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 보는 날, 로봇고 3학년 실습생의 출근길 동행기
2025년 11월 13일, 전국이 수능으로 들썩이는 아침. 대부분의 19살은 시험장으로 향하지만, 또 다른 19살은 회사에서 하루의 일을 시작한다. 마이스터고 학생의 출근길을 동행했다. <기자말>
[오성훈 기자]
11월은 온통 수능을 위해 준비된 듯하다. 언론이 활시위를 당기고, 유통업계는 수험생 마케팅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물들인다. 거리에 '수능 대박'을 외치는 응원 현수막이 즐비해지기 시작한다. 청소년이 교실 안에만 있지 않듯이 19살은 수능 시험장 안에만 있지 않다.
13일, 내가 교장으로 있는 서울로봇고등학교 3학년 윤여련 학생이 기숙사 문을 나선다. 이날 나는 일원역–교대역–가산디지털단지역–회사까지 여련이의 출근길에 동행했다. 같은 나이 친구들이 시험장으로 향하는 시간, 여련이는 회사 마감 일정표를 떠올리며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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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 아침 회사 출근 수능 날 아침 일원역에서. “회사도 시험이에요”라며 웃는 윤여련 학생. 대각선으로 ‘수능 응원’ 현수막이 보인다 |
| ⓒ 오성훈 |
"수능 보는 날이라 한 시간 늦게 출근할 줄 알았는데, 우리 회사는 해당 없어요."
한 시간이라도 늦게 출근하고픈 직장인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여련이. 오전 7시 30분에 학교를 나서면 8시 30분 회사에 도착한다고 했다. 현장실습 중 단 한 번도 이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면서 "일부러 30분 전에 도착해서 교육을 받을 준비를 했어요. 그때마다 의료용 로봇 기술자가 될 제 모습을 그려보곤 했죠"라고 덧붙였다.
"실습 나가서 첫 월급 받은 날은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제 노동으로 받는 대가였으니까요. 부모님 선물 사고, 동생 챙겨줬어요. 그때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어요."
여련이의 출근길에 동행하며 질문 하나를 던진다. 대부분의 19세 아이들이 수능 시험장 '안'으로 향하는 이때 여련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학 갈 거예요. 지금 말고요. 지금은 고등학교 때 배운 로봇 기술로 회사 생활하고 돈도 벌어 놓고, 나중에 재직자 전형으로 대학 가야죠. 수능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이 힘들 거예요. 부럽지 않아요. 저는 제 길을 가는 것이니까요."
여련이의 선택은 이 시대의 19세가 스스로 내린, 또 하나의 합리적인 결정이다. 33년간 직업계고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나는 수능 시험장 '밖'에 있는 수많은 19세들의 '또 다른 성장'을 봐왔다. 여련이도 그중 하나다.
'수능이 인생의 단 한 번의 관문'이라는 믿음이 옅어지는 것, 학력 대신 실력을 보겠다는 이런 흐름은 사실 해외에서도 감지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AI 빅데이터 기업 팰런티어(Palantir)는 최근 고교 졸업생 22명을 '펠로십'으로 선발하며 월 750만 원의 급여를 제시했다. '대학은 고장 났다'고 말한 CEO는 학위보다 실력을 보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아이비리그 합격생조차 대학 대신 이 회사를 택했다.
기술 경력을 쌓아 경제적 자립을 먼저 이룬 후, 필요할 때 대학에서 학습의 기회를 얻겠다는 여련 학생의 전략은 글로벌 인재 채용 트렌드에 부합하는 현명한 생존 전략이자 주체적인 인생 설계이다. 회사 앞에 다다랐을 때, 여련이가 문득 물었다.
"담임 선생님은 수능 감독 가셨죠? 우리는 여기 출근하는데, 왜 담임 선생님은 우리한테 오지 않고 수능 감독을 가시는 거죠?"
그 말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이미 나의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다. 마이스터고의 정체성과 교육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 일반고 고3 담임은 보통 수능 업무에서 제외된다. 다만 올해는 수험생이 늘어 일부 고3 담임도 수능 감독에 참여한 걸로 안다.
하지만 수능을 보지 않는 마이스터고 고3 담임은 수능 고사장에 투입된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있는 현장실습 사업장 대신 수능 시험장으로 가야하는 모순, 그게 바로 수능 중심 사회에서 가려진 그늘이다.
수능 날 마이스터고 교사 배치 방식 개선이 필요하다. 현장실습 지도교사는 수능 감독 대신 현장 순회·추수지도를 공식 업무로 인정해 주면 어떨까. 수능 날 시험장 대신 자신을 찾아와 준 선생님을 본다면 현장실습 중인 아이도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러한 바람을 담아 여련이에게 말했다.
"그러게, 마이스터고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수능을 보는 친구들이 없고, 11월이면 대부분 아이들이 현장실습 중인데, 수능 날 담임 선생님들이 현장실습 중인 아이들 응원과 함께 현장 순회·추수지도를 하면 좋을 텐데…"
내 말에 듣던 여련이가 조용히 덧붙였다.
"수능 보는 친구들도 19살, 저처럼 현장실습하는 친구들도 모두 19살이잖아요. 그런데 수능 끝나고 수능 응시표가 있으면 할인해주는 곳이 많아요. 같은 19살인데 우린 없고…."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수능장 '안'의 청춘들에게만 얼마나 집중적인 관심과 혜택을 주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공정한 출발선'을 외치지만, 정작 '공정한 응원'과 '공정한 인정'은 특정한 길을 선택한 아이들에게만 주어진다. 같은 19세인데, 왜 한 쪽 길만 사회적 축하와 할인 혜택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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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13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마련된 시험실 앞에 걸린 달력에 수능 날짜가 나와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대학을 향해 긴 줄을 선택한 친구들은 4년간의 학문적 탐구와 폭넓은 교양, 그리고 대학 네트워크라는 자산을 얻는다. 반면 수천만 원의 학비와 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졸업 후에도 취업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다른 길을 선택한 친구들은 일찍 현장 경험을 쌓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만, 학력 중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마주할 수 있다.
어느 길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은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재능과 상황, 목표에 따라 선택한 길이다. 다만, 한 가지 길만이 정답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다른 길' 바깥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심과 제도적 지원에서 소외되는 현실은 여전히 아쉽다. 모든 19세 아이들이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동등한 존중과 응원, 그리고 제도적 지원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개화 시기와 상관없이 모든 꽃을 바라보듯, 삶의 개화 시기도 존중해야 한다.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 가을에 피는 꽃, 심지어 인동초처럼 겨울에 피는 꽃도 있다. 어느 꽃이 더 예쁘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꽃은 그저 꽃이다.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다. 19세의 삶도 마찬가지다.
19세의 길은 수능장 안에도, 밖에도 있다. 서로 다르지만, 어느 길도 뒤에 서 있는 길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길에 점수를 매기거나 우열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어떤 길을 선택하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자신답게 걸어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19세 응원 프로젝트'를 다양한 아이들에게 확대했으면 한다. 수능 응시표처럼 현장실습 증명서에도 문화·외식·교통 할인 혜택을 부여하면 어떨까. 기업과 지자체가 함께 나서면 큰 힘이 될 거다. 19세의 어떤 선택이든 그 길이 모두 빛나도록 만드는 것이 어른들과 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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