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도 IT 창업 가능할까? 서울 탈출한 개발자의 실험

윤준식 2025. 11. 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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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지역에서 산다는 것: 공주편①] '서로맑음 스튜디오' 이상준 대표

2024년 10월, 우연히 발견한 페이스북 포스팅 하나가 기자의 발걸음을 충남 공주로 향하게 했다. '제민컴퍼니즈 시즌5'라는 마을의 작은 포럼 소식이었는데 "보조사업과 지원사업 없이 자발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이루어집니다"라는 문구가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지역의 토론회 대부분이 정부 기관, 중간지원조직 주도, 혹은 지원사업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자발적이고 내발적인 움직임이라니. 수년간 찾아 헤매던 '지역에서 창업자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공주 원도심 창업자들의 서사는 독특하고 재미있다. 이미 4년 반 전에 인터뷰 기획을 시도했으나 복잡한 서사를 쉽게 풀어낼 수 없어 수년간 만남과 인연을 이어오기만 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공주 원도심에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와 삶을 꾸려가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펼쳐내려고 한다. <기자말>

[윤준식 기자]

충남 공주 원도심 창업자들과의 첫 만남은 '서로맑음 스튜디오'의 이상준(29) 대표다. 두 번째 인터뷰로 만나게 될 황순형 사장이 운영하는 '반죽동247'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처음 물었던 질문은 "왜 자신의 닉네임을 '공주쥐'라 하는지"였다. 이 대표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봤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내가 뭐 닮았냐'고 물어봤는데, 나온 대답 중 가장 그리기 쉬운 게 '쥐'였어요. 힘 빼고 그리고 싶었거든요."

공주시 의당면에서 태어난 이상준 대표는 한동안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대표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대표
ⓒ 매거진S
디자이너에서 개발자로, 알파고가 바꾼 인생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이상준 대표는 중간에 개발자의 길을 선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기는 '알파고 쇼크'였다. 2016년 디자인학과를 다니다 휴학하고 군 복무 중이던 시절,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세간의 화제였다. 이세돌 9단이 한 차례 승기를 거두기는 했지만, 나머지 대국에선 전패했다. 이 소식은 이상준 대표에게 위기감으로 다가왔고, 그의 인생을 바꿨다.

"훈련소에 들어갈 당시에는 이세돌 9단이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근무지 배치를 받고 소식을 들어 보니, 알파고에게 네 번이나 진 거예요. 그때 '이런저런 것들이 인공지능에 대체되겠구나' 하는 위협을 느꼈죠. 전공인 디자인만으로는 부가가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코딩을 배울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역 후 복학하며 컴퓨터공학과 수업을 듣고,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익혔다. 디자인 전공자가 개발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나중에 그의 강점이 됐다.

대학 졸업 후 학교 선배의 소개로 서울의 한 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6개월 후 선배가 "우리 둘이 나가서 전문 개발사를 만들자"며 제안했고, 곧 창업한 웹 에이전시에 합류해 2년 반 동안 일했다.

2022년 즈음 3년 차가 되면서 변화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이직을 통해 연봉 상승을 꾀할 수 있는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3번째 회사에 들어간 지 3개월도 안 돼 회사가 사업을 정리했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퇴사하게 된 일뿐 아니라, 이상준 대표에게는 연이어 힘든 일들이 찾아왔다. 특히 중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닥뜨리며 허무주의가 찾아왔다.

"친구가 대학 졸업 후 자동차 디자이너로 취직했는데, 취직한 지 3개월 만에 자유로에서 졸음운전 트럭에 치여 죽었어요. 고등학교 이후로 못 보다가 그렇게 재회하게 됐는데... 도대체 서울에서 지내는 게 뭐가 좋은 건지, 왜 이렇게 다 허무한지 그런 생각만 들었어요."

그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테헤란로로 출퇴근하며 살아온 일상도 그를 지치게 했다.

"지하철 탈 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숨이 막혔어요. 게다가 서울에 있어도 인프라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어요. 쉬는 날 집에 박혀 게임이나 하는 정도였으니까, 그 인프라가 저한테 기쁨으로 온 적이 없었어요."

그때 공주에서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친구의 지인이 운영하는 예비 사회적기업에서 개발자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로컬에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저도 그런 일들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죠."

2023년 1월, 이상준 대표는 연봉을 크게 낮춘 채 공주로 내려왔다.

"연봉은 개의치 않았어요. 더 이상 사람 많은 데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거든요."
▲ 이상준 로컬창업기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대표는 자신의 SNS에서 자신의 로컬창업기를 웹툰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대표 SNS
서로맑음 스튜디오, 우연한 시작

공주의 회사도 재정난을 겪었다. 이 대표는 1년 만인 2024년 1월 퇴사하게 됐다. 실직급여를 신청하고 고민하던 중, 공주에서 열린 청년마을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여기서 만난 인연을 통해 홈페이지 제작 의뢰를 받게 됐다.

"경남 하동의 '다른파도'에서 자기네가 운영하는 '지리산 트레일 컨퍼런스' 홈페이지를 개발해줄 수 있냐고 문의해 왔어요. 경주의 청년마을을 운영하는 '마카모디'도 소개해주셨는데, 마카모디가 맡은 '울산 워케이션센터' 홈페이지까지 두 건을 동시에 의뢰받게 됐어요."

이 대표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에 주저하지 않았다. 서울 생활 중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이 있었고, 무엇보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직급여에 미련을 두지 않고, 본격적인 1인 기업 '서로맑음 스튜디오'를 시작했다. 이후 공주의 다른 창작자들이 하나둘 합류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서로맑음 스튜디오라는 이름은 그의 이름 한자에서 따왔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 '상준'이가 세 명이나 있었다. 자신만의 특별함을 원했던 그는 엄마에게 자신의 이름이 지닌 의미를 물어봤다.

"어머니가 '서로 상(相)'자에 '맑을 준'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서로맑음'이라는 닉네임으로 포트폴리오를 올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맑을 준'이라는 한자는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어머니의 착각에서 나온 해프닝이었지만, 어디에도 없는 특별하고 좋은 느낌의 업체명이 탄생했다. 다행히 첫 프로젝트인 지리산 트레일 컨퍼런스 홈페이지는 큰 성과를 거뒀다.

"원래 목표한 모집인원이 100명 정도이었는데 3000명 넘게 찾아왔대요. 홈페이지의 기능성과 효과적인 홍보 덕분에 오히려 참가자가 너무 많아 운영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서로맑음 스튜디오의 세일즈 포인트를 디자인과 개발을 동시에 한다는 올인원 서비스로 판단할 수 있지만, 그의 일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것과 다른 휴머니티, 의뢰인을 대하는 태도가 핵심이 되고 있다. 프로젝트 의뢰인을 대하는 업무 철학은 서울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경험한 첫 외주 작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맡았던 것은 한 마을 예술창작소의 홈페이지 제작이었다.

"당시 담당자로 60대 여성분이 오셨는데, 홈페이지에 대한 이해도가 하나도 없으셨어요.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설명드렸죠.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운영할 방법도 알고 계셔야 하고, 나중에 다른 업체에 맡기더라도 관련 지식을 갖고 계셔야 한다고요."

힘들었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후 그분이 남긴 한마디가 그의 업무 태도를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나를 바보 취급 안 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제까지 다른 개발자들한테는 '이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당했다면서요. 그때 지금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향 공주에서 서로맑음 스튜디오를 시작한 이상준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 밀착형 서비스도 시작했다.

"지역 고객들은 밀착 소통을 원해요. 중간중간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시거든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해나가면서 경남 하동, 전북 김제, 충남 아산 등 고객이 있는 지역을 직접 방문합니다."
서로맑음스튜디오 로컬창업기
ⓒ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삶의 균형을 찾아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인구 10만 수준의 공주에서 IT 개발 수요는 제한적이다.

"공주의 정보통신업 사업자는 사업자 전체의 2% 정도뿐인데, 그마저도 장비나 설비 유지보수 업체가 대부분이에요."

실제로 그의 매출은 공주 외 지역이 80%, 공주 내에서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건수로만 보면 공주가 많아요. 그러나 공주 외 지역에서 들어오는 일은 매출 규모가 크고, 공주는 건수만 많고 매출은 적어요. 이 균형을 맞추는 게 현재 저에게 주어진 과제예요."

이 때문에 공주 내 수요 창출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레퍼런스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피어나다'라는 청년 예술인 공연에서 포스터 디자인을 맡았는데, 시범적으로 홈페이지도 만들어 홍보했어요. 이런 걸 보여드리니 '이런 것도 있구나', '이렇게도 가능하구나'를 알게 해드리고 있어요. 때가 되면 긍정적인 효과로 돌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서울과 같은 큰 시장성은 없지만, 로컬에서의 창업은 삶의 균형을 고려할 수 있어 만족할 수 있다.
ⓒ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2024년 12월, 이상준 대표는 공주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했다. 아내도 사진작가로, 부부 모두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나름의 워라밸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내는 주로 주말에 행사 촬영을 하고, 저는 주중에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정리해 주말에서 주초에 개발 업무가 집중돼요. 덕분에 수요일~목요일 정도는 함께 쉴 수 있고, 평일이라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 강아지 산책도 하기에 편하죠. 이런 삶이 좋은 것 같아요."

물론 경제적 불안감이 없지는 않다.

"올해는 계약이 없어서 매출이 많이 줄었어요. 다시 서울이나 대전으로 가야 하나 고민도 했어요."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최근 읽었던 일본의 작은 창업 관련 서적들에서 힌트를 얻었다.

"좋은 생활을 만들고, 그 생활에서 남는 잉여를 파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저희 스튜디오 크루들도 그런 얘기를 해요. 큰 계약보다는 우리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지, 좋은 삶을 살고 그 안에서 잉여를 남기자고요."

매출 목표도 과감히 없앴다.

"무분별한 확장을 하다가 망한 에이전시들의 사례를 알거든요. 저 또한 더 큰 계약에 오는 스트레스를 알다 보니 이제는 삶의 질을 우선합니다."

공주쥐가 그려내는 미래

인터뷰를 마칠 즈음 이상준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공주의 유일한 개발자로 알고 있는데, 제발 다른 개발자들이 있으면 연락을 줬으면 좋겠어요. 한데 모였으면 좋겠거든요."

공주시청년센터 2층 비즈니스 공간에서 혼자 작업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가능성도 보았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그가 그린 '공주쥐' 캐릭터처럼 영리하고 재빠르게, 지방에서도 청년이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그려지길 말이다.
 자칭 공주쥐로 자신을 표현하는 공주 IT창업자의 이야기는 매우 솔직담백했다. 동료를 찾는 그의 모습에서 청년이 지역에서 먹고 사는 방법이 충분히 존재함을 기대할 수 있었다.
ⓒ 서로맑음스튜디오 이상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잡지 < 매거진S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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