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름을 불러 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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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숙 기자]
반가운 아침입니다. 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될까요? 기대하는 마음으로 눈을 떴습니다. 머리맡에 둔 전화기를 켜고 들여다봅니다. '새날 새 아침'으로 시작하는 소식이 들어와 있네요. '학교 가는 아이를 배웅하느라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가 "아휴, 추워"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추워서 얼른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새벽에 나가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따듯하게 입고, 든든하게 드셨길 비는 마음입니다.' <강화포도책방>의 책방지기 님이 회원들에게 보낸 안부 인사입니다. 매일 아침을 따뜻하게 열어주셔서 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날 새 아침', 오늘의 시작
오늘도 내 발걸음은 책방으로 향합니다. 강화 읍내에 있는 그 책방까지 가자면 승용차를 타고 가도 20분은 걸립니다. 16킬로미터 정도 거리이니 옛날 식으로 하면 40리 길입니다. 그런데도 멀다 생각하지 않고 찾아가는 것은 그곳에 내가 만든 책방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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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주인인 '강화포도책방' |
| ⓒ 이승숙 |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책방을 열었습니다. 다섯 살 유치원생도 책방 주인입니다.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도 자기만의 책방을 가졌습니다. 청년과 장년은 물론이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들도 계십니다. 대부분 강화도 사람이지만 인근 도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서울, 인천, 일산, 김포에 사는 분들도 있고 경기도 용인과 광교, 그리고 오산 등지에서 온 분도 있습니다. 심지어 전라도 목포 사는 분도 입점 했습니다. '포도책방'의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매료 시켰을까요? 그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방에 놀러 갑니다.
모두가 주인인 '강화포도책방'
각각의 책장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책방 주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이 책방을 열었는지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서가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봅니다. 일상 속 틈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가보자는 뜻을 지닌 '틈새서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공존책방'도 있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세하책방'이 말해주네요. 그 곁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평화 나눔'이라는 이름의 책방도 있습니다.
수학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방도 보입니다. '김샘과 최박사'란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책방은 수학 선생님과 카이스트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제자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뜻을 모아 사람들을 수학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배움과 나눔 책방'도 있습니다. 배운 것을 아낌없이 나누겠다는 마음을 가진 그 분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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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겨운 사람들과 반갑게 만나 이야기도 나누는 강화포도책방. |
| ⓒ 이승숙 |
책방지기에게 물어 봤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하지 뭡니까. 제 딸의 책방이라고 했습니다. 딸에게 포도책방에 입점 하라고 권했지만 책방 이름을 지은 줄도 몰랐습니다. 더구나 '필남'은 제 어머니 이름입니다. 설마 제 딸이 외할머니 이름으로 책방 이름을 지었을까요?
"그 책방, 따님 책방이에요. 외할머니 이름으로 책방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순간 울컥하며 제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필남책방'이란 이름의 책방
'필남'은 제 어머니 이름입니다. 오래 전에 돌아 가셔서 저도 잊고 있었던 어머니를 제 딸이 불러 주었습니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필남책방'을 다시 봤습니다. '내 미토콘드리아의 기원, 내 엄마와 엄마의 엄마, 그 위의 엄마들을 생각하며, 세상의 모든 딸들을 생각하며'라는 문구가 책방 이름 밑에 적혀 있었습니다. 아, 딸의 마음이 전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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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달성공원으로 나들이를 가신, 젊은 날의 부모님. |
| ⓒ 이승숙 |
갓 태어난 외손녀를 보며 어머니는 연신 신기해 했습니다.
"갓난 애가 우째 이래 똑똑할꼬? 머리숱도 새까맣게 많고 다리에 힘도 빠닥빠닥 들어있고, 눈도 새까만 게 정말 똑똑하네."
어머니는 연신 감탄했습니다. 사위를 앞세우고 시장에 가서 아기 이불도 사오셨습니다. 부드러운 촉감에 귀여운 동물들이 그려져 있던 그 이불을 외손녀에게 가만히 덮어 주었습니다.
이름 없는 존재였던 우리의 어머니들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라면 저에게 들은 게 전부인 제 딸입니다.외할머니를 뵌 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얼굴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찌 외할머니 이름을 알겠습니까. 그런 제 딸이 외할머니의 이름으로 책방 이름을 지었습니다. 저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딸의 마음을 헤아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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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남책방', 너무나 고마운 이름 |
| ⓒ 임영미 |
어머니에게도 이름이 있었지만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종조모님은 제 어머니를 '질부'라고 불렀고 숙부님은 '형수님', 숙모님은 '형님' 하며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제 어머니는 '이살댁'이었고 아이들은 '이살 아지매' 하며 불렀습니다. 외갓집에 가면 어머니는 또 다르게 불렸습니다. 큰 외삼촌과 외숙모님은 '이실이'라고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이씨(李氏) 가문으로 시집을 갔으니 어머니를 '이실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외할머니 이름을 불러 드리고 싶었어요
모두 다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었지만 어머니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결혼과 함께 어머니는 이름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필남'은 잊혀지고 우리에겐 '엄마'로만 남았습니다.
"외할머니 이름을 불러 드리고 싶었어요. 외할머니가 지금 세상을 사신다면 책 읽는 것 좋아하고, 우리처럼 즐겁게 사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남책방'으로 이름을 지은 까닭을 묻는 내 말에 딸은 그렇게 답했습니다. 잊혀진 외할머니를 이름으로 나마 되살리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이야기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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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고르는 두 학생의 뒷모습이 예쁩니다. |
| ⓒ 임영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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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과 함께 하면 이야기가 마르지 않습니다. |
| ⓒ 임영미 |
어머니를 떠올려 봅니다.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어머니는 어깨 너머로 국문을 깨우쳤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문자를 익혔지만 책을 읽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늘 일에 치여 사셨으니, 언제 한가하게 책을 붙들고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글을 읽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습니다.
농사 지으랴, 집안 일 하랴 바빴던 어머니는 저녁 상을 물린 뒤에도 쉬지 못했습니다. 일감을 안고 와서 호롱불 심지를 돋우고 일을 했습니다. 바느질도 했고 콩을 고르기도 했습니다. 그 곁에서 우리는 숙제도 하고 국어 책도 읽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어머니는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셨습니다.
가만히 소리 내어 '필남책방'을 불러 봅니다. 마음 속에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다정한 음성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책 좀 읽어 도고. 책 읽는 소리 듣고 싶다"고 하셨던 어머니가 제 곁에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제 딸이 저에게 어머니를 불러 주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화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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