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기관 내 인문학 교육, 수용자를 '건전한 시민'으로 만드는 법

길주희 2025. 9. 29. 16:0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화인문학 그리고 한국형 교도소 대학

[길주희]

교정기관 내부에서 무언가 기록하는 건 많은 제약이 따른다. 실무자로서 '교정기관 수용자를 위한 평화인문학'(아래 평화인문학)을 진행하기 위해 들어갈 때도 휴대전화를 포함한 전자기기(스마트 워치는 물론이고 이어폰까지)는 반드시 기관에 제출했다가 나갈 때 찾아야 한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온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녹음도 물론이다. 당연히 교정기관의 철저한 관리 방식은 존중하나 오로지 글로 남기는 기록뿐이니 한계가 있다. 그래도 교정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강의 사진 한두 장 정도는 남길 수 있다. 교정기관 담당자가 찍어서 전달하는 저화질이지만, 얻어내기 힘든 기록물이기에 더욱 값지다.

이렇게 어렵게 기록을 남겨도 그 기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크지 않다. '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을 알리고,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는 일은 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정기관에서의 경험을 공유하여, 인문학 교육이 당사자인 수용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어, 더 방대한 수용자 교육 프로그램을 이뤄내고자 한다. 단순히 소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년, 후년 그리고 10년 뒤까지 더 확장하여 자리 잡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그려내고 있다.

인권연대에서 2007년에 처음 시작한 수용자 대상 인문학 교육은 2025년 현재 다른 단체나 대학 등으로 확산·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평화인문학이 그러하듯 아직은 전국 55개 교정기관 중 일부 기관에서, 선별된 소수의 인원만이, 일정 기간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예전에는 그래도 여성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아주 일부는 있었는데, 2025년에는 그마저 이뤄내지 못했다.

올해는 남녀의 비율이 14대 1에서 15대 1 정도로 남성 수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교도소·구치소에서만 진행하게 되어, 여성 수용자들을 선별한 클래스를 꾸릴 수 없었다고 한다. 평화인문학을 하다 보면 실무적으로는 늘 아쉬움이 남지만, 올해가 조금 더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분명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십여 년 동안 평화인문학 과정을 마칠 때마다 수강생(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 조사를 진행했더니 이제는 양이 제법 된다. 인문학이기에 답변은 주관식이 많은데, 올해 답변 일부는 인권연대의 월간 소식지를 통해 소개했으니, 이번에는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참고: 인권연대 홈페이지 '평화인문학, 그 쓸모에 대하여).

수강생들의 답변을 살펴보다 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나온다. 대개는 '기존에 배우지 못했던, 혹은 관심이 전혀 없던 인문학과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와 타인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달라지겠다', '범죄를 저지른 과거를 반성하며,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달라지겠다'라는 내용이다. 심지어 강의가 끝나고 강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얻어낸 긍정적인 생각을 공유해 주기도 했다. 수강생들이 촉박한 시간 안에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려 애쓰며 쓴 문장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말 그대로 인문학의 '쓸모'를 찾을 수 있다.
▲ 2025 평화인문학 과정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오창익 사무국장 강의에 집중한 구치소 수강생들
ⓒ 인권연대, 인권평화연구원
그런데 이 '변하기'를 넘어서는,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고등 교육이 교정기관 안에서 이뤄질 순 없을까. 실제로 전문성을 쌓고,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고등 교육, '회개'나 '참회'와 직접 닿아있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는 지식 습득의 장. 이런 교육 기관이 교도소나 구치소 안에 생겨난다면 어떨까. 종교 사업이나 고등 직업교육, 저소득층과 노숙자 등을 위한 교육 등 다른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닌, 오로지 교정기관 수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독자적인 기관 말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다양한 반대 의견과 걱정, 비난이 따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일리 있는 생각이므로 이 의견 역시 통합하여 잘 다듬어진 교육 기관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는 없는 새로운 교육 모델로 평화인문학이 '진화'하기 위해, 또 예측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먼저 교도소 대학을 설립한 타국의 경험을 살펴보고자 했다.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는 현장 경험을 우선했더니 <교도소 대학-가장 낮은 곳에서 교양은 사람을 어떻게 높이는가>(아래 <교도소 대학>)이라는 책을 찾을 수 있었다.

<교도소 대학>은 뉴욕에서 바드교도소사업단이 처음 시도하고 가장 널리 보급한 교도소 대학 설립 작업을 두루 돌아본 기록이다. 저자 대니얼 카포위츠는 무려 20여 년을 교도소 대학 설립과 교육에 몰두했고, 그곳에서 교수로 일하며 많은 졸업생을 배출해 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검정고시로 자격을 갖춘 수용자 중 논술형 테스트와 면접을 통해 입학하고, 교수에게 배워서 졸업한 사람만이 학위를 얻는 진정한 고등 교육 기관이었다.

저자는 "교도소 안에서 대학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비용이 크게 들지 않고 국가 재정에 미치는 유익은 크다"라고 서술한다. 교도소에서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출소하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오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를 적절한 데이터와 미국의 정책 변화를 함께 제시하며 "수감 중 대학에 다닌 사람이 재입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재범률 저감과 대학의 관련성이 꾸준히 확인되었기 때문에, 고등 교육은 미국에서 적정 비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교정 '사업'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라고 한다. 교도소 대학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택된 사례를 보여주면, 왜 '악한' 사람들을 교육하느냐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답변이 되리라 생각한다.

곱지 않은 시선을 경제적 효과로 설득해 내더라도 이번엔 실무적인 문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이 역시 지난하게, 그러나 꼼꼼하게 고민하고 협의해야 할 숙제다.

다만 먼저 생각해 볼 것은 경제력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의 의식과 교육 수준 모두 이만큼의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단순히 '벌주는' 시설을 탈피하고, 현실적으로 재사회화를 도울 기관을 설립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지점이다. 혐오시설로 분리되는 교정기관 안에,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을 가두어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우리 사회 문제가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너무 힘들거나 싫은, 혹은 피하고 싶은 '문제'는 눈에 띄지 않게 치우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살인 및 강력 범죄를 저지른 자들 빼고는 이들 모두 언젠가 우리 사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교정시설 안에 있을 때 고등 교육을 통해 의식적으로, 기술적으로 충분히 성장하여 다시 범죄에 빠져들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서 재범률을 줄여나가야 한다.

효과가 확실하다면 더더욱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나라에 사람을 가두어 벌주는 국가 시설이 늘어야 할 이유도 없다. 수용자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복귀했을 때, 자신은 물론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구성원으로 함께한다면 당연히 그것이 우리 사회에 훨씬 득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핀란드 바나야 교도소장의 "우리의 목표는 모범적인 수감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건전한 시민을 만드는 것"(노무라 도시아키의 저서 <교도소 정신과 의사>)이라는 신념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길주희 칼럼니스트는 현재 인권연대 간사로 활동 중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