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간호사의 손 본뜬 동판, 왜 온기가 느껴지냐면

오창환 2025. 11. 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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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스케쳐스 오픈 채팅창에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진행되는 어반 스케치 볼런 투어 모집 공지가 올라왔다. '볼런 투어(Volun-tour)'란 자원봉사(Volunteer)와 여행(Tour)의 합성어로, 봉사 활동과 여행을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행사는 소록도에서 어반스케치 활동과 봉사 활동을 함께하는 일정이었다.

스케치를 마친 뒤에는 모두 함께 소록도 해변으로 가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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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소록도 사랑... 고흥군 - 어반스케치 '볼런투어' 참가기

[오창환 기자]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을 그렸다. 집앞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집을 보호하는 것 같았다.
ⓒ 오창환
어반 스케쳐스 오픈 채팅창에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진행되는 어반 스케치 볼런 투어 모집 공지가 올라왔다. '볼런 투어(Volun-tour)'란 자원봉사(Volunteer)와 여행(Tour)의 합성어로, 봉사 활동과 여행을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진행되는 일정이었다. 행사는 소록도에서 어반스케치 활동과 봉사 활동을 함께하는 일정이었다. '소록도에서 스케치를 한다'는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주저하지 않고 늦은 밤에 바로 신청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이미 모집 정원 60명이 모두 마감되었다.

가을 빛 따라 순천에서 고흥으로

10월의 마지막 날, KTX를 타고 순천역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전형적인 가을 햇살이 내려앉은 순천은 눈부시게 맑고 따뜻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어반 스케쳐들이 역 앞 광장에 모였다.

순천역 앞 풍경을 한 장 그린 뒤 전세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 반을 달려 고흥군 녹동항에 도착했다. 숙소이자 활동 장소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관'과 '나눔 연수원'은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언덕 위에 있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로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20대의 나이에 소록도에 와서 평생을 보냈다. 마리안느는 1962년부터 43년간, 마가렛은 1966년부터 39년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관'은 그분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곳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전체 일정과 숙소 배정, 스케치 계획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졌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분의 이야기를 떠올리니, 이곳에서 나눔과 봉사를 주제로 한 행사를 여는 이유가 절로 이해되었다. 고흥군은 앞으로도 이런 의미 있는 투어 프로그램을 꾸준히 추진 한다고 한다. 나 역시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이 땅의 역사와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소록도, 아름다움 속에 깃든 슬픔
 중앙공원 안에 있는 소박한 조형물들.
ⓒ 오창환
60여 명의 스케쳐들이 네 팀으로 나뉘어 소록도로 향했다. 섬은 아름다웠다. 긴 세월의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눈앞의 풍경은 그 모든 슬픔을 잠시 잊게 할 만큼 평화로웠다. 먼저 소록도 박물관을 둘러본 뒤 중앙공원으로 이동했다. 오래된 공원이지만 정갈하고 싱그러운 기운이 가득했다.
남도의 따스한 기후 덕분에 난대성 수목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곳곳에는 소록도의 역사와 사람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전문 예술가의 작품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만든 작품이 많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산도 기술도 부족한 시대에 고마움을 전하려는 마음이 그런 조형물을 탄생하게 한 듯하다. 단순하고 직설적이지만, 그 시대의 진심이 느껴졌다.
 구라탑을 그렸다. 탑 아래에 새겨진 '한센병은 낫는다'는 구호는 외마디 비명처럼 들린다.
ⓒ 오창환
공원 한가운데에는 '구라탑'이 서 있다. 처음에는 농담 같은 이름이라 웃었지만, '구원할 구(救)'에 '나병 나(癩)'를 쓴 탑이었다. 1960년대 한센병으로부터 완치된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었고, 이를 지원하러 온 남녀 대학생 133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설계는 당시 소록도 병원장이었던 조창원 원장이 맡았으며, 미카엘 대천사가 악마를 무찌르는 장면을 본떴다. 탑 아래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직설적인 동상이지만 그만큼 간절한 외침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그 탑 앞에서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면서 아름다운 공원 뒤에 숨겨진 한센인들의 고통과 희망을 생각했다. 스케치를 마친 뒤에는 모두 함께 소록도 해변으로 가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했다. 인적 없는 해변이었지만, 바다로 밀려온 쓰레기가 제법 많았다. 저녁에는 함께 모여 그날의 그림을 공유했다. 각자의 시선으로 담은 소록도의 풍경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따뜻함이 있었다.
 소록도 해변에서 쓰레기 줍기 활동을 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 고흥군볼런투어운영진
이튿날 아침, 숙소 창문 너머로 소록대교와 남해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연수원의 숙소는 깔끔하고 조용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햇살이 유리창을 스며들었다.

얼른 일어나 연수원 뒷산에 있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 공원에 올랐다. 공원 정상에는 오스트리아 성당의 지붕을 본뜬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항구와 소록도의 풍경은 그저 평화로웠다.

이날도 네 팀으로 스케치 팀을 나누었는데, 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 드로잉 팀에 참여했다. 소록도는 여전히 일부 구역이 통제되어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은 한센인 생활 구역에 있어서 단 네 명의 스케쳐가 그곳을 찾았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 내외부 전경. 두 분의 소박한 삶을 보여준다.
ⓒ 오창환
이 집은 1962년에 지어져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분이 40년 넘게 생활한 공간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소박한 소파와 가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외관은 단정한 서양식 벽돌집이었지만, 내부는 일본식 구조로 복도가 중앙에 있고 양쪽에 방이 배치되는 절충식 양식으로 지어져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집 앞에는 수백 년은 되었을 법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는 마치 수호자처럼 집을 감싸 안고 있는 듯이 보여서 나는 그 나무와 집을 함께 스케치했다. 이때 그린 그림을 고흥군에 기증하였는데, 나의 그림이 끝 모를 헌신을 기리는 작은 예술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천사의 손을 보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기념관 안의 전시장을 돌아봤다.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초상 아래에는 두 사람의 손을 본떠 만든 부조가 놓여 있었다. 한센인들을 어루만진 두 분의 손을 보니 차가운 동판 아래에서 전해오는 온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나눔과 봉사'였다. 첫날 오후 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 시간이 있었지만, 조금 더 긴 시간이 주어졌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앞으로는 고흥의 역사와 소록도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해지면 좋겠다.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이 깃든 섬에서, 그림을 통해 그 마음을 되새긴 시간. 더할 수 없이 맑은 날씨에 더할 수 없이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이 감사했다.
 마리안느와 마라렛의 손부조. 보는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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