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지 않는' 가족영화, '좀비딸'이 증명했다
[고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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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좀비딸> |
| ⓒ 영화 <좀비딸> |
서울에서 원인 모를 이유로 좀비 떼가 창궐한다. 전국 댄스 경연대회를 준비하던 중학생 수아(최유리). 싱글대디 정환(조정석)은 아수라장이 된 서울에서 벗어나 딸과 함께 조용한 고향마을 은봉리로 도망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아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좀비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살을 명령하고, 좀비를 발견하고 신고하지 않거나 숨겨주는 경우 법적 처벌을 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한다.
다행히 수아는 동물조련사인 정환의 극진한 훈련으로 공격성이 많이 약화된다. 사람을 물어뜯는 대신 곱창으로 요기하고, 할머니 밤순(이정은)의 정성 어린 보살핌, 동시에 효자손을 앞세운 훈육 속에 샤워도 하며 청결을 유지하는 좀비 생활을 이어간다. 회색톤의 피부와 불거진 핏줄은 시골에서도 살 수 있는 로드샵 화장품으로 적당히 가리고, 뇌를 다쳐서 말과 행동이 둔하다는 설정이면 등교도 가능하다.
2018년에 시작해 2020년에 완결된 원작 웹툰이 어떻게 영화로 각색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나야 했던 코로나 시대가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었는지는 어림할 수 없다. 다만 감염자에 대한 일부 대중의 과한 공포와 강렬한 반감, 세계적 비상사태를 맞아 인원과 영업시간에 제한까지 두었던 정부의 강력한 대처, 증상 발현 시 지켜야 했던 까다로운 격리 수칙 등을 2년간 겪은 관객들이 <좀비딸>을 포스트 코로나 영화로 소비하고 해석하는 상황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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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좀비딸> |
| ⓒ 영화 <좀비딸> |
두드러지는 건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부산행>을 비롯해 <해운대>, <국제시장>까지 불가항력적인 시대의 폭력과 재난 앞에선 가족을 지키는 힘은 혈연을 바탕으로 한 부성/모성애였다. 알면서도 당하는 최루성 눈물에는 '신파'라는 평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좀비딸> 역시 예상하던 대로의 전개가 펼쳐진다. 조건반사처럼 흐르는 눈물을 참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다만 '신파'라고 불리는 감정까지 도달하는 경로가 앞선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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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좀비딸> |
| ⓒ 영화 <좀비딸> |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한 <판타스틱4>는 <좀비딸>과 같은 딜레마를 공유한다. 차이라면 <판타스틱4>의 주인공은 평범한 소시민이 아니라 전 세계의 군대를 해체시킬 정도의 영웅이며, 대중의 시선을 피해 외진 곳으로 숨어드는 게 아니라 넓은 광장에서 가족과 지구 모두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딜레마를 돌파한다. 이 영웅들의 숭고한 선언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정서적 클라이맥스로 설계됐지만 어쩐지 깊은 울림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판타스틱4>만의 문제일까. 공교롭게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개봉 시점은 코로나 직전이었다. 제임스 캐머런이 <아타바>, <타이타닉>으로 갖고 있던 역대 최고의 흥행을 뛰어넘은 후 확장된 MCU 세계관과 함께 승승장구할 거 같았지만 히어로 장르의 부진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겠지만 어쩌면 한 명, 소수의 영웅이 어쩔 수 없는 전염병 탓에 슈퍼히어로에 대한 기대가 전 지구 단위로 급격히 줄어든 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더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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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좀비딸> |
| ⓒ 영화 <좀비딸> |
소품으로 쓰일 것 같던 곡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영화 내에서 쓰이고 결정적 순간에도 재생되며 관객들에게 잊히지 않는 정서적 흔적을 남긴다. 'You still my No. 1'이 반복되는 후렴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정환, 상실의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밤순. 그리고 겉모습은 좀비로 변했지만, 깊은 곳에는 인간성을 간직했으리라 믿고 싶은 수아의 변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더없이 적합한 선곡으로 보인다.
문학교과서에 수록되어 해석이 덧붙여진 것처럼 'No.1'은 달을 모티브로 만든 가사를 썼다. 영화에서는 제대로 등장하지 않지만 <좀비딸>의 주제 의식을 담은 구절은 어쩌면 다음이 아닐까. 보름에 걸쳐 겉모습을 바꾸지만, 소리 없이 따라와 구름 뒤에서 못다 한 사랑을 전하는 달빛. 해가 진 밤에 모습을 드러내는 달이 모두의 어둠을 밝히는 No.1이듯.
변한 그를 욕하진 말아줘 니 얼굴도 조금씩 변하니까
But I miss you 널 잊을 수 있을까
(Want you back in my life, I want you back in my life)
나의 사랑도 지난 추억도 모두 다 사라져 가지만
태양으로부터 직사로 내리쬐는 햇빛이 아니라, 그런 햇빛을 한 차례 반사해야만 하는 달빛은 어쩐지 핏줄로 엮인 직계혈통과는 다른 유사가족과 닮아있다.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의지와 노력으로 결합하고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조건 없는 사랑. 이 단순한 진리를 놓치지 않는 가족영화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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