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적 꿰맨 돛, '목숨 건' 배를 탄 사람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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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망성면 금강 가까운 작은 봉우리에 나바위성당이 있다.
김대건 신부가 최초로 사목활동을 했다는 강경성지성당을 찾아갔다.
나바위성당은 처음부터 성지로 인식된 장소가 아니라, 후대의 기록 연구를 통해 1955년에 김대건 신부 기념탑 건립되었고, 이후 교회 순례 전통 속에서 성지로서의 위상이 구체화되었다.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의 선교 보고서는 김대건 신부의 귀국 지점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며, 나바위를 조선 천주교 국제 선교망의 중요한 접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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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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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나바위성당 |
| ⓒ 이완우 |
지난 23일 아침, 호남선 철도 강경역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의 성지'를 순례하는 걷기 여행을 시작하였다. 강경역에서 나바위성당까지는 익산으로 향하는 넓은 도로를 따라 3km 거리였다. 중간쯤 충청남도 논산 강경읍과 전라북도 익산 망성면의 접경을 넘어섰다. 아담한 산봉우리 기슭의 성당 첨탑이 멀리서도 식별되었다. 나바위성당은 금강둑에서 600m 남쪽에 있는 화산(華山, 40.4m)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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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나바위성당, 김대건 신부의 성상 |
| ⓒ 이완우 |
본당 건물을 지나 화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김대건 신부의 성상(聖像)이 서 있었다. 이 성상의 재료는 함열석이며, 성상 높이는 4m라고 한다. 이 성상 옆의 계단을 올라가면 김대건 신부 순교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김대건 신부 성상 가까이 성모 동산이 있다. 이 자리는 전라북도 삼대 명당자리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십자가의 길' 계단을 오르니, 화산 정상에 김대건 신부의 순교기념비가 있었다. 순교 기념비 옆의 망금정(望錦亭) 아래로 멀리 금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 망금정에서 금강의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었고, 이 화산 끝자락에 너른 바위가 나바위로 불렸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곳 망금정 아래 화산 발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는데, 1925년 무렵에 간척사업으로 금강 물줄기가 바뀌어 평야가 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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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화산(나바위) 아래의 라파엘호(복원 선박) |
| ⓒ 이완우 |
다블뤼 신부의 기록을 토대로 한 연구에 따르면 라파엘호는 길이 약 9.74m, 너비 4.22m, 깊이 2.59m에 불과한 소형 목선이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연안 어선보다도 작은 규모로, 장거리 항해에 적합하다고 보기 어려운 배였다. 라파엘호는 조선식 선체에 중국식 돛과 키를 덧붙인 임시 구조였고, 돛은 거적을 꿰매 만든 것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러한 조건은 항해 내내 생명의 위협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라파엘호는 항해 도중 여러 차례 폭풍우를 만났다. 특히 동중국해를 건너는 과정에서 거센 풍랑으로 돛과 키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고, 배 바닥 틈으로 바닷물이 스며드는 상황도 발생했다. 다블뤼 신부는 이 배를 두고 "목숨을 맡기기 어려운 배"라고 기록했다. 일행은 돛과 키를 임시로 수리하고, 인력을 동원해 물을 퍼내며 항해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성직자와 신자들은 함께 기도하며 결속을 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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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신부의 라파엘호의 항로와 나바위 표시 고지도 (라파엘호 안내판 사진) |
| ⓒ 이완우 |
라파엘호에 시선을 빼앗겨서, 김대건 신부가 배에서 내린 첫 상륙지로 전해지는 십자바위를 잊고 있었다. 라파엘호 가까운 화산 기슭을 살펴보았다. 멀리서도 한눈에 '저 바위가 십자바위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십자바위 안내판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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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신부의 첫 상륙지로 전해지는 십자바위 |
| ⓒ 이완우 |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이는 이곳은 십자가의 길 제6처로,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을 묵상하는 곳이다. 큰 바위 위에 깊고 선명하게 십자가 형태로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자리는 바로 김대건 신부가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십자바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화산(華山)의 유래' 안내판이 보였다.
이 산은 '華山(화산)'이라고 불리는데, 이름은 우암 송시열이 산의 사계절마다 변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화산이라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산 위에 소나무 뒤로 보이는 바위에는 송시열 선생이 지나가다 감격에 넘쳐 붓을 들어 직접 새긴 화산이라는 글씨가 오늘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 화산의 유래 안내판 일부 인용
안내판 부근의 바위를 잘 살펴보았다. 검은 반점이 생긴 바위에 더 짙게 '山(산)' 자가 보였다. 그 오른쪽에 글씨 한 자, '華(화)' 자로 읽어도 되겠다 싶었다. 나바위성당이 자리한 화산을 떠나서 금강둑을 걸어서 강경읍으로 돌아왔다. 금강 하구언이 축조되기 이전에 서해 바닷물이 조수 간만에 따라 강경포구까지 밀려왔을 풍경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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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포구 위치의 등대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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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포구 위치의 김대건 신부 라파엘호(복원 선박)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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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성지성당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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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성지성당, 김대건 신부의 라파엘호(복원 선박) |
| ⓒ 이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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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성지성당 가까운 구순오 신자의 집 위치, 김대건 신부가 머물며 성사를 집전했다. |
| ⓒ 이완우 |
덧붙이는 글 | 라파엘호 제원 재해석 논문 : 홍순재, <라파엘호 구조와 규모에 관한 고찰>, <교회사연구> 59, 2021 (한국교회사연구소). 나바위 상륙 설명 : 나바위성당 자료(전주교구/인문360 등) "페레올 주교·다블뤼 신부와 라파엘호 귀국" 기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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