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방] 책방의 진화일까, 포기일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후배의 질문에 문득 어린 시절 방에 걸려 있던 일력이 떠올랐다.
해방촌 '고요서사'는 책방의 일부만 유료화했고, 성수동 '시일 북스 앤 웍스'는 책방이자 코워킹 스페이스다(토요일에만 일반에게 서점으로 개방된다). 대전의 '한쪽가게'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을 예약제로 유료 운영한다.
책방 대표에게도 이점이 있다.
문턱이 높아진 이곳은 여전히 책방일까.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즘 일력이 왜 유행이죠?”
후배의 질문에 문득 어린 시절 방에 걸려 있던 일력이 떠올랐다. 넉넉한 크기에 얇은 습자지 같은 종이로 만든 일력이었다. 큰 글씨로 양력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 음력과 절기, 잡다한 생활 정보가 따라붙었다. 급할 때는 화장실 휴지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요즘의 일력은 다르다. 작고 팬시하며, 하루를 견디게 하는 문장이 담겨 있다. 필자 역시 책상 유리 아래 지난 일력 한 장을 끼워두고 있다. ‘대반열반경’의 문장이다. “모든 발자국 가운데 코끼리의 발자국이 최고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 가운데 죽음에 대한 명상이 최상이노라.”
사는 일이 불안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을까마는, 요즘 젊은 세대의 불안은 유독 심해 보인다. 부모세대가 새해 계획으로 영어 공부나 독서 정도를 떠올렸다면, MZ세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밀한 계획과 리추얼을 설계한다. 다이어리를 쓰고, 크루와 함께 달리고, 북클럽에서 독서를 한다. ‘대충’은 없다.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 매뉴얼을 동반한다. 이런 세대 정서가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예컨대 유료서점의 증가도 그중 하나다. 몰입을 위해 기꺼이 돈을 내고 서점에 가는 젊은이들이 있다. 사당역 인근의 ‘소셜서재’는 무인 유료서점이다. 이용료를 내고 비치된 책을 읽는 것이 핵심이다. 1만2000원이면 3시간, 1만8000원이면 하루 종일 머물 수 있다.
유료로 책을 만나는 방식은 청담동 ‘소전서림’, 한남동 ‘블루도어북스’에서 본격화되었다. 이후 유료서점은 점점 유연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해방촌 ‘고요서사’는 책방의 일부만 유료화했고, 성수동 ‘시일 북스 앤 웍스’는 책방이자 코워킹 스페이스다(토요일에만 일반에게 서점으로 개방된다). 대전의 ‘한쪽가게’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을 예약제로 유료 운영한다.
책방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은 기성세대에게 낯설다. 필자 역시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공부하며 따라가는 쪽이지만 짐짓 이해는 된다. ‘잘 갖추어진 공간에서 읽는 기쁨’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태도는, 매뉴얼이 완벽해야 비로소 안심하는 세대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서울 수도권의 집값은 감당하기 어렵고, 젊은 세대의 주거 환경은 열악하다. 그럼에도 삶의 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집 대신 잠시 들러 안락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유료서점 같은 곳이다. 책방 대표에게도 이점이 있다. 책방에서 책은 사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방문객을 제한할 수 있다. 동시에 책방의 중요한 수익원이 되어 준다.
서점은 상업성과 공공성을 지닌 드문 공간이다. 꼭 책을 사지 않아도 잠시 들러 진열된 책을 훑어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오래된 정의가 흔들리고 있다. 책이 덜 팔리는 시대, 서점의 문턱은 점점 높아진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문턱이 높아진 이곳은 여전히 책방일까.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장동혁 “당내 통합 ‘걸림돌’ 제거해야”…한동훈 겨냥했나
- 최대 31개월치 월급 한 번에…하나은행 희망퇴직 실시
- “흡연자만 1억명인데”…인도, 다음달부터 담뱃세 인상
- 지난해 11월 초미세먼지…‘중국 산불’이 원인 중 하나
- 나나 자택 침입 강도, 되레 ‘살인미수’ 역고소
- ‘보좌진 갑질 논란’ 이혜훈,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
- 업스테이지 ‘중국 AI 모델 복사’ 주장에 “검증하겠다”
- ‘명품 황제’ 바뀌었다…샤넬, 루이비통 제치고 패션 1위 등극
- 쿠팡 저격? 무신사, 전 회원에 5만원 쿠폰 “우리는 그냥 드려요”
- “집보다 따뜻해”… 무료급식소 오픈만 기다린 노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