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스컵 탈락했다고 "축구 대표팀 해체! 국대 자격 박탈!" 가봉 정부, 독재 버릇 못 버렸네 [더게이트 해축]
-"불명예스러운 성적" 정부 성명서 국영방송 통해 발표
-오바메양·에쿠엘레 망가 국가대표 자격 박탈

[더게이트]
가봉 정부가 축구 국가대표팀에 칼을 빼들었다. 21세기 민주국가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
가봉 정부는 2일(한국시간) 국영방송을 통해 "축구 국가대표팀 운영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마르세유 공격수 피에르 에메릭 오바메양(36)과 주장 브루노 에쿠엘레 망가(37)는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다. 티에리 마유마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전원 해임됐다.

'독이 든 성배'가 따로 없네
가봉은 F조에서 카메룬과 모잠비크에 연달아 진 상태로 마지막 경기 코트디부아르전에 나섰다. 2대 0으로 앞서가다 후반 종료 10분을 남기고 무너졌다. 장 필리프 크라소가 전반 44분 한 골을 넣었고, 에반 게상과 바주마나 트라오레가 막판 연속골을 터뜨리며 2대 3 역전패를 당했다.
이 경기에서 이미 탈락이 확정된 코트디부아르는 2진급 선수들을 대거 투입했다. 가봉 입장에선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내줬으니 패배가 아쉬울 만하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온 조처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심플리스 데지레 맘불라 스포츠부 장관 권한대행은 국영방송에 나와 성명서를 직접 낭독했다. "모로코 AFCON에서 팬서스(가봉 대표팀 별명)가 보여준 불명예스러운 성적을 고려해, 제5공화국이 옹호하는 윤리와 모범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다각적 영향을 고려해 정부는 결정했다."
'제5공화국', '윤리와 모범의 가치', '정면으로 반하는'. 축구 경기 몇 번 진 것 갖고 쓸 표현들이 아니다. 정부는 코칭스태프를 해체하고, 국가대표팀을 무기한 중단하고, 오바메양과 에쿠엘레 망가를 팀에서 제외했다.
오바메양은 가봉 역대 최다 득점자(41골)다. 에쿠엘레 망가는 최다 출전 선수(105경기)다. 아이러니한 건 두 선수가 이번 대회 코트디부아르전에 나서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에쿠엘레 망가는 앞선 두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제외됐다. 오바메양은 모잠비크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허벅지 부상으로 코트디부아르전 엔트리에서 빠졌다. 마르세유로 돌아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FIFA 원칙 정면으로 짓밟은 처사
정부의 국가대표팀 해체는 과거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에서 실망스러운 성적 뒤 흔히 나타나던 반응이었다. 북한 등 독재국가에선 대표팀 코칭스태프나 선수가 귀국 후 처벌을 받는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이 축구협회 운영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강경하게 막아선 이후론 보기 드문 일이 됐다.
FIFA 규정 14조는 명확하다. "회원협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하며 정치적 간섭 없이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정부가 축구협회 업무에 간섭하면 FIFA는 해당 국가를 국제대회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 실제로 케냐(2022년), 짐바브웨(2022년), 차드(2021년) 등이 정부 개입을 이유로 FIFA로부터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가봉 정부의 조치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짓밟았다. 선수 명단 구성, 코칭스태프 인사, 팀 운영은 축구협회 고유 권한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 선수는 안 된다", "코치는 다 자르겠다", "팀은 당분간 문 닫는다"고 선언하는 건 FIFA 규정 위반이다.

감정적이고 독재적인 발상
국가에서 대표팀 성적을 갖고 이런 식으로 피바람을 불게 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독재적인 발상이다.
스포츠에서 패배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봉은 지난 11월 2026 월드컵 최종예선 10경기에서 8승을 거뒀다. 나쁜 성적이 아니다. 하지만 코트디부아르에 승점 1점 차로 밀려 조 2위에 그쳤고,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나이지리아에 패하며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AFCON에서도 F조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카메룬은 아프리카 강호다. 모잠비크도 최근 전력이 상승세다.
패배가 화난다고 정부가 나서서 팀을 해체하고 레전드 선수들을 퇴출시키는 게 답인가. 오히려 문제점을 냉정하게 짚어보고 대안을 마련해서 다음 대회에서 더 잘할 수 있게 방법을 찾고 지원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2023년까지 한 대통령이 40년 넘게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쿠데타로 정부가 뒤집힌 가봉이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까지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가봉축구협회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입장을 내놓기도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이미 모든 걸 결정해버렸으니 협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FIFA의 제재가 현실화되면 가봉은 당분간 국제무대에서 모습을 감춰야 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축구 경기 몇 번 진 것 때문에 정부가 벌인 일로, 가봉 축구는 더 긴 암흑기를 맞을 수 있다. 쿠데타 이후 선거로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번 사건으로 국제사회는 여전히 우려섞인 시선으로 가봉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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