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에이즈 혼동 여전… 편견 고착화하는 용어 신중해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85년 국내 첫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자가 보고된 지 40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진단 및 치료 기술이 충분치 않아 상당수 HIV 감염인이 치명적 질병 단계인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김승환=서울 등 수도권은 HIV 관련 정보와 의료 접근성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지방에 살거나 인터넷 활용도가 낮은 계층, 특정 연령대 MSM의 경우 질병청이나 의료기관에서 시행 중인 프렙 지원 등 HIV 관련 정책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생존 HIV 감염인 1만7000여명 중 질병 단계인 에이즈로 이환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HIV 감염 첫 보고 후 40년… 국내 인식 어떻게 달라졌나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
김승환 신나는센터 상임이사

1985년 국내 첫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자가 보고된 지 40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진단 및 치료 기술이 충분치 않아 상당수 HIV 감염인이 치명적 질병 단계인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HIV 감염 자체가 에이즈와 동일시되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이후 항바이러스제 등 HIV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이제 HIV는 꾸준히 치료받으면 만성질환처럼 관리 가능해졌다. 국내엔 지난해 기준 1만7000여명의 생존 감염인이 꾸준히 치료받으며 건강을 관리 중이다. 문제는 신규 감염인이 뚜렷한 감소세 없이 매년 100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2030년까지 신규 HIV 감염을 2023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핵심 전략으로 ‘HIV 노출 전 예방요법(PrEP·프렙)’의 사용 확대와 접근성 개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 전문 학회와 성소수자 커뮤니티, 감염인 단체 등과 손잡고 ‘프렙 액팅 그룹’을 출범해 HIV 취약군에게 프렙의 예방 효과와 필요성을 알리고 누구나 프렙에 접근 가능한 환경을 갖추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민·관·학 협의체는 ‘레드 마침표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해소를 위한 인식 개선 활동도 벌이고 있다.
프렙 액팅 그룹과 레드 마침표 캠페인의 핵심 멤버로 활동 중인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전문의와 김승환 영화 프로듀서 겸 신나는센터 상임이사를 만나 40년간 국내 HIV 감염의 현실, 인식 및 대응의 변화, 향후 목표 등을 들어봤다.
-정부의 프렙 지원 사업이 올해부터 확대됐다. 현장의 변화가 느껴지나.

△진범식=프렙은 HIV 비감염자가 ‘예방약(하루 한 알 복용으로 HIV 감염 위험 90% 이상 감소)’을 복용해 추가 감염을 막는 것이다. 질병청은 기존 HIV 감염자의 성 파트너에 제한됐던 예방약 지원을 남성과 성관계하는 남성(MSM), 트랜스젠더 여성, 유흥업소 종사자 등 실질적 HIV 고위험군으로 넓혔다. 또 지난해 말 2개 시·도에서 시행했던 시범 사업을 올해부터 17개 시·도로 확대했다.
한국은 HIV 유병률이 비교적 높지 않고 프렙에 대한 홍보나 지원이 시행된 시점 또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장에선 프렙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한다기보다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흐름에 가깝게 체감되고 있다. 프렙 처방 건수와 실제 이용자 수가 혼재돼 집계되는 등 행정·통계 시스템의 한계로 현장에서 느끼는 프렙 사용 추이와 수치 간 해석에 차이가 발생하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향후 프렙 사용자를 더욱 늘리려면 단순히 지원 사업 규모 확대를 넘어 실제 사용 현황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행정·통계 시스템의 정비, 프렙에 대한 정보 접근성 강화와 진입 장벽 완화, 프렙 처방이 가능한 의료기관 및 약국 등 공급 체계의 확대가 필요하다. 특히 프렙 지원이 별도의 한시적 사업이 아닌 보다 안정적인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제공되고 매일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장기 지속형 주사제’ 같은 새로운 프렙 요법이 도입될 경우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접근성과 활용도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승환=서울 등 수도권은 HIV 관련 정보와 의료 접근성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지방에 살거나 인터넷 활용도가 낮은 계층, 특정 연령대 MSM의 경우 질병청이나 의료기관에서 시행 중인 프렙 지원 등 HIV 관련 정책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있다. HIV 예방과 치료에 대한 정보 접근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취약층 대상으로 보다 세밀하고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사실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역시 HIV에 효과적인 치료제가 존재하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치명적 질환은 아니라는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 특히 지방의 경우 지역사회 내 인적 관계가 촘촘해 보건소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곧 노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을 느끼기 십상이다.
-여전히 HIV와 에이즈 개념을 혼동하는 등 부정확한 정보가 널리 퍼져 있다.
△진범식=‘에이즈는 치명적 질병이며 걸리면 피부에 기이한 반점이 생긴다’는 인식은 현재까지도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다. 과거 HIV가 부정적 이미지로 강렬하게 각인된 영향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HIV 감염은 여전히 시한부 선고와 유사하게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생존 HIV 감염인 1만7000여명 중 질병 단계인 에이즈로 이환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에이즈’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치명적이고 혐오적인 이미지를 대표하는 표현으로 매체에서 사용되고 있다. ‘소나무 에이즈’ 같은 표현이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대중은 주로 매체를 통해 관련 정보를 접하게 되는 만큼 이런 표현은 HIV에 대한 편견을 더욱 고착화하고 확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에이즈라는 용어는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보다 신중하게 사용돼야 한다.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나.
△진범식=정책과 제도 측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질병청이 HIV의 신규 감염 예방을 정책 목표로 잡고 있지만, 담당 부서 명칭은 여전히 ‘에이즈 관리과’를 쓰고 있다. 공식 자료에도 ‘에이즈 상담’ ‘에이즈 예방주간’ 같은 표현이 병행된다. 전문 학회 역시 ‘대한에이즈학회’라는 명칭을 쓴다. 물론 현재도 에이즈는 발생하고 있으며 발병 시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부정적 의미가 강하게 내포된 용어가 HIV 감염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광범위하게 사용될 경우 HIV에 대한 사회 전반의 낙인과 편견을 완화하려는 노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근 HIV 관련 정책과 용어 사용의 근간이 되는 ‘에이즈 예방법’의 명칭을 포함해 시대적 흐름과 현재의 HIV 예방·치료 환경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도록 법 개정 논의와 움직임이 일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단순한 명칭 변경만으로 HIV에 대한 인식이 즉각 개선되지는 않겠으나 정책·제도 차원에서 용어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김승환=미디어 등 대중문화에서 HIV가 묘사되는 방식의 변화도 중요하다. 과거와 비교하면 HIV와 에이즈가 더 이상 죽음, 공포, 혐오의 이미지로만 소비되지는 않고 있다. 다만 대중문화 전반에 HIV에 대한 인식 변화가 충분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하기엔 이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유명인이나 공적 인물이 HIV에 대해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사회적 인식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감염인이 아니더라도 연대와 지지를 표현하는 유명인의 참여는 HIV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을 완화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와 전문 학회, 성소수자 커뮤니티, 감염인 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프렙 액팅 그룹’의 활동도 기대된다. 미국 등 서구 국가도 1980~90년대 이른바 ‘에이즈 대재앙’ 시기에 민·관·학 협력 캠페인을 통해 신규 감염자 수와 사망률을 의미 있게 낮춘 바 있다. 국내 성소수자 커뮤니티 역시 해외 사례와 마찬가지로 MSM이 HIV 감염에 상대적으로 노출도가 높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보다 이를 공동체 안에서 함께 관리해야 할 건강 이슈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HIV 퇴치를 위해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면.
△진범식=국내 HIV는 최근 몇 년간 내국인 신규 감염은 소폭 감소했으나 외국인 감염이 증가해 전체 수치에는 큰 변화가 없다. 따라서 외국인, 특히 미등록 외국인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 현재 치료는 미등록 외국인도 제한적 범위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예방 요법인 프렙의 경우 현행 제도상 미등록 외국인 대상의 지원 자체가 구조화돼 있지 않다. 제약사나 공공·민간재단을 통해 우회적 지원 방안들이 논의돼 왔으나 미등록 외국인의 경우 신분 확인이나 계좌 개설 등 문제로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데 현실적 한계가 크다. 정책이나 행정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또 한국은 HIV 치료제 보급률과 바이러스 억제율이 95% 이상으로 비교적 잘 관리되는 반면 진단율은 소득 수준이 유사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다. 익명 검사의 활성화, 의료 현장의 낙인과 편견 해소 노력, 감염인이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이 더 필요하다. 아직 백신과 완치법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천연두처럼 HIV의 퇴치나 종식을 말하긴 이르지만 이런 노력이 더해져 새로운 감염을 최소화한다면 한국이 종식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세금 환급액 도착” 허위 광고 ‘삼쩜삼’에 과징금 부과
- 호주는 16세 미만 차단하는데… 인스타그램 “10대 공략 최우선”
- 李대통령, ‘통합 넥타이’ 매고 청와대로…참모진엔 “왜 나와 있어요?”
- 무려 400만원…‘마약’ 황하나, 구속 때 입은 패딩 실체
- 대한항공, 납품업체 해킹에 임직원 개인정보 유출…“긴급조치”
- “할머니 미안해요” 선배 협박·폭행에 16세 소년 사망
- 50만원에도 지갑 선뜻… 5~6시간 줄서도 괜찮아… ‘연말 필수템’ 된 케이크
- 글로벌 투자은행들, 원·달러 1440원 안팎 전망
- 버티는 세입자들… 서울 분양·입주권 거래도 6년 만에 최대
- “믿었는데…” 성폭력 피해자 배상금 가로챈 국선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