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기간 약 10년, '진남관' 현장 소장의 여정

오병종 2025. 11. 2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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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수리기술자 천성열 현장소장 "대형 국보 건물 전면 해체 수리, 최선을 다했다"

[오병종 기자]

국보 진남관을 해체·수리·보수했던 지난 10년간 온전히 진남관과 함께 여수에서 살아온 국가유산수리기술자 천성열 현장소장이 여수에 다시 왔다.

지난 22일 저녁 여수시 미평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여수살롱에서 열린 '2025 인문학 특강 : 불멸의 건축코드 진남관을 이야기하다' 강연을 찾았다. 천 소장은 시각 자료와 함께 10년간 추진해온 진남관의 해체, 보수, 상량, 완공까지의 기록을 정리해 강의와 질의 응답을 두 시간 동안 진행하며 '진남관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함께 그의 여정을 공유했다.
 국보 진남관을 해체수리보수했던 지난 10년간 온전히 진남관과 함께 여수에서 살았던 국가유산수리기술자 천성열 현장소장이 자난 22일 여수살롱에서 강의하고 있다.
ⓒ 오병종
여수살롱 임호상 대표(시인·소리기획 대표)는 "수백 년 세월의 무게를 견딘 진남관의 뒤틀림과 해체, 그리고 10년의 기록을 현장 소장으로 참여한 천성열 국가유산수리기술자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듣고, 이를 계기로 여수의 자부심인 국보 진남관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남관은 2015년 12월 보수 정비 공사에 착공해 해체 작업과 보수 과정을 거쳐 2023년 3월 중수 상량식을 가졌고, 지난해 7월 단청 공사를 완료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가설 덧집 철거 및 주변 정비를 거쳐 지난 6월 보수 정비 공사를 마치고 준공했다. 총 공사 기간은 9년 6개월이다.

천성열 기술자는 먼저 2014년 제6차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현 건축문화유산분과위원회의 해체 보수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기울기 등 변위 측정 조사 결과 뒤틀림이 심각하고 구조적 불안정이 가중되어 추가 훼손이 우려된다고 판단해 해체 보수를 결정했습니다. 진남관은 종고산 경사면에 세워져 지형 특성 상 앞쪽으로 기울었고, 지하수 영향으로 습기 피해도 컸습니다. 또 내부 칸막이 철거 과정에서 기둥 지지가 약해져 뒤틀림이 심화되었습니다. 북쪽면의 뒷기와는 추위에 견뎌야 해서 강도가 센 무거운 걸 사용하고, 남쪽은 더 가벼운 기와를 사용함으로써 기와 남북면 하중의 불균형도 건물 뒤틀림의 원인이었습니다."

해체 복원은 수리·보수를 하면서 앞서 언급한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해체 전 기둥의 기울기를 조사한 결과 최대 25cm 넘게 기울어 있었는데, 이 정도면 일반 건물이라면 함몰 수준이었다. 진남관이 그 정도의 기울기에도 그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기둥의 굵기 덕분이었다. 기둥 둘레가 최소 600~700mm, 최대 820mm에 달해 굉장히 큰 굵기의 기둥이었기에 그런 이완에도 견딜 수 있었던 것. 또 건물의 뒤틀림 상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 중 궁궐에 비해 약간 느슨한 건축이 이뤄진 점을 발견했는데, 이는 지방관아 건물에서 흔히 나타난 현상이라고 전했다.
 지난 10원 진남관 해체복원 완공 기념식
ⓒ 오병종
2015년 12월 진남관 보수정비 공사가 착공되고 이듬해 7월 가설 덧집이 설치되자 시민들은 덧집 안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덧집을 짓는 이유에 대해 "목조 문화재는 오래될수록 비를 맞으면 빨리 부식되기 때문에 반드시 덧집을 지어 부재를 관리해야 하고, 현장에서 보수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해체·보수 작업을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덧집 안에서는 곧바로 해체 순서에 들어가지 않는다. 먼저 현재 건물 상태에 대한 정밀 조사를 마쳐야 해체에 돌입할 수 있다. 사전에 현대적 기술을 활용해 건물 구조를 검토했으며, 3D 스캐닝을 통해 변형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수치화했다. 이렇게 얻은 구조 계산을 통해 진남관의 안정성을 확인한 뒤 해체에 들어갔다.

천성열 소장의 강의 발췌와 일부 해설에 따르면, 해체는 상부 기와부터 차근차근 하단부로 진행됐다. 해체 과정에서 현 상태보다 더 큰 변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다양한 장치가 설치되었다. 기둥은 아무런 조치 없이 해체하면 추가 변형이 발생해 복원 시 정확한 복원이 어려워진다. 이를 막기 위해 비계를 설치해 균형을 유지하고, 끈으로 기둥끼리 연결해 지지가 유지되도록 했다. 또한 종도리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3개 발견되었는데, 이는 최초 건축때와 건축 후 중수할 때마다 추가된 것들이았다.

이번 복원 과정에서 상량문을 다시 넣어 현재 진남관에는 총 4개의 상량문이 남게 되었다. 최초의 상량문은 1718년 목판본으로,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91년 무술 중하, 곧 1718년 여름에 상량을 올렸다는 의미가 적혀 있다. 이는 화재로 소실된 뒤 다시 지어진 시기와 일치한다. 1718년 상량문에는 선조 32년(1599) 전라좌수영 객사로 처음 건립되었고, 이후 화재로 소실된 뒤 숙종 44년(1718) 전라좌수사 이제면 재임 때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2023년 3월 중수상량식때 상량문을 봉안하는 정기명 여수시장
ⓒ 오병종
상량고 별도로 종량(상층부 마지막 들보)에서 같은 시기에 참여한 도편수가 쓴 것으로 보이는 자료도 나왔다.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91년으로 초기 목판본 상량 시기와 똑같고 5월이다. 이어지는 또 다른 타임라인이 기둥 중 하나인 지주 하부에서 발견되었는데 강희 57년(1718년)4월이라고 적혀 있다. 기둥 세우는 작업은 그해 4월에 했고 5월 즉, 한 달만에 종량을 올렸단 뜻으로 당시 공사 속도와 인력 투입 규모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상량문은 목판본 외에도 1899년 종이 상량문, 1965년 상량문이 있다. 가장 상세한 기록은 1899년 상량문으로, 1898년 7월 24일 보수를 시작해 1899년 군수 최정익에 의해 완료했다는 내용과 함께 '조성택일'로 공사 일정이 기록되어 있다. 파옥(해체, 4월10일), 개기(기단을 보이게 한 공사, 12월 일), 정초(定礎)와 수주(竪柱)는 기초 닦고 기둥세우는 일은 기해(1899년) 4월 27일로 적혀 있다.

1965년 상량문에는 진남관의 연혁, 1954년 응급수리 내역, 1963년 보물 지정 사실이 정리되어 있다. 건물이 해체되면 초석만 남는다. 초석은 정밀 측정을 거쳐 교체 여부를 결정한다. 기존 초석은 당시 튼튼한 석질을 구하기 어려워 여수 인근에서 채취한 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태가 복원 기준에 미달해 70개 중 58개를 교체했다고 한다. 교체 과정에서는 2~3m 크기의 원석을 구해 각 기둥에 맞게 가공했으며, 준비한 70여 개 중 10여 개는 폐기될 정도로 신중을 기했다는 설명이다.

부재 보수와 교체는 해체의 역순으로 복원을 진행했다. 이번 중수 복원에서 완전 교체된 부재는 다음과 같다.

▲초석 70본 중 58본 교체 ▲기둥 70본 중 12본 교체(2본 복원) ▲대량 16본 중 1본 교체 ▲ 종량 14본 중 3본 교체 ▲퇴량 28본 중 2본 교체 ▲추녀 24본 중 21본 교체 ▲ 도리 166본 중 106본 교체 ▲ 단청 보수 ▲한식 전통기와 5만 4423매 교체

특히 이번에 사용된 기와는 수제 한식 전통기와로, 총 5만 4천 장이 넘는다. 이는 다른 건물 서너 채를 지을 수 있는 물량으로, 짧은 기간에 대량 수급하는 것이 중요했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수제 전통기와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KS 제품보다 낮은 온도에서 구워져 무게가 가볍다. 이는 목재 구조의 하중을 줄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강도 시험 결과 KS 제품과 약간 차이는 있었지만 기준을 충족해 우수한 강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러한 결정들은 기술 지도 자문 회의에서 이루어졌으며, 진남관 보수공사는 총 34차례 자문을 거쳤다. 천성열 기술자는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했다.

"진남관 같은 건축은 국고 지원보다 지역 민초들의 성원이 컸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에서 많은 참여가 확인됩니다."

"학교로 사용하다 철거된 벽체는 원럐는 복원키로 했으나 복원하지 않고 보류했습니다. 회랑 기둥만 남기는 형태로 유지했습니다."

"진남관 건물의 특징 중 하나는 객사 건물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해 12개의 용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복원 때 새롭게 걸었던 '진남관' 현판은 폐부재 중 상대량 몸통 부분을 활용해 옛 현판과 같이 복원했습니다."

"국가유산수리기술자는 2천명 가량이고 각종 국가 자격증을 갖고 활동하는 전통 건축 관련 종사자는 합해서 1만명 정도 이릅니다. 자격증 관계없이 종사하신 분들까지 전부 합하면 전국적으로 전통 건축 종사자들이 국내 2만 명 정도 됩니다."
 2022년 1월 13일 현재 진남관 내부 해체 보수 공사 현장 모습. 기초석 공사를 마친 상태
ⓒ 오병종
2023년 3월 15일 중수 상량식에서는 기존 3개의 상량문 외에 일반 상량문과 공사개요 상량문을 추가했다. 축원문 성격의 신병은 시인이 지은 이번 상량문은 서예가 박정명 선생이 해서체 기반으로 한 자신의 서체로 국한문을 혼용해 적었다. 시인의 표현으로 여수의 자랑스런 역사를 언급하고, 김총, 유탁, 정지, 정사준, 충무공 이순신 등 역 사인물들을 나열하며 여수인의 자긍심을 일깨워 주었다(관련 기사 : 국보 제304호 여수 진남관 상량문 전문을 보니).

이어지는 공사 개요에는 진남관의 규모, 총사업비(190억 원), 공사 기간(2015년 12월 ~ 2024년 12월), 공사 내용(진남관 전면 해체보수 및 주변 정비) 등이 기록되었다. 상량식 이후 변동 사항이 생겨 상량문의 공사 기간보다는 더 늦춰졌다. 특히 공사 내용은 '진남관 전면 해체보수, 석축 및 담장 등 주변 정비'로 명명되었으며, 여수시장과 시 관계자, 문화재청 기술지도단, 공사 관계자 등이 망라 되어 기록되었다.

국가유산수리기술자 천성열 현장소장은 "10년간 오로지 원상으로 뒤틀림을 잡고 제대로 복원한다는 일념이었다"면서 "대형 국보 건물 전면 해체 보수 수리는 평생에 한번 기회가 온다고 보는데, 최선을 다했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마친 점이 감사하다. 보람과 긍지가 컸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수리기술자인 그는 다시 국내 중요 문화재 보수수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복지뉴스에도 실립니다. 2020년 11월 '해체보수 중인 국보 여수진남관,지금상태는' 부터 해체보수과정의 기사를 꾸준히 게재해 왔으며, 마무리 성격의 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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