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적"과 맞선 8개월, 웃으며 헤어진 그들

박소희 2025. 7. 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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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자회의 마무리 집담회] 12월 출범 후 고비마다 목소리… "헌법 지켜준 국민들, 참 고맙다"

[박소희 기자]

 12.3 내란 사태 당시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을 알리기 위해 헌법학자 약 110명이 자발적으로 꾸린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가 28일 서울시 종로구 변호사회관 10층 조영래홀에서 마무리집담회를 가졌다. 헌법학자회의는 그간 활동을 정리해 백서로 발간할 예정이다.
ⓒ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 제공
28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변호사회관 10층 조영래홀,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헌법학자들이 웃으며 서로 인사를 건넸다. 불과 몇 달 전 같은 장소에서 '12.3 비상계엄사태와 헌정회복을 위한 과제',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을 당시 엄숙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김선택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정말 반갑고 감개무량하다.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아서 웃는 모습으로 뵙게 되니까 행복하기까지 하다"며 개회사를 시작했다.

"12월 3일 밤으로 돌아가면 이런 날이 있을 것이라고는 참… 아슬아슬하지 않았나. 천만다행이다."

김 교수가 말하는 '우리'는 12.3 내란사태 후 엄중한 시기를 함께 건너온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를 뜻한다. 김선택 교수와 전광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이헌환 아주대학교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김종철 연세대 교수가 대표상임실행위원을 맡은 이 모임은 지난해 12월 25일 결성됐다. 이후 4월 4일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오기까지 '헌법학자회의'란 이름 아래 모인 헌법연구자 약 110명은 각종 토론회, 의견서, 성명 등으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논증하고 해설했다.

김선택 교수는 "내란의 밤, 헌법학과 헌법학자들은 굴종의 과거를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배운 대로 살 것인가'를 선택할 기로에 섰다"며 "우리는 '헌법의 적'과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고 회고했다. 이헌환 교수도 "헌법의 이름으로 처음 내란을 이겨냈고, 그 과정에서 헌법학자회의가 세상에 '헌법의 말'을 전하는 통로가 됐다"고 자축했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도 "헌정사에 유례없이 많은 헌법학자들이 함께 했고 유의미한 결과를 갖게 돼서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제 이 모임은 역사로 남는다. 헌법학자회의는 백서 작업을 끝으로 공식 해산하기로 했다. 김종철 교수는 "우리가 역사적인 헌법의 순간을 경험한 결과를 기록에 남겨서 후세대에 전하고, 그런 일이 진짜 없었으면 좋겠지만, 또 없게 하는 데에 이런 기록을 미약하게나마 남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아주셨다"며 이날 초안을 공개했다. 헌법학자들은 이 기록을 토대로, 헌법과 민주주의를 향한 고민을 이어가겠다며 아쉽지만, 박수를 치며 헤어졌다.

다음은 헌법학자들이 28일 마무리집담회에서 밝힌 12.3 내란 사태에 관한 소회와 앞으로의 과제 등을 정리한 내용이다.

"어처구니없던 계엄… 민주주의 기둥들, 굉장히 취약했던 것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2024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자, 당직자와 보좌진들이 이를 막고 있다.
ⓒ 유성호
[전광석 연세대 명예교수]
이 비상계엄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는데, 12월 3일부터 한 3, 4개월 겪으면서 '민주주의가 그렇게 쉽게 회복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되진 않았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들이 굉장히 취약했던 것 아닌가. 예컨대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 권한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은 1970년대에도 볼 수 없는 논리다. 어떻게 그런 논리가 지금 나타날 수 있을까. 저는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인 헌법을 1972년으로 되돌리는 게 옳다고 생각하냐'고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권형둔 공주대 교수]
우리 헌정사가 질곡은 좀 있었지만 그래도 일정 방향을 가지고 이어져왔고, 또 87년 현행 헌법 체제 하에서 그래도 민주화가 상당히 진행된 과정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의외로 취약한 것 아닌가라고 하는데, 왜 헌법에는 문제가 없는데 취약하다고 할까. 저는 각 부분에 있는 우리 국가기관이나, 구성원들이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모두 각성해야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국가인권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정말 각 국가기관들이 너무나 몰염치하고 수치심을 모르는 것 같다. 과연 이것이 헌법의 문제일까.

"국민 없으면 헌법은 휴지조각"... "젊은 세대에 또 빚을 졌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앞둔 12월 14일 오후 한 학생이 '윤석열 탄핵' 부적을 이마에 붙이고 국회앞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임지봉 서강대 교수]
국민들이 이번에 헌법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았나. 그런데 국민들은 '나의 헌법적인 판단이 옳다'를 헌법학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했다. 또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헌법학자가 소수지만 있었고, 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언론이 기계적인 균형을 맞춰서 정보를 주니까 국민들은 불안했다. 그런 국민들의 불안감을 많이 위무해준 게 우리 헌법학자회의다. 또 저는 헌법학자로서 국민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국민들이 우리를 지켜줬기 때문에 우리 같은 학자들이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헌법연구를 계속 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헌법을 지켜준 국민들이 참 고맙다.

[이장희 창원대 교수]
국민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지 않으면 헌법은 정말 무기력하고 휴지조각임을 절감했다. 헌정회복은 한두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계몽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되는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분열돼있다. 앞으로 해야 될 일이 정말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 세대가 헌법과 민주주의 인권을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의 장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헌정위기를 맞이했을 때 누군가 국회 앞으로 뛰어나가고, 장갑차를 막아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김수연 제주대 교수]
저는 고향이 대구다. 또 91학번이라 광주에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다. 박근혜·윤석열 탄핵을 거치면서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또 한 번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자·선생으로서의 역할이 있지만, 이 결과를 이끌어낸 가장 큰 추동력은 책상 앞이나 교실에 있지 않고 광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추동력을 가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빚을 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 남은 빚을 감당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동안 뭐했나' 반성도"... "친위쿠데타 야망도 어렵게 만들어야"
▲ 봉황기 내리는 대통령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4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관계자들이 봉황기를 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정태호 경희대 교수]
윤석열이 아주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기 때문에 헌정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결정적인 상황적 여건이 조성됐다. 지금 국민의힘 상당수 의원들의 태도를 보면, 여소야대가 아니라 여대야소 상황에서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면 끔찍한 결과가 나왔다. 어쨌든 역사적인 우연과 제도적인 여건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오늘의 행복한 자리가 마련될 수 있던 것 같은데, 저는 여대야소 상황에서도 이른바 친위쿠데타의 야망을 품기 어렵게 만드는 개헌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자들이 그 연구를 활발히 했으면 좋겠다.

[김해원 부산대 교수]
이런 반성도 했다. 일반 국민들은 밖에서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애썼는데, 헌법학자들은 그동안 뭐했나. 너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연구를 소홀히 해왔던 것 아닐까. 과연 우리가 (이 위기를) 잘 방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된 연구들을 축적했다. 어쩌면 우리 연구자들이 그동안 소홀했던 지점을 다시 성찰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황희 성균관대 교수]
저는 처음부터 (대통령 파면 결정이) 당연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는데, (헌재 선고가 미뤄지던) 3월 말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 받은 전화의 99%는 염려, 걱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 계셨던 분들과 논의하면서 계속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사회가 어떤 정체성을 갖냐는 어떤 기억을 조직하느냐와 연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12.3을 많이 기억했으면 좋겠고, 헌법학자로서 헌법학자회의 활동을 오래 간직하면서 그 기억을 학계와 공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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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 초안 https://drive.google.com/file/d/1u2ovOE6K3FbqlRi_PCLLezEFFZ93LrLx/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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