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돈, 다 가질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랑법

김건의 2025. 8. 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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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머터리얼리스트>

[김건의 기자]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셀린 송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표면적으로는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삼은 전형적인 삼각관계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취한다. 그 내부에는 신자유주의 시대 사랑이 어떻게 상품의 영역으로 넘어갔는지 설명하며 이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적 시선을 담는다.

영화는 단순히 현실적인 조건과 사랑 사이의 선택을 다루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관계까지 시장의 논리로 환원되는 현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사랑은 계량화될 수 있는가? 이런 욕망 자체가 현대인이 직면한 실존적 딜레마의 핵심은 아닐까?

뉴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머티리얼리스트> 스틸
ⓒ 소니픽처스코리아
<머티리얼리스트>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전통적 플롯을 답습하는 동시에 이를 전복하는 이중 전략을 취한다. 전통적인 어퍼클래스 로맨스의 계보를 계승하면서 그 계급적 환상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셀린 송 감독은 전작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보여준 것처럼 삶의 우연성과 대화로 만들어내는 언어적 미장센을 현실에 맞게 변용한다. 이번 영화도 그렇다. 동시에 셀린 송 감독은 영화 내부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심리적 갈등의 문제가 사실은 구조적 차원에 있음을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영화 속 루시(다코타 존슨)의 고민은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데올로기적 모순의 표출에 가깝기 때문이다.

루시는 대도시 사람들의 외로움을 데이트 매칭을 시켜주는 매치메이커다. 실제로 해당 업무를 겪어본 셀린 송 감독은 매치메이커의 모순점을 능청스럽게 건드린다. 표면적으로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사랑의 완전한 상품화 과정을 폭로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 자체에 대한 메타비평을 수행한다.

매치메이커의 업무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스펙으로 계량화하고 이를 시장 논리에 따라 배치한다. '키 6피트, 연봉 8만 달러, BMI 20 이하' 같은 구체적 수치들은 인간 존재를 데이터로 환원하는 자본주의 사회다운 판단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가 오랫동안 사용한 캐스팅 공식이기도 하다. 키 크고 잘생긴 남성,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 완벽한 외모와 조건까지. 이는 기존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를 향한 노골적인 풍자와 패러디에 가깝다.

흥미로운 지점은 루시가 다른 사람들의 로맨스는 성공적으로 매칭시키며 정작 자신의 사랑은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공식과 같은 해결 방안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감독은 루시라는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완벽한 로맨스들이 과연 현실적인지, 그리고 그런 환상을 만들어내는 산업 자체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지 등이다.

감독 스스로가 실제로 뉴욕의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설정은 이제는 대도시 여성 드라마의 대표 격인 HBO의 <섹스 앤 더 시티>같은 뉴욕 로맨스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기도 하다. <섹스 앤 더 시티>가 보여준 자유롭고 화려한 맨해튼 싱글 라이프가 실제로는 어떤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 위에서 가능한지 매치메이킹이라는 직업을 통해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근본적인 모순에 빠진다. 영화에서 줄곧 겨냥하는 매력적인 볼거리, 맨해튼의 화려한 시티 라이프, 페드로 파스칼과 크리스 에반스라는 할리우드 스타 캐스팅이 영화 자체를 탐미적으로 소비하게 유도한다. 루시의 고객들이 추구하는 상류층 환상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 환상을 시각적 쾌락으로 제공한다. 이는 자본주의 비판 영화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이 필연적으로 견뎌야 할 모순에 가깝다.

루시의 모순
 <머티리얼리스트> 스틸.
ⓒ 소니픽처스 코리아
루시라는 캐릭터는 표면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공한 여성을 재현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뿌리내린 모순 또한 드러낸다. 루시는 경제적으로 자립했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남성들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설정의 해답을 전통적인 선택의 서사로 귀결한다.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성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추상적인 존재이긴 하다. 문제는 루시의 딜레마가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을 인지하면서 이 모순을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과 정서적 진정성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의미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향을 가리키지는 못한다. 적재적소에 전통 로맨틱 코미디를 풍자하고 이를 동력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러한 외피를 벗기고 나면 '나는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가'라는 인물 개인의 고민으로 그친다. 나아가 영화 후반부에서 루시가 내리는 선택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개인적 적응의 형태로 제시된다.

여기서 영화의 제목 '머티리얼리스트(속물들)'가 함의하는 물질주의 비판 또한 힘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을 다시 돌아보자.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물질주의에 포획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해리(페드로 파스칼)는 자신이 가진 스펙을 통해 결혼하려 하고, 존은 경제적으로 무능해 자책한다. 루시 또한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계산기로 두드려 본다. 가난하지만 진정성 있는 예술가 지망생 존, 부유하지만 공허한 금융맨 해리라는 이분법적 설정 또한 계급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재생산한다. 이러한 환상의 이면에는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이 자리한다. 더 잘 살고 싶지만 자신만의 진정한 사랑을 해내고 싶어하는 인물들은 줄곧 현대사회의 사랑이 품고 가야 할 모순을 기꺼이 품고 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영화 안에서만 존재하는 모순적인 캐릭터라서가 아니라 현실사회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머티리얼리스트>는 여러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지만 비판적 의도와 문제의식 자체는 충분히 의미 있다. 셀린 송 감독이 시도하는 건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자본주의 시대 연애의 연애 문화 구조적 문제를 더듬어 보는 일이었다. 이는 분명 다수가 공감하는 지점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의 환상을 완전히 거부하지도, 완전한 비관주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대신 영화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관습적 해결책에 대한 의심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서 종결되는 해결보다는 영화 바깥에서의 성찰로 연결되게끔 유도한다. 루시의 최종 선택이 완전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을 영화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포스트 로맨틱 시네마의 중요한 특징이다.

영화 후반부의 데이트 폭력 에피소드는 서사에 굴곡을 부여하기 위한 기능적인 요소로 그치고 계급 문제에 대한 다소 안일하면서 낭만적인 접근 같은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가 영화 전반의 의도를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는 대중을 타겟으로 삼는 장르 영화가 비판적 메시지를 담을 때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구조적 딜레마에 가깝다.

<머티리얼리스트>가 제기하는 핵심적 질문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가 아니라 '사랑이 가능한 조건은 무엇인가'다. 이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질문 자체를 대중적 맥락에서 제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영화는 완전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관습에 대한 의심과 질문을 해내야 한다. <머티리얼리스트>는 뻔하지만 현대인들의 폐부를 툭툭 찌른다. 감각적이다.
 <머티리얼리스트> 스틸
ⓒ 소니픽처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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