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미술관 여행, 등 떠밀리기 싫다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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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 미술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에서 모아 둔 내용을 바탕으로 유럽 7개국 미술관의 대표 작품을 소개합니다.
로댕은 자신의 작품과 드로잉, 수집품을 프랑스 국가에 기증하되, 이 저택을 보존해 '로댕의 미술관'으로 만들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작품은 1888년 프랑스의 주문으로 제작이 시작됐고, 이후 여러 기관을 거쳐 로댕 미술관에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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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 미술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에서 모아 둔 내용을 바탕으로 유럽 7개국 미술관의 대표 작품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김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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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댕 미술관 정원에서 만난 〈생각하는 사람〉 |
| ⓒ 김상래 |
비롱 저택은 원래 '오텔 페이랑 드 모라스(Hôtel Peyrenc de Moras)'로 불리던 파리의 도시 저택(hôtel particulier)이었습니다. 1727년부터 1732년 사이에 지어졌고, 설계자는 프랑스 건축가 장 오베르(Jean Aubert)로 알려져 있습니다. 겉모습은 고전주의 특유의 단정한 비례를 따르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18세기 프랑스가 사랑한 로카유(rocaille) 장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로카유는 말 그대로 조개껍데기(rocaille)와 바위의 굴곡을 닮은 장식이에요. 직선으로 딱 잘라 끝내지 않고, 선을 S자처럼 부드럽게 휘게 만듭니다. 무늬는 소용돌이처럼 말려 들어가고, 덩굴과 잎사귀가 얽힌 형태가 벽과 천장, 몰딩을 따라 흐르지요. 그래서 방 안을 보면 "각이 잡힌 궁전"이라기보다, 물결이 살짝 남아 있는 표면처럼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비롱 저택은 귀족 저택으로 출발했지만, 1820년부터는 '성심회(Society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수녀들이 들어와 상류층 소녀들을 위한 기숙학교(보딩스쿨)로 운영되었습니다. 그 시기(19세기)에는 학교 운영에 맞게 건물과 정원이 선보였고, 1876년에는 예배당(채플)도 새로 지어 저택 안에 교육·종교 시설 기능이 함께 들어오지요. 1904년, 프랑스의 정교분리 흐름 속에서 수녀회가 저택을 떠납니다. 그러자 비롱 저택은 한동안 텅 빈 건물이 되었지요.
매각이 미뤄지는 동안 임대료는 자연스럽게 내려갔고, 그 틈을 타 예술가들이 하나둘 들어옵니다. 장 콕토, 앙리 마티스, 이사도라 던컨,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이름들이 이곳을 임시 거처이자 작업실처럼 사용하게 됩니다. 로댕도 그 무리에 합류하지요.
로댕은 1908년, 우선 1층의 방 네 칸을 빌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1911년부터는 건물 전체를 쓰게 됩니다.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1916년에 찾아옵니다. 로댕은 자신의 작품과 드로잉, 수집품을 프랑스 국가에 기증하되, 이 저택을 보존해 '로댕의 미술관'으로 만들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그 약속은 사후에도 이어져 1919년 8월 4일, 이곳은 공식적으로 로댕 미술관으로 문을 엽니다.
로댕 미술관은 로댕이 작업하던 그 공간 자체입니다. 큰 창으로 들어온 빛이 복도를 길게 훑고, 계단을 돌아 전시실까지 이어집니다. 정원에서는 햇살과 바람이 청동 표면을 바꿔 놓아, 같은 조각도 시간대마다 다르게 보입니다. 로댕은 바로 이런 조건—빛이 들어오는 방향, 걷는 거리, 정원의 공기까지—함께 남기고 싶었던 겁니다.
정원에서 조각은 '표정'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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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댕 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지옥의 문〉 |
| ⓒ 김상래 |
저에게 로댕 미술관이 더 특별한 이유도 그 '속도' 때문입니다. 학창시절에는 빽빽한 파리 일정 사이에서 잠깐 숨을 고르던 곳이었고, 시간이 흘러 가족과 다시 찾았을 때는 하루를 느릿하게 쓰는 여행지가 되었지요. 루브르에서는 늘 사람의 흐름에 떠밀리기 쉽습니다. 작품 앞에 오래 서 있고 싶어도, 뒤에서 밀려오는 발걸음이 등을 떠미니까요.
로댕 미술관은 다릅니다. 정원을 한 바퀴 천천히 돌고, 벤치에 앉아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조각의 그림자가 잔디 위로 길어지는 걸 한참 바라봅니다. 그러다 다시 실내로 들어가, 전시실 안에서 석고의 흰빛을 마주하지요. 특별히 동선을 짜 둔 것도 아닌데, 어느새 발길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파리에서 정말 필요한 건 '더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 발걸음을 늦추고 제대로 보는 시간입니다. 로댕 미술관은 그런 시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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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댕 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칼레의 시민들〉 |
| ⓒ 김상래 |
<청동시대>와 <발자크> 그리고 클로델의 방
비롱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 18세기 목재 장식과 거울, 마룻바닥이 조각을 위한 무대가 됩니다. 빛도 곧장 쏟아지지 않아요. 복도와 문틀을 한 번 지나며 부드럽게 꺾여 들어오고, 그 덕분에 조각의 굴곡이 더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놓인 작품이 <청동시대>(L'Âge d'airain)입니다. 로댕은 브뤼셀에서 이 조각을 만들었고, 모델은 젊은 벨기에 군인 오귀스트 네이트(Auguste Neyt)였습니다. 1877년 브뤼셀에서 처음 공개된 뒤, 같은 해 파리 살롱에 출품되자 반응은 두 갈래로 갈렸습니다.
한쪽에서는 "살아 있는 몸 같다"고 감탄했고, 다른 쪽에서는 "실제 사람 몸에 석고를 떠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지요. 로댕은 사진과 석고 자료를 내놓으며 정면으로 해명해야 했습니다. 그 논란은 결과적으로, 로댕이 살아 있는 몸을 얼마나 집요하게 관찰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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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댕미술관 안의 <청동시대> |
|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로댕은 그저 "닮은 얼굴"을 만들려 한 것이 아니라, 발자크의 창작의 기운, 육중한 존재감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여주려고 했지요. 사진이나 책에서 볼 때도 묵직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그 무게감이 훨씬 더 육중하게 몸으로 와 닿아요. 사람 하나를 세운 기념상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존재'를 세워 둔 느낌이지요.
당시 사람들에게 이 조각은 너무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결국 1939년 청동 주조본이 파리 라스파이 대로(Boulevard Raspail)에 공공기념물로 세워집니다.
실내를 더 깊이 들어가면, 어느 순간 시선이 까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의 방으로 옮겨갑니다. 이곳에서는 로댕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따라붙기 쉽지만, 방 안에서 정말 중요한 건 가십이 아니라 클로델만의 조각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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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미유 클로델 〈성숙한 나이(L’Age mur)〉 세 인물의 거리와 손끝만으로 ‘떠남’과 ‘붙잡음’의 감정이 동시에 읽히는 조각 |
| ⓒ museecamilleclaudel |
로댕 미술관은 작품이 많아서 좋은 곳이 아닙니다. 작품이 놓이는 자리와 빛이 잘 준비된 곳입니다. 정원에서는 조각이 햇빛과 바람을 그대로 받아 표정이 달라지고, 실내에서는 창으로 들어온 빛이 시간대마다 굴곡을 다르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무엇을 봤는지"만큼 "어떤 빛에서 봤는지"가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로댕이 비롱 저택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이유에 가장 가까운 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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