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원 교수의 신학하는 마음] 하나님 향한 마음으로 사람 품는 신학 꽃 피우다

2025. 12. 1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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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 칼뱅 :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초상화. 스위스관광청 제공


시인 윤동주는 ‘서시’에서 고백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에게 하늘을 우러름은 단순한 시선이 아니라 삶 전체를 가로지르는 영혼의 자세였습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자기보다 크신 분, 심판과 은총을 함께 품은 절대자의 자리였습니다. 그는 그 하늘을 우러르며 괴로워했고, 그 괴로움 속에서 시와 삶을 정화했습니다. 끝내 닿을 수 없음, 그 부끄러움의 무게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일이 쉬울 리 없었습니다.

장 칼뱅(1509~1564)의 신학도 이 우러르는 마음의 운동 안에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강요’ 첫머리에서 인간의 모든 지혜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땅을 향한 시선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향한 마음의 고양, 곧 하늘을 우러러 드높여지는 마음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실패와 좌절의 자리에서 더 간절해집니다.

칼뱅에게 하나님의 현존은 언제나 인간의 눈에 맞추어 제한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구름 불꽃 연기 등 모두가 인간을 압도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끝내 붙잡지 못하게 하는 굴레처럼 작동했습니다. 그 앞에서 인간은 손을 뻗지만, 그 손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의 흔적만 스칠 뿐입니다. 그 흔적 앞에서 마음은 위로 들어 올려져야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분, 때로 침묵하시는 분 앞에 무릎 꿇고 우러르는 자리에서 믿음이 시작됩니다. 시편 기자가 121편에서 “나의 도움이 위로부터 온다”고 고백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칼뱅은 성찬에서 말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붙드는 손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마음이 그리스도와 교통하게 한다고요. 이 교통은 보이지 않는 분을 끝내 붙들려는 믿음의 몸부림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성찬의 신비는 우러르는 마음 안에서만 살아납니다. “마음을 주께 드높여(Sursum Corda).” 성찬은 의례가 아니라 내 심장을 땅에서 들어 올려 하늘로 향하게 하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칼뱅이 25년간 사역했던 스위스 제네바 생 피에르 교회 내부 모습. 스위스관광청 제공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은 고난의 땅에서 더욱 밝게 타올랐습니다. 그래서 스트라스부르 시절은 한 줄기 결정적 빛으로 다가옵니다. 1538년 제네바에서 쫓겨난 뒤, 칼뱅은 피난처에서 신학의 광도(光度)를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사유는 설명을 넘어 빛이 됐고, 그 빛은 라틴어의 정교한 논증을 모국어의 정확하고 온유한 문장으로 바꾸어 박해받는 신자들의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1536년 라틴어 초판이 프로테스탄트 밤하늘의 ‘노바(nova)’였다면, 1541년 프랑스어 번역은 순례자의 길을 비춘 ‘슈퍼노바(supernova)’였습니다. 프린스턴신학교의 엘시 앤 맥키는 이 판본을 “보다 목회적이며, 평신도를 향한 언어적 전환”으로 평가했습니다.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고난 속에 있는 이들의 내면을 품으려는 신학적 의지였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칼뱅의 우러르는 마음은 피난민과 회중의 언어 속에 스며들어 위로의 목회적 음성이 됩니다. 옥스퍼드대의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칼뱅주의는 영향력과 침투력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견줄 만하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마음이 교리와 예배, 삶과 시대를 관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칼뱅의 생애는 투쟁과 불안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제네바에서 추방과 귀환을 경험했고, 스트라스부르 망명 시절에는 고독과 병약함 속에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수십 가지의 병고에 시달렸지만, 그는 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내가 주님의 발 아래 게으름을 핑계로 눕는 일이 없기를 원합니다”라고 답했지요. 그의 삶을 요약하는 표현 ‘지치지 않는 근면(indefessa industria)’은 단순한 성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불꽃을 가리킵니다.

최후의 유언에서 그는 말합니다. “나는 많은 약점 속에서도 진심을 다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는 흠 없음을 자랑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까지 하나님 앞에 내어 비추어 드리는 신학자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라틴어의 치밀한 논증 속에서도, 프랑스어의 더 따뜻해진 어투 속에서도, 그의 글은 딱딱한 교과서가 아니라 마음의 교본이 되었습니다. 문장 하나까지도 하늘을 우러러 다듬은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마음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힘들로 가득합니다. 속도의 압박, 물질의 유혹, 화면의 홍수 속에 우리는 쉽게 땅에 붙들립니다. 그러나 지금 절실한 것은 칼뱅과 윤동주가 보여준 우러르는 마음 아닐까요.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을 향해 끝내 고개를 드는 신앙의 올곧음. 박해와 병약, 추방과 고독 속에서도 타인을 비추는 지속적인 별빛 말입니다.

“내 마음을 당신께 올려 드립니다. 기꺼이 그리고 전심으로.” 젊은 칼뱅이 남긴 이 좌우명은 그의 전 생애를 요약합니다. 그는 머리로만 신학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신학은 그의 심장에서 솟아올랐고, 괴로움과 경외 속에서 거듭 벼려졌습니다. 죽음이 다가올 때조차 교회를 위해 글을 쓰고 기도하다가, 조용히 하나님을 향해 드높여진 마음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머리를 넘는 신학, 교리를 넘는 기도, 문장마다 새겨진 마음의 떨림. 그의 신학은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우러르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칼뱅은 평생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우러르는 마음을 잃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발자취를 따라 상처 속에서도 끝내 붙드시는 은혜 안에서 마음을 드높이는 신앙을 배워가야 하지 않을까요.

송용원 교수(장로회신학대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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