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중립 택한 프로이센의 착각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독일 동쪽 일부를 차지했던 당시 프로이센 인구는 800만명 정도인 반면 프랑스는 3000만명이었다. 오스트리아는 2500만명, 러시아는 4000만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지만 유럽의 다른 약소국 중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한 까닭에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어떤 강대국에 줄을 서야 할지 엄청난 고민을 했다.
나폴레옹이 승리한 전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는 아마도 1805년의 세 황제의 전투라고 불리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일 것이다.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두 황제의 연합군을 상대로 싸워 통쾌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명실상부한 유럽의 최강자가 됐다.
그런데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프로이센은 어느 쪽이었을까? 프로이센은 중립을 선택하고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원래 오스트리아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프랑스는 혁명으로 자신의 왕을 단두대로 보낸 나라이므로 왕이 통치하는 프로이센으로서는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 이보다 세 명의 황제가 한곳에서 전투하는 상황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그 향방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심약한 왕이었다고 하며 아마도 가장 쉬운 선택인 중립을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에서 승리하고 1년 후인 1806년에 프로이센이 단독으로 나폴레옹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바로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황제의 연합군도 패배한 나폴레옹에게 약소국인 프로이센이 혼자 싸워서 이길 수 있었을까?
당연히 완벽한 패배를 당한다. 프로이센은 실질적으로 프랑스 식민지가 돼 고통을 겪게 되고 국민들이 독립운동의 마음으로 체조를 시작했던 것이다.
1993년 일본 총리였던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이 호소카와 총리의 가문은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전통의 명문가다. 그런 호소카와 가문에서도 16세기에 살았던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가 유명한 영주였는데 그 이유는 전투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줄을 잘 섰기 때문이었다.
16세기는 일본의 전국 시대로서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계속 정권이 넘어가던 시대였다. 당시 일본 사무라이들은 오늘 강한 영주의 부하가 되더라도 내일 큰 전투에서 자신의 영주가 패배해 죽고 다른 영주가 최강자가 되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이런 혼란기에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다음 전투에서 누가 승리할지를 귀신같이 맞춰서 전쟁 직전에 줄을 바꿔 섰던 사람이 바로 호소카와 후지타카였다.
물론 우리에게 호소카와 후지타카와 같은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매번 승자를 맞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런 승자를 점치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에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선택이 중립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나 국가가 중립적인 위치를 취하는 것은 가장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중립을 취했던 프로이센이 결국 승리한 나폴레옹에게 패전국 취급을 받은 것처럼 일본의 전국시대의 모리(足利) 가문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과 이에 반기를 들고 나온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벌인 유명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쪽의 토요토미와 동쪽의 도쿠가와라는 두 세력에 이어 일본에서 세 번째로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던 모리 가문이 승패를 좌우하는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다.
고민하던 모리 가문은 결국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모리 가문의 영토와 군대를 그대로 보장해준다는 약속을 양측으로부터 받아낸 후 중립을 유지하며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는 이전에 했던 약속을 바로 무시하고 모리 가문의 영토 120만석 중에서 84만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미 토요토미 가문이 패망한 상황에서 일본의 최강자인 도쿠가와의 요구를 무시하면 모리 가문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리는 이후 겨우 36석에 불과한 작은 땅의 영주로 몰락하게 된다.
전투나 갈등이 한창인 상황에서 캐스팅 보트를 가진 프로이센이나 모리 가문 같은 존재가 적군에 가담하지 않고 중립만 지켜준다고 해도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나폴레옹과 도쿠가와가 전투에 승리해 더 이상 적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중요한 전투에서 중립을 취한 자는 기회주의적인 존재이고 언제라도 미래의 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중립을 취했다고 해도 승자 입장에서는 패배자와 똑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중립을 선택했다가 패배자 취급을 받으면 차라리 전투에서 패배한 것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바로 싸워보지도 않고 나라를 내준 왕과 지휘관에 대한 내부의 원망이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중립을 지켰지만 나폴레옹 군대에 식민지 취급을 받게 된 프로이센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소심한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게 큰 불만을 갖게 됐다. 그 결과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정권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정권 불안과 국민의 불만이 얼마나 컸으면 작은 국가인 프로이센이 단독으로 나폴레옹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됐다. 오히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패배한다면 국민들도 패배를 받아들이게 되고 왕과 지휘관도 새로운 개혁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립이라는 위치는 혼자서도 싸울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는 존재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이다. 혼자서 싸울 힘이 없는 어중간한 존재가 강대국 사이에서 잠깐 캐스팅 보트를 쥐었다는 것에 우쭐해 중립을 취했다가는 최종적 승자에게 전투에 패배한 것보다 못한 취급을 받게 될 수 있다.
당시 프로이센의 유명한 군인이자 전략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프랑스군과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강경파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복에 실패하였을 때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를 설득해 바로 러시아와 힘을 합해 프랑스군을 공격하도록 한 주역이다. 그런 뛰어난 전략적 사고를 가진 클라우제비츠가 저술한 ‘전쟁론’이 지금도 군사 분야의 필독서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불확실한 순간이라고 망설이지 말고 한쪽을 선택해 용감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답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9호 (2025.12.17~12.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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