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부정부패의 대가

우크라이나 도로는 악명 높다. 30분만 차를 타고 다니면 엉덩이가 얼얼하다. 유지보수가 안돼 포장 상태가 나빠서다. 수도 키이우조차 예외는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국민 드라마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일꾼’에선 고위직 장·차관부터 현장직까지 도로 공사비를 떼먹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열악한 도로 사정은 우크라이나 부정부패의 상징이다.
우크라이나 국영 기업 일감을 수주했던 한국인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기업 간부들이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고는 정산을 안 해준다”고 하소연했다. 재빠른 한국 기업들이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종전 후 우크라이나 건설 특수 기대가 낮다고 한다. 대신에 러시아 건설 특수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푸틴 대통령 역점 사업은 공사 대금을 칼같이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본은 부정부패를 싫어한다. 돈을 받기 위해서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지난 7월 수도 키이우에서 부패 척결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8/joongang/20251218002208323fedj.jpg)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민의 일꾼’에서 부정부패와 맞서는 대통령 역을 맡았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벗어나 현실의 대통령이 됐을 때는 달랐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나라의 존망을 걸고 러시아군과 맞서 싸우는 와중에 젤렌스키 대통령 측근들의 뇌물 사건이 터졌다. 대통령 친구와 장관들,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루됐다. 반부패 수사기관이 녹취록 등 증거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대통령이 부패한 측근들을 읍참마속하는 드라마는 없었다. 여당은 말 안 듣는 반부패 수사기관을 대통령 통제 하에 두는 법안을 밀어붙이며 수사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결과만 보자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여당의 개혁은 무위로 돌아갔다. 돈줄을 쥔 유럽이 “우크라이나의 부정부패를 해소하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도 대규모 시위로 부패 척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발 물러섰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직전 우크라이나 총인구는 4200만 명이었다. 개전 후 해외로 520만 명이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군 전사자 수가 7만~14만 명(영국 이코노미스트) 정도다. 우크라이나인들이 하나같이 전쟁이 두려워 떠난 건 아닐 것이다. 미래에 대한 비관이 큰 몫을 했다고 본다.
한국 여당이 벌이는 현란한 수사구조 개혁 드리블을 볼 때마다 쭉 뻗은 한국의 고속도로와 우크라이나의 파손된 도로가 대비되며 떠오른다. 몇십 년 뒤 한국 도로의 포장상태는 어떨까.
박현준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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