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도, 인생도... 어디로 구르는지 누가 압니까" [오늘도 야구]

김지은 2025. 12. 2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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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나를 위한 말] 웹툰 <리듬 앤 베이스볼>에서 길어올린 중년의 연말에 필요한 말

올 한 해 나를 이끌고, 다독이고, 나아가게 한 문장을 새겨봅니다. 2026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일으킨 말들을 나눕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엉망인 수영 자세를 다듬기 위해 수영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첫날, 수영 코치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다. 머릿속에선 진즉 숫자 하나가 떠올랐지만, 난 내 나이가 몇이더라... 하며 시간을 끌었다. 아하하, 하는 괜한 웃음도 지었다. 한참 후 나이를 말하고 나서, 나이를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주저되는지 생각했다. 나이가 많은 게 미덕인 사회가 아니고 내 나이는 적지 않아서다.

새로운 나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계속 자꾸 한 살, 한 살이 더해져 항상 내 나이가 어색하다. 내 입으로 그 숫자를 말하면서 나도 놀란다. 아, 내가 벌써. 그러나 한탄은 아직 이르다. 며칠 지나면 또 한 살을 먹으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데 나이 먹는 건 왜 공짜인가. 나이와 시간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기, 연말이 되었다.

눈길 끄는 낭만 야구
▲ 카카오웹툰 <리듬 앤 베이스볼> 최근 연재 완료된 장이 글, 황지성 그림의 웹툰. 장이는 이전에 퍼펙트 게임, 경이로운 소문을 연재했다.
ⓒ 카카오웹툰
남편의 추천으로 <리듬 앤 베이스볼>이란 카카오 웹툰을 보게 되었다. 방출된 투수와 포수 이야기다.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던 42살인 최고령 투수와 포수가 경기 중에 치고받고 난타전을 벌인 후, 각 팀에서 방출됐다.
이후에도 둘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 시즌 프로에 합류하기 위해 훈련을 계속한다. 딱 1년만 더 시즌을 뛰고 방출이 아닌 제대로 은퇴를 하고 싶어서다. 한 해가 지났고 그들은 마흔셋이 됐으며 프로의 벽은 생각보다 높아 육성선수로도 뽑히지 못한다. 그 바닥에서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듬 앤 베이스볼> 중 한 장면.
ⓒ 카카오웹툰
30년을 원수로 지냈던 그들은 우연한 기회로 화해하고 하나의 배터리(투수와 포수를 같이 지칭할 때 '배터리'라고 한다)로 프로 입단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발톱이 빠지고 몸에 멍이 들고 손이 다 부르튼다. 그들이 다시 프로에 도전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구단 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친다. 프로에서 뛰기엔 너무 늙었다며 꿈을 좇는 그들을 비웃는다.
"낭만? 야구판이 가장 현실이야."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했던 프로에 재입성한다. 현실 감각이 없다며 그들을 비웃을 때 쓰던 '낭만'이란 단어가 현실을 뛰어넘은 그들에게 감탄할 때 쓰이게 된다. 관중들은 그들에게 '낭만'을 보여달라고 하고, 신문 기사에서도 그들의 야구를 '낭만 야구'라 칭한다.

주인공 투수가 던지는 힘 있는 공 자체를 '낭만'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그들을 아예 '낭만 배터리'라고 부른다. 퍽퍽한 현실에 매인 보통 사람들에게 그들의 도전 성공은 희망이고 낭만이고 대리만족이 된다.

'낭만'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전염성에 있다. 주인공인 '낭만 배터리'가 소속된 팀은 리그 최하위였는데, 말도 안 되는 기록을 경신한다. 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이 팀에 낭만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꿈을 좇는 낭만에 전염된 것이다.

웹툰의 주인공이 중년이어서 그런지 40, 50대의 댓글이 특히 많았다. 자신도 지금 바닥이라는 글, 너무 공감되어 볼 때마다 운다는 글, 이 웹툰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는 글. 자신의 힘든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응원받는 댓글들을 보며 이 웹툰은 댓글로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나에게서 밖으로
 우리 인생이 어디로 구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기에 희망적이다.
ⓒ mkbpix on Unsplash
얼마 전 이 웹툰의 마지막화가 올라왔고, 마지막까지 감동적으로 본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음미하며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그 투수와 포수가 바닥에서 분연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정신력과 노력 이전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수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통장을, 포수의 아내는 남편에게 비밀 적금을 깨서 내밀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한다. 레전드로 은퇴한 야구선배는 이 둘을 불러 고강도 야구 훈련을 시켜준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 그들을 부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그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가족이 지지해 줄 만큼 성실했고, 과거 레전드 선배가 나쁜 길로 빠지는 걸 두 사람이 온몸으로 막아 선배가 그 길에서 벗어나게 도왔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였다. 거기에 주변의 도움과 나의 노력이 더해져 꿈을 좇을 힘이 생기고 이윽고 때가 이르면 현실을 뛰어넘는 낭만적인 꿈을 이루게 된다.

연말이 되어 올해 초에 세웠던 계획을 들춰 확인해 보았다. 운동하기, 외국어 공부, 책 읽기 등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 주변을 향한 시선이 없다. 연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사람을 살펴보고 감사를 표현하곤 하는데, 연초가 되면 주변으로 향했던 시선을 싹 모아 다시 나에게 집중시켰다.

26년에는 연말에 주변을 돌아보는 습관을 한해 전체로 확장 시키고 싶다.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은 채로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어쩌면 그럴 때, 낭만적인 뭔가를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웹툰에서 낭만 배터리의 활약을 예측하지 못한 해설위원에게 아나운서가 한 마디 하자, 해설위원이 이렇게 대답했다.

"야구공은 구르고, 인생도 구르죠. 어디로 구르는지 누가 압니까?" (38화 대사 중)

우리 인생이 어디로 구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기에 희망적이다. 나이가 많은데 지금 그런 꿈을 좇고 있냐고, 현실감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계신 분이 있다면, 어쩌면 좋은 타이밍일 수도 있다. 다음 낭만 스토리의 주인공은 당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고.

웹툰 <리듬 앤 베이스볼>는 전체 회차가 48화로 길지 않다. 현실을 뛰어넘는 낭만에 전염되고 싶은 분은 이 적절한 때를 놓치지 마시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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