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투사가 된 전쟁, 부녀자들이 왜군에 들이부은 것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왜군의 조총 소리는 천둥처럼 울렸고, 성벽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에 진주성에서 반드시 왜군을 막아내야만 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 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
|
| ▲ 남강유등축제(2025년) 해마다 한가위를 전후한 아름다운 가을 날에, 남강에서 '유등(流燈)축제'가 열린다. 임진(1592)년 10월의 진주대첩 1차 전투에서 유래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매개체가 유등이었다. |
| ⓒ 진주시청 |
1592년 가을, 남강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왜군의 조총 소리는 천둥처럼 울렸고, 성벽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선이 무너져 내리던 때다. 그 해 4월, 부산진성에서 타오른 불길이 다대포와 동래를 불태웠고, 파죽지세로 임금이 머무는 한양을 찔렀다. 왕은 비겁하게 도망치듯 몽진에 올랐다.
남해안 곳곳도 여의치 않았다. 김해와 웅천, 거제가 무너졌다. 창원과 함안, 의령도 마찬가지다. 바다의 이순신과 내륙의 곽재우 등 몇몇이 조선의 희망이던 백척간두의 시기였다.
진주성도 다르지 않았다. 진주가 무너지면 전라도가 무너진다. 그러면 전라 좌·우수영이 위급에 빠질 기세였다. 남해와 서해의 뱃길이 제압되면 그야말로 조선이 도륙을 당할 절체절명이다. 이에 진주성에서 반드시 왜군을 막아내야만 했다.
|
|
| ▲ 충무공 김시민 장군 1592년 10월, 진주대첩 1차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불의의 흉탄에 생을 다한 김시민 장군의 동상. 현재 진주성 북문(공북문) 바로 곁에 자리한다. |
| ⓒ 이영천 |
|
|
| ▲ 진주성 전경 남강의 북안, 깎아 지른 절벽을 기반으로 쌓은 진주성. 현재 남아 있는 진주성은, 고려 때 쌓은 내성으로 추정한다. 사진 가까이 남강에 면한 '촉석문'과 '촉석루'가 보인다. |
| ⓒ 진주시청 |
|
|
| ▲ 남체성(南體城) 야경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외성이던 구간의 일부가 발굴되었다. 진주교를 건너 좌측, 촉석문 앞의 '진주대첩역사공원' 안에 복원되어 있다. |
| ⓒ 이영천 |
진주 목(牧)을 다스리던 관아와 객사 등은, 성 안이 아닌 성 밖 북쪽에 별도 공간으로 존재했다. 이곳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자리엔 공용의 청사 등이 남아 옛 치소임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임진왜란 전까지 진주성은 눈부셨다. 고려 때 석성은 튼튼해 두터웠고, 새로 쌓은 외성의 성벽은 단단했다. 왜란을 빼고 진주성을 말할 순 없다. 이 성벽이 왜란을 맞아 나라의 운명을 짊어졌기 때문이다.
|
|
| ▲ 진주지도 남강의 북쪽에 진주성의 내성과 외성, 대사지를 비롯한 성곽과, 그 위 북쪽으로 객사와 진주목 등의 관청이 그려져 있다. 각각에 민가가 빼곡하다. |
| ⓒ 서울대학교_규장각 |
임진년 진주성 1차 전투
|
|
| ▲ 서문과 서장대 진주대첩 1차전투 당시, 일본군 제2대가 공격한 서문과 서장대 모형. 남강으로 절벽이 깎아 지른 모습이다. |
| ⓒ 이영천(진주대첩역사공원) |
|
|
| ▲ 진주대첩 1차전투 성안의 3천8백 군사와 수만 명의 백성. 그리고 3면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왜군의 진로, 성 바깥 멀리에서 조선 응원군의 진격 등이 일목요연하게 표현되어 있다. |
| ⓒ 이영천(국립진주박물관_촬영) |
|
|
| ▲ 진주성 외성 왜군의 제1대와 3대의 공격이 집중되었던 동문과 동장대, 북문의 모형. 임진왜란 진주대첩 1차전투 당시의 처절했던 전투 현장이 지금은 시가지 한가운데다. |
| ⓒ 이영천(진주대첩역사공원) |
부상 당한 팔을 붕대로 묶은 김시민이 화약 연기를 헤치며 칼을 휘둘렀다. 포연과 빗발 같은 조총 탄환 사이로 다시 총통을 쏘았다. 성루는 물론 성벽 위와 아래, 성문을 가리지 않고 혼신으로 싸웠다. 무엇보다 성문을 잘 지켜냈다. 싸움은 며칠 간 계속되었다. 성 위로는 총알과 화살, 포탄이 날아다니고, 성 밑으론 시체가 쌓였다.
떠다니는 유등
성 밖 멀리서도 원군의 공격과 횃불이 밤마다 올라왔다. 성 안에선 유등으로 그 횃불에 화답했다. 남강 위로 흘러 떠가는 등불, 그건 서로 간 생명을 잇는 빛이었다.
|
|
| ▲ 김시민 장군 전적비 진주대첩 1차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아쉽게 산화한, 충무공 김시민 장군을 기리는 전적비. |
| ⓒ 이영천 |
남강은 그날 이후 수백 년 동안, 그의 죽음을 기억으로 품고 흘렀다. 왜군이 물러가고, 다시 찾은 평화처럼 강물도 그러했다. 촉석루 절벽은 가파르고, 선경의 진주성은 마냥 평화로웠다.
|
|
| ▲ 남강과 진주성 촉석루에서 바라 본 남강과 진주성. 1592년 10월 진주대첩 1차 전투의 처절한 현장을 기억이라도 하는 듯, 남강 강물이 짙푸르다. |
| ⓒ 이영천 |
그 옆으로 천천히 유등이 흘렀다. 조그마한 바람에도 유등이 흔들렸다. 백성들은 '남강의 불빛은 절대 꺼지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건 강물이 아니라 충의와 의기로 흐르는 혼이기 때문이다. 그 불빛이 천천히 강 멀리까지 사라질 때, 모두는 알고 있었다. 이 도시는 아직도 그날의 싸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럼프 "정권 이양 때까지 미국이 베네수엘라 통치"
- 아덴만 옆 그곳, 세계 최초 '국가'로 인정한 이스라엘... 수상하다
- 30분에 단돈 오백원, 이렇게 '착한' 전기자전거가 있다니
- "마음 같아선 윤석열 사형을 구형하고 싶다"
- 베트남 최초 우주인의 절규, "내 꿈이 '여성 혐오'에 파묻혔다"
- 퇴근 후 누워서 폰 만지작... 허무한 습관 바꾸는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
- '강선우 공천헌금 수수' 의혹에 정청래 "불미스러운 사건, 사과드린다"
- 버스 운전사에서 독재자로... 마두로 '철권 통치' 몰락
- 이대통령 "교민보호 철저, 필요시 신속철수"…외교부 긴급대책회의
- 중 관영매체 "이대통령 중요시점 방중…한중, 보호주의 맞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