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 다 쏟아내듯, 강원도 숲길에서 만난 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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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중순 경 갔을 때는 발목 위로 차오른 눈 때문에 생고생을 했다. 그 숲길의 평균 고도가 900미터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아마도 일주일 후면 숲길의 색감은 사람의 눈길도 받지 못하며 추레 하게 변할 곳이고, 일주일이 더 지나면 마지막 1년의 생을 접고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임도 숲길에서 이런 비경을 보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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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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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어가는 길 |
| ⓒ 안호용 |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슬비였다. 10월 들어 가을 장마처럼 거의 매일 비가 오락가락하다가 아침부터 비가 그쳤는데 생각지도 않은 보슬보슬한 빗방울이 흩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지대여서 구름이 아직 걷히지 않은 상태였는지 모른다. 아무튼 트레킹이 편치 않을 것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비에 푹 젖은 가을 풍경
배낭과 행색을 추스른 나는 숲길로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설렘보다 담담함이 앞섰다. 지난 3월에는 초입부터 눈길이 펼쳐졌는데 지금은 갈변하는 녹색길로 대체되어 있었다. 차가운 냉기가 감돌았던 지난번이었다면 오늘은 비에 푹 젖은 가을 풍경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이 잠시 겹치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과거의 기억은 멀리 사라졌다. 완연하게 익어가는 가을 속으로 빠져들었다. 숲길은 투박했다. 녹음은 시들어가고 이미 황갈색 낙엽을 뿌려 대는 나무들이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아마도 일주일 후면 숲길의 색감은 사람의 눈길도 받지 못하며 추레 하게 변할 곳이고, 일주일이 더 지나면 마지막 1년의 생을 접고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관심에서 벗어난 숲길을 나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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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림지 |
| ⓒ 안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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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러진 나무 |
| ⓒ 안호용 |
이제 숨 막힐 것 같은 숲길이 계속 이어졌다. 몇 년째 한 번도 깎지 않았을 것 같은 웃자란 갈변 수풀이 수북하게 길을 완전히 덮고 있었고 갈색으로 물든 싸리나무 가지가 팔등을 계속 스쳤다. 때로는 보잘것없는 풍경 사이로 진한 연지를 바른 것처럼 새빨갛게 물든 앙증맞은 이파리들이 나를 유혹했다. 손으로 잡히지 않는 높이에서 농염한 눈빛을 준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홍일점 같은 단풍은 발걸음이 무거워질 만하면 내 앞에 나타났다.
얼마쯤 갔을까, 아마도 3시간 이상 걸은 것 같다. 다시 이슬방울이 안경에 맺혔다. 안경을 닦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이슬은 체온으로 마를 수 있지만 수풀은 다시 젖어 마를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등산화와 바지 밑단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스틱으로 발을 덮는 수풀의 이슬을 털어내며 앞으로 걸었다. 우거진 수풀에서는 굵은 물방울이 튀었다. 오래된 등산화의 방수층은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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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개지 |
| ⓒ 안호용 |
날씨가 좋았다면 잠시 그 풍경과 함께 했겠지만, 아쉽게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계곡을 빠져나온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걸었다. 그리고 곧이어 옛 문재 마루가 나를 반겼다. 이제 임도 구간이 끝난 것이다.
문재는 조선시대에는 독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시엔 중요한 관로로, 서울과 관동을 잇는 지방도로였다. 지금은 발 아래에 문재터널을 뚫고 인천에서 동해까지 연결한 국도 42호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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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 명품 숲길 |
| ⓒ 안호용 |
나는 지친 몸을 다독이며 여유롭게 문재를 걸어 상안리로 내려갔다. 가을 풍경 속에 잠겨 있는 마을을 지나 횡성으로 가는 버스 종점에 도착했다. 버스 올 시간이 많이 남았다. 먼산바라기로 텅 빈 정류장 박스를 지키고 있었다. 건너편 능선에 내가 지나온 문재길이 숲에 가려 희미하게 보였다. 자동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모든 게 적요에 쌓여 있었다.
19킬로미터에 이르는 지나온 긴 여정이 잠깐 기억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지난 시간은 그렇게 사라지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길게 이어질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시간은 넘쳐 나고 수많은 곡절이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집에 가기엔 아직도 멀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리듯 버스를 기다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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