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첼리스트, 음악을 그리다… 박찬욱도 반한 ‘그림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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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골든글로브 3개 부문 후보에 이어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부문 예비 후보에도 오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미국 홍보를 위해 최근 새 영화 포스터를 공개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재취업을 위해 처절한 전쟁을 벌이는 '웃픈 서사'로 전개된다.
영화에서 리원은 색연필로 알록달록한 점을 이어 붙이며 악보 같은 그림을 그린다.
양씨는 "만수가 재취업 전선에서 느끼는 절박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원작에 없던 자폐 첼리스트 딸이라는 설정을 더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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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골든글로브 3개 부문 후보에 이어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부문 예비 후보에도 오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미국 홍보를 위해 최근 새 영화 포스터를 공개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재취업을 위해 처절한 전쟁을 벌이는 ‘웃픈 서사’로 전개된다.
포스터는 영화의 시그니처 장면을 전면에 내세웠다. 만수가 옥상 난간에서 화분을 길 아래로 던져버릴 기세로 번쩍 들어 올린 순간을 담고 있다. 상단에는 작은 점들로 구성된 왕관 모양 이미지가 주렴처럼 흘러내린다. 만수 부부의 딸로 등장하는 리원의 실제 모델인 자폐 천재 첼리스트 이정현(18·충북예고 3학년)양이 직접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서 리원은 색연필로 알록달록한 점을 이어 붙이며 악보 같은 그림을 그린다. 영화 장면 곳곳에 ‘그림 악보’가 비밀 코드처럼 숨겨져 있다. 빨랫줄에 걸린 이불, 리원의 잠옷과 비옷, 개집에 새겨진 무늬까지 모두 실제 모델인 정현양의 ‘그림 악보’에서 따왔다.
충북 청주의 복합문화공간 ‘당산 생각의 벙커’에서 열리는 전시 ‘별별공감’에서 그림 악보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정현양을 지난 24일 만났다. 아버지 이용진씨와 어머니 양성선씨가 동행했다.
“정현이가 영화 속 리원이처럼 꼭 그랬어요. 만날 뭘 그렸어요. 얘도 말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친구는 좋아하지 않고, 혼자 (세상과) 소통하듯 그렸던 거죠.” 어머니 양씨의 설명이다.
자폐를 진단받은 것은 생후 27개월 무렵이다. 그런 딸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한 건 엄마였다. “징글징글할 정도로 온종일 노래만 불렀어요. 전화기나 자동차처럼 소리와 멜로디가 나오는 장난감을 유난히 좋아했죠.”
초등학교 2학년 때 특수학급 교사의 권유로 피아노 교육을 시작하면서 절대음감도 확인됐다. 양씨는 “도·파·라, 시·레·솔 같은 음을 그냥 알아맞혔다. 화음까지 정확히 짚어냈다”며 “국어책은 읽지 못했지만, 클래식 악보는 동화책 넘기듯 봤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신경다양성 청소년으로 구성된 수원 에이블아트센터 ‘헬로우샘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자폐 스펙트럼 가운데에서도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정현양에게는 또 다른 놀라운 특징이 있다. 음악을 즉흥적으로 번역하듯 그림으로 표현하는 ‘그림 악보’다. 그는 소리를 들을 때 색을 느끼는 ‘색청(Coloured hearing) 공감각자’로, 들은 음을 색으로 기호화할 수 있고 첼로로 음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천재적 재능이 입소문을 타며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소개됐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던 박찬욱 감독의 눈에도 띄었다. 양씨는 “만수가 재취업 전선에서 느끼는 절박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원작에 없던 자폐 첼리스트 딸이라는 설정을 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는 또 있다. 박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심오한 음악의 악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런 천재의 머릿속은 어떤지 잠시 들여다본 것 같은 순간을 맞는다”고 했다.

그의 그림 악보는 청각과 시각이 만나는 새로운 공감각 지대다. 부모조차 그림 악보 해석이 다를 정도로 난해한 퍼즐같이 보이지만 나름의 규칙은 있다. 기본 음계에 쓰는 색은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 갈수록 청색에서 붉은색 계열로 옮겨간다. 여기에 가사나 멜로디에 따라 떠오른 이미지가 더해진다. 가사가 있는 동요는 구상적이다. ‘오빠 생각’의 그림 악보에는 말 탄 오빠와 논밭, 아이가 사는 집이 등장한다. 반면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등 협주곡이나 관현악은 알록달록한 작은 점들이 기호처럼 추상화돼 있다.
그는 인터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내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허밍 하듯 흥얼거렸다. 그러나 이날 오후 6시, 관객 앞에서 첼로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음악 속에 사는 자폐 천재 첼리스트의 모습, 그대로였다.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의 후원을 받는 제4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 전시회 ‘신낭만사회 ’(1월 14일∼2월 8일)의 연계 행사로, 오는 1월 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라운드테이블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 정현양의 첼로 연주와 함께 아버지 이씨가 그림 악보의 비밀을 풀어주는 시간을 갖는다.
청주=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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