동품상 권명근에게 2만 5천 원을 받고 팔아버렸다. 권명근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살던 집까지 팔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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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항아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물레 위에서 한 번에 빚을 수 없어 위아래를 따로 만든 다음 두 부분을 이어 붙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
| ⓒ 국가유산청 |
마침내 백자 항아리는 합법적 형식을 갖추어 장택상에게 넘어갔다. 이후 선거에 나온 장택상은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거금을 받고 넘겼다. 이렇게 역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으며 이화여대 박물관으로 들어온 조선 명품 백자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매거진 <대동문화> 152호(2016년 1, 2월)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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