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화’되는 러닝 트렌드…고가 러닝화 ‘계급도’ 등장 [스페셜리포트]
‘럭셔리화’되는 러닝 트렌드
고가 러닝화 인기…‘계급도’ 눈길
역사적으로 러닝은 불황에 주목받았다. 1970년대 미국을 강타한 ‘러닝 붐’만 봐도 그렇다. 제1차 석유 파동과 인플레이션이 겹친 1970년대 초반은 미국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불황기였다. 골프나 테니스 등 기존 운동과 달리 비용 부담이 적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러닝 붐 주요인이었다.
국내 러닝 붐이 본격 시작된 2023년 무렵도 1970년대 미국과 닮은 부분이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골프와 테니스 인기는 자연스레 식었고 러닝이 이를 대체했다.
하지만 최근 러닝 트렌드는 사뭇 달라졌다. 이제는 가성비 운동이라고 부르기 민망해졌다. 대표적인 ‘돈 안 드는 운동’에서 ‘럭셔리 스포츠’로 변모해가는 중이다.
2023년 초 러닝 아이템 주요 마케팅 키워드는 ‘중·저가’였고 고가의 ‘고성능 러닝화’는 일부 마니아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다. 한강이나 공원 정도만 달리는 데일리 러너도 고성능 러닝화를 신는다. 신발에 탄성이 좋은 카본플레이트(탄소판)를 넣은 ‘카본화’, 질소를 주입해 만든 ‘질소 충전화’, 고가 소재인 고어텍스를 넣은 러닝화 등이 인기를 끈다. 발매가만 수십만원이 넘는 모델에도 품귀 현상이 생길 정도다. 오죽하면 일부 모델은 리셀(비싼 값에 되파는 거래) 시장에서 발매 가격의 2~4배 수준 가격에 거래된다. 여의도에서 직장인 러닝 크루를 운영하는 최정훈 씨는 “컬래버 모델이 늘며 가격이 뛴 것도 있고, 색상에 따라 리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8월 13일 아식스 공식 홈페이지는 동시 접속자 급증으로 웹사이트가 마비됐다. 신규 발매된 아식스 간판 러닝화 ‘노바블라스트 5’ 추가 색상을 구매하려는 이들이 몰리면서다. 해당 웹사이트엔 한때 대기자 수가 3만2000명이 넘어 접속까지 3시간이 걸린다는 안내도 이어졌다. 아식스뿐 아니라 주요 러닝화 브랜드 대부분에서 이 같은 ‘오픈런’ 현상이 벌어진다.
이른바 ‘장비빨’을 추구하는 현상이 러닝에도 등장한 요인 중 하나는 ‘급 나누기’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선 러닝과 관련한 온갖 계급도가 공유된다. 과거 자주 회자됐던 ‘명품 브랜드 계급도’나 ‘부동산 급지표’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러닝 기록 계급도’의 경우 10㎞를 몇 분에 뛰는지에 따라 등급을 분류한다. 남성 기준 37분 이하면 1등급이고 38~43분은 2등급 등이다. 시간 단축을 위한 ‘러닝 아이템 계급도’도 있다. 신발 리뷰 사이트 ‘런리핏’ 평점과 실제 후기 등을 토대로 작성된 도표인데, 용도에 따라 데일리·슈퍼 트레이너·레이싱으로 분류된 게 특징이다.
보통 높은 등급일수록 비싼 아이템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러닝화 계급도에서 레이싱(장거리용)으로 구분된 온러닝의 ‘클라우드 붐 스트라이크 라이트 스프레이’는 발매가만 40만원 수준이다. 이마저도 구하기 힘들어 리셀 시장에서만 구매 가능하다. 화이트 라임 색상은 60만원대에 거래 중이다. 퇴근 후 러닝을 즐기는 직장인 김병현 씨(27)는 “사실 전문 선수가 아니여서 장거리용 제품은 필요가 없는데, 기록을 향상하고 싶다는 마음에 일단 사고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러닝코어’ 인기도 러닝 아이템 몸값을 키운 요인이다. 최근 패션 업계를 주도하는 트렌드는 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표 사례가 팬데믹 기간 등산 인기가 커지면서 등장했던 ‘고프코어’ 붐이다. 등산을 기반으로 한 패션을 뜻하는 신조어로 아크테릭스와 살로몬 같은 고프코어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 여성 풋살 등이 주목받으며 ‘블록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축구·럭비 유니폼 등을 일상복으로 입는 패션이다.
이를 이어받은 게 러닝코어다. 러닝화뿐 아니라 러닝 관련 의류 등이 일상복으로 주목받고 있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최근 패션 시장에서 주목받는 온러닝과 새티스파이, 호카오네오네, 디스트릭트 비전 등은 모두 러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브랜드”라며 “단순 러닝 수요뿐 아니라 패션 수요까지 동시에 늘며 러닝복과 러닝화 전반에 가격 상승이 발생 중”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6호 (2025.09.10~09.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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